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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엄청난 인파, 박진감 넘치는 진주소싸움

 

 

 

 

엄청난 인파, 박진감 넘치는 진주소싸움

-제120회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진양호 방면의 진입로부터 막히기 시작하더니 길가로 세운 차들로 길은 더 막혔다. 경기장에 도착하자마자 ‘와~’하는 찬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쯤 되면 궁금해서 배길 재간이 없다. 한달음에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원형의 경기장에 나무를 엮어 만든 울장 너머로 두 마리의 소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제120회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가 10월 2일부터 7일까지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대회에는 전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싸움소 211여 두가 참가하여 6일 간의 열전에 돌입했다. 첫날 태백급 예선전을 시작으로 종별로 경기가 진행됐다. 대 태백, 소 태백, 대 한강, 소 한강, 대 백두, 소백두 등 모두 6체급으로 나눠 추첨에 의해 결정된 대진표에 따라 토너먼트 방식으로 대결했다. 송아지, 자전거 등 경품 추천을 하고 가수 공연을 통해 한층 흥을 돋았다. 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인터넷으로 생중계 서비스를 하기도 했다.

 

 

대회 기간 동안의 관람객은 (사)한국민속소싸움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하루 평균 9000명, 총인원 5만여 명이 다녀가 예년에 비해 2배 정도 늘어 전국소싸움대회 사상 최고의 인원이 관람했다고 한다.

 

 

이번 대회에서는 함안의 이명주 씨의 ‘백두’가 이름값을 하며 대백두급 최종 우승을, 소백두급에서는 밀양 ‘구룡산’이 우승기를 획득했다.

 

 

경기 방식은 토너먼트 식이었다. 일반적으로 토너먼트 식의 대회는 예선전, 16강 , 8강 등을 거치면서 싸움소들의 체역이 고갈되고 상처를 입는 등 경기가 박진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만큼은 결승전까지 맹위를 떨치며 명장면을 연출했다. 여행자가 본 경기는 4강전을 포함해 5경기 정도였는데 박진감 넘치는 경기에 관중들의 탄성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장내의 아나운서가 전날 있었던 불행한 사태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이런 민속 소싸움까지 도박장으로 만드는 원정도박단이 한심하기 그지없다. 예전에는 소싸움이 있을 때면 막걸리 말술을 걸어 패한 쪽에서 막걸리나 음식을 이긴 쪽에 대접하였으나 대회 형식을 띄면서 점차 돈을 거는 내기판으로 변하였는데 근래에 이를 도박장으로 만들었다니 잔치판의 흥을 깨도 이만저만 깬 것이 아니다.

 

 

최소 600kg에서 최고 850kg이 넘는 육중한 황소가 김을 푹푹 휘젓는 내쉬며 모래판을 휘젓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날카로운 뿔로 상대방의 빈틈을 노리는 소들의 치열한 탐색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들치기, 목치기, 머리치기, 밀치기, 뿔걸이, 뿔치기, 연타, 옆치기(배치기) 등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며 아찔한 상황을 맞으며 팽팽하던 접전은 연이은 공격에 한쪽이 꽁무니를 빼며 도망을 치면서 승부가 갈렸다. 이긴 주인은 결전을 잘 치러낸 싸움소가 그 어느 때보다 대견하고 진 소주인은 애써 서운한 감을 감추고 덤덤하게 소를 끌고 나간다. 이때마다 관중들의 아낌없는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급기야 장내 아나운서의 한마디에 모두 괴성을 지르며 열광하게 된다.

 

 

 

 

 

 

 

올해 120회를 맞는 진주 전국 민속 소싸움 대회는 1897년 첫 대회에서 시작됐다. 특히 진주의 소싸움 대회는 일제 강점기에도 이어질 정도로 100년 이상의 전통과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을 자랑해왔다. 진주소싸움은 다른 지역의 소싸움에 비해 기록과 사진자료들이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북한에서 간행한 <조선의 민속놀이>, <조선도읍대관>, <경남일보> 등에서 소싸움에 대한 기록을 흔히 찾을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팔월 추석 중에 남강의 백사장에서 소싸움이 벌어졌고 그 기원을 백제에 이긴 신라의 전승 기념잔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고려 말에 자연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곳의 소를 많이 잡아먹어 소들을 위령하기 위해 시작되었다는 설 등을 언급하고 있다. <조선의 민속놀이>는 소싸움이 줄다리기와 함께 진주 일대의 연중 큰 행사로 치러졌다고 적고 있다. <조선도읍대관> ‘진주편’에선 소싸움과 촉석루를 소재로 한 당시 우표의 스탬프 인장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 지방지의 효시인 <경남일보> 1909년 11월 23일자에는 주필이던 위암 장지연이 「진양잡영(晋陽雜詠)」이라는 소제목으로 진양(진주)을 노래한 것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농가의 8월에는 술 향기 번져나고/가을 곡식 드리운 꽃은 땅에 가득 누렇네/천고의 영웅들이 전쟁하던 이 땅인데/지금에 이르러 투우장이 되었구나.” 라는 시와 “가을 풀 우거지고 밭갈이 쉬었기로 목동들은 한가한데/억센 소 힘이 솟아 그 분기가 산과 같네/뒤엉킨 뿔싸움 다투어 충돌하니/제(齊) 나라 군대가 절묘한 승리로 묵적(墨翟) 군을 파하고 돌아오는 듯하네”가 적혀 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이곳의 투우가 심히 성하여 수많은 무리들이 크게 충돌을 부리며 그 등약(騰躍)하고 포효하는 모습이 진실로 일대 장관이더라.”고 적고 있다. “이미 남강 백사장은 일제강점기 시작 전부터 ‘수무바다’라고 일컬어 소싸움 때면 백사장에 수많은 차일(遮日)을 치고 진주 인근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런 기록들로 보아, 소싸움은 멀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려시대에도 성행하였으며 조선시대까지도 우리 민족 고유의 민속놀이로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소싸움이라는 것이 많은 구경꾼을 동원하여 넓은 백사장이나 공지에서 행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동네 아이들끼리 소꼴 먹이러 가서는 심심풀이로 소싸움을 붙이는 경우도 있어 농경을 주로 하던 전통시대에 있어서 소싸움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전통 민속놀이였다.

