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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가을 황매산, 또 하나의 장관을 예고하다

 

 

 

 

 

 

황매산의 시월, 철쭉 대신 또 하나의 장관을 예고하다

 

해마다 오월이면 온 산이 붉게 물드는 황매산. 그 이름대로라면 노란 매화가 피어 있어야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황매산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나 그중 큰 산이라는 뜻의 ‘너른 뫼’가 ‘황매’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그럴 듯하다.

 

봄날 철쭉제로 유명한 황매산에는 가을이면 참억새 천국이다

 

근데 실제로 주변 산세를 둘러보면 활짝 핀 매화 모양이다. 정상에 올라보면 더욱 그러하다. 해발 800m 이상에 펼쳐진 너른 평원을, 상봉․중봉․하봉의 삼봉 봉우리들과 박바위․모산재․닭벼슬바위․천황재․감암산 등의 바위산들이 꽃잎처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은 천생 매화를 닮았다. 봄이면 철쭉은 마치 꽃 가운데의 꽃술처럼 활활 붉게 타오른다.

 

 

해발 1108m인 황매산은 1983년에 합천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합천호의 푸른 물속에 잠긴 산자락의 모습이 마치 호수에 떠있는 매화와 같다고 하여 수중매(水中梅)라고도 불린다고 하나 그 억지스런 노력에 가슴 한구석이 짠하다.

 

아직 활짝 피지 않아 자주색을 띠고 있는 억새. 10월이면 온 산을 하얗게 뒤덮을 것이다

 

이 고장 사람들은 안다. 합천호에 황매산이 잠긴들 겨우 가랑이 끝단일 뿐이라는 걸... 게다가 합천호는 1984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88년에 완공되었으니 이 이야기는 최근에 꾸며낸 이야기라는 게 단박에 들통 난다. 이곳이 고향인 여행자가 이리 산통을 깨어버렸으니 이제 제 고향 자랑 좀 할 일이다.

 

가을 황매산은 야생화가 지천이다

 

모산재에서 내려온 일행은 영암사지를 둘러보고 황매산으로 갔다. 거친 바위산의 위용을 모산재에서 맛보았다면 이젠 몸도 마음도 편안한 황매산 고원을 거닐 일이다. 해발 800m가 훨씬 넘는 산중 평원은 수만 평에 달한다. <단적비연수>,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활>, <서울 1945>, <주몽>, <태왕사신기>, <선덕여왕> 등 제목만 들먹거려도 금방 알 수 있는 굵직한 영화 드라마들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아마 넓은 초원과 빼어난 산세가 각종 촬영지로 각광을 받게 한 모양이다.

 

시월이면 황매산은 또 하나의 장관을 보여줄 것이다

 

황매산하면 흔히 봄날의 철쭉을 떠올리지만 이곳 토박이들이 높게 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봄이면 지천에 나는 산나물과 철쭉이 피기 전 고원 여기저기 피어난 진달래, 여름이면 어름․다래 등의 야생 열매와 온 산 빼곡 피어난 야생화들이 그것이다. 가을이면 드넓은 평원에 하얀 물결을 일으키는 억새가 그것이다.

 

해발 800m 위에 있는 수만 평의 고원은 이처럼 허허한 풍경이 아름답다 

 

아직은 일렀다. 엷은 자주색을 띠는 이곳의 참억새는 시월이면 온 산을 하얗게 물들이리라. 그때가 되면 왁자지껄한 봄날 군락을 이룬 철쭉의 화려한 축제와는 달리, 고요하고 쓸쓸하니 그러나 높고 깊은 축제가 이곳에서 열릴 것이다. 이곳 평원의 억새도 좋지만 두심마을로 내려가는 산기슭의 억새가 빼어나다.

 

 

오늘 와서 보니 못 보던 풍경이 더해졌다. ‘오토캠핑장’이 생겼고 공원이라며 나무들이 심겨져 있다. 예전 이곳에 목장이 있어 가축 분뇨로 온 계곡이 더럽혀졌다가 이제 제 모양을 되찾나 싶었는데 이제 소 대신 사람이, 풀 대신 족보 없는 나무들이 들어섰다. 산중의 공원이라... 작년까지 수줍게 피었던 물매화 군락도 오토캠핑장으로 갈아엎어지고 그냥 있어도 될 허허한 초원도 생뚱맞은 나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10월, 또 다른 장관을 예고하는 황매산의 참억새... 사진은 산청 지리산 방면 능선 물결

 

순간을 놓쳤다. 아직 이르기도 하다

 

지자체 관계자들이 여행자에게 종종 묻곤 한다. 어떻게 하면 지역 관광이 활성화 될 수 있냐고? 나의 말은 늘 한결같다. ‘뭔가 새로운 걸 하려하지 말고, 있는 것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라고. 무조건 새로운 걸 만든다며 기존의 것을 다 갈아엎으면 그것은 특색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되고 종국에는 방치될 뿐이라고.

 

황매산의 참억새... 찬바람이 불면 하얀 환희에 빠져들 것이다

 

800m 이상의 드넓은 평원은 가끔 이런 나무 한 그루가 포인트가 된다

 

황매산은 여행자의 고향이다. 나의 생명이 거기에서 나왔으며, 나의 정신이 거기에서 만들어졌으며, 나 죽으면 그곳에 바람처럼 묻힐 것이다. 그래, 다 좋다. 이 말 한마디만 하자. ‘그만 좀 나둬라!’

 

영화주제공원이 있는 산청 방면의 황매산

 

사람은 야생화를 닮아야 한다

 

멀쩡한 산을 왜 도심의 공원처럼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냥 놔둬라. 그러면 황매산은 사시사철 좋은 산이 된다. 봄에는 철쭉의 서막인 진달래가 아름답고,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좋은데 그중 하금 계곡이 좋고, 가을에는 온 산을 감싼 하얀 억새와 거창 쪽의 단풍이 특히 곱다. 겨울에는 설국이 빚어내는 또 다른 맛이 있는 황매산... 언제 찾아도 좋은 황매산은 그대로 내버려 두면 된다.

 

황매산의 야생화, 지금의 오토캠핑장 자리에 피었던 예전 물매화(오른쪽 위)와 자주쓴풀(왼쪽 아래)

 

새로 들어선 오토캠핑장과 초원에 심은 나무들. 왜?  황매산(1108m)의 심장에 해당하는 800m의 고원에 있는 오토캠핑장은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국비 지원을 받아다고 하나 초원에 억지로 나무를 심을 일은 아니다. 합천군의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산은 공원이 될 수 없다. 산은 산이며 산이어야 한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은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