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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이곳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가 절경이란 말인가!

 

 

 

몇 번을 가도 그 오묘한 아름다움에 감탄한 제주 용머리해안

 

설문대할망이 빨래를 하다 방망이를 잘못 놀려 그 센 힘으로 한라산을 치는 바람에 한라산의 봉우리가 날아와 떨어진 것이 산방산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이야기로는 옛날 한 포수가 한라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실수로 산신의 궁둥이를 활로 쏘게 되었다. 산신이 노하여 손에 잡히는 대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진 것이 날아와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산방연대에서 내려다본 용머리해안

 

재미있는 사실은 백록담의 움푹 팬 분화구와 봉긋 솟은 산방산의 크기가 비슷할 뿐 아니라 자생식물도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산방'은 산 중턱에 위치한 '산의 방' 즉, 굴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산방연대

 

제주도 서남쪽 해안에 있는 산방산은 마치 중절모처럼 봉긋 솟아 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생활을 할 때 자주 올라 수양했다는 산방굴사가 이 산의 중턱에 있는데, 이 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누구나 탄성을 내지르게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연대에서 본 산방산과 황우치해변, 박수기정

 

이곳까지 오를 용기가 없는 이들은 산 아래 길가에 있는 산방연대에 오르면 된다. 산방굴사에선 송악산, 마라도, 형제섬, 용머리해안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정작 굴이 있는 산방산 자신은 볼 수가 없다. 오히려 다리품을 팔지 않은 게으른 탓에 연대에서는 산방굴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 산방산과 박수기정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

 

산방연대에서 내려다본 용머리해안

 

제주도에는 한때 25개소의 봉수대와 38개소의 연대가 있었다. 별장이 378명, 직군 900명 등 장졸 1278명이 근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연대가 있었던 곳에는 '연디와' 라는 지명이 붙어 있다. 봉수대가 산 정상에 석축을 쌓아 봉화를 올린데 비해 연대는 주로 해안가 높은 지대에 쌓았다. 산방연대는 모슬진에 소속된 것으로 동쪽으로 당포연대와 서쪽으로 무수연대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사계포구에서 본 용머리해안

 

연대에 오르니 사방이 탁 트였다. 박수기정과 송악산을 양 날개삼아 바다를 향해 내달리는 용머리해안은 그 위용이 대단하다. 연대에 올라서면 마치 거대한 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는 듯하다. 절벽을 이룬 산방산은 까마득하고 아래로 펼쳐진 황우치해변과 화순금모래해변, 사계해안은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사계포구에서 본 용머리해안

 

이따금 돌아가는 배들이 형제섬을 눈여겨보게 만든다. 절경인 해안의 풍경이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는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형제섬이 시선을 붙잡는다. 망망대해의 밋밋할 수 있는 이곳 바다를 형제섬이 잠시 끌어안더니 가파도와 마라도에게 슬며시 그 풍광을 건네준다.

 

사계포구에서 본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계포구로 향했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사계포구이다. 용머리를 찾는 관광객들은 대개 주차장에서 내려 산책로를 따라 용머리해안을 도는 것으로 관광을 마친다. 그러나 용머리해안 일대의 풍광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산방굴사와 산방연대, 그리고 이곳 사계포구이다.

 

형제섬

 

산방굴사와 산방연대에선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바다로 들어가는 용의 모습을 본 것이라면 사계포구에선 용이 바다에 몸을 담그고 유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용머리는 거북머리가 되고 산방산은 등이 되어 거대한 거북이가 바다를 향해 헤엄치는 형국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멜전시관

 

포구에서 용머리해안으로 접어들었다. 해안에 배 한 척이 있는데, 하멜전시관으로 쓰인다.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과 선원들이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난파하여 제주도에 도착한 최초의 상륙 지점이 이곳 해안이다. 이후 조선에서 13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탈출한 뒤 그 과정을 책으로 출판하여 우리나라를 서방세계에 알린 최초의 서적 '하멜표류기'를 완성하게 된다.

 

 

"파도 조심하세요." 표를 끊자 매표소 직원이 주의를 준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는데, 파도를 조심하라고 한다. 무슨 말일까, 하고 잠시 가졌던 의문은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기묘한 해안절벽에 한참 한눈을 팔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명과 동시에 본능적으로 펄쩍 뛰어오른 나의 놀