 

 

 

 

 

 

 

 

 

 

 

 

 

 

 

진주 소싸움에 대하여는 1925년에 진양군수였던 산정정도(山丁正道)가 「경남 진주투우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1884년 소를 매우 사랑하여 항상 우량소를 기르던 진주성 내의 부호인 김선여(金善汝)와 성외의 부농인 오작지(吳作之) 등 두 사람에 의해 성내 성외의 사람들이 승패를 가르는 투우가 시작되었고, 이 투우가 점차 성황을 이루어 매년 정기적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그 후 1897년경에 진주에 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우승 소에게 상금을 수여하고, 당시 군수도 투우가 소 개량에 유익하다고 판단하여 우승 소에 대하여 농구나 식기 또는 상금을 시상하게 된 것이 진주 소싸움대회의 시초라고 적고 있다.

 

진주 소싸움은 일제강점기 3·1독립만세운동으로 민중의 집회를 금지하여 많은 군중이 운집하는 투우도 일본 경찰에 의하여 중단되었다가 1923년 8월에 조선총독부가 축우 장려의 정책과 지방 인사들의 열망으로 다시 열리게 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진주 소싸움 대회의 캐릭터는 ‘맹우’인데 ‘맹우’는 일제강점기 소싸움을 하던 중 뿔이 부러지는 상황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전설적인 싸움소였다고 한다.

 

1925년에 야마모토[山本源一] 가 쓴 「진주명물 투우」라는 글은 매우 흥미로운데 진주 소싸움의 상황과 규모에 대해 소상히 적고 있다. “조선의 유명한 진주 소싸움은 남강의 모래사장에서… 여러 면에서 이름난 황소나 거친 황소를 뽑아서 출전시키고, 관람자도 먼 거리를 마다않고 몰려들어 투우장을 10겹 20겹으로 둘러서 그 수가 7천~8천명을 넘었다. 오후 2시경부터 투우가 시작되어 힘찬 황소가 울음소리와 함께 뿔과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소리가 낭자하다. 수십 분 또는 몇 분의 짧은 시간에 도망가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다.”

 

이러한 진주 지역의 마을 소싸움도 한국전쟁 이후, 규모가 커지고 대회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전의 소싸움이 부농을 중심으로 한 마을 간의 세력 겨루기의 형식이었다면, 소싸움의 주체가 일소를 키우는 우축농가들로 바뀌었고 소싸움 주체도 확장되어 규모가 큰 대회로 자리 잡아갔다. 현재의 본격적인 대규모 체급별 투우 대회가 열린 것은 1971년부터라고 한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 싸움소는 어떤 소들일까. 우선 품종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고 황소 중에 공격적이고 힘이 좋은 소를 골라 훈련시킨다고 한다. 싸움소는 근성, 지구력, 싸움 기술이 좋아야 하는데, 이에 적합한 소의 생김새는 귀가 작고 눈이 깊이 파인 소가 근성이 있고, 목이 굵고 가슴이 넓어야 근력이 좋으며, 뿔 사이가 좁고 이마가 두꺼우며 몸길이가 길어야 한다고 한다.

 

특히 싸움소에게 무기나 마찬가지인 소뿔은 아주 중요한데 그 형태에 따라 옥뿔, 비녀뿔, 노고지리뿔로 크게 나뉘기도 한다. 옥뿔은 돌출되어 찍기에 능하고, 비녀뿔은 뿔 걸기에, 노고지리뿔은 찌르기에 유리하다.

 

싸움소는 훈련 또한 엄격하게 이뤄진다. 달리기, 콘크리트를 채운 타이어 끌기로 지구력을 키우고 나무 찍기와 떠올리기 훈련으로 뿔치기 기술을 연마한다고 한다. 경기에 나가기 전에는 약한 소와 연습 경기를 자주 시켜 자신감을 키우는 걸 가장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 진주전국민속소싸움대회가 개천예술제와 유등축제 기간 동안인 지난 10월 2일부터 7일까지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에서 열렸다. 이 시기가 아니더라도 진주전통소싸움경기장에선 매주 토요일 오후 상설 경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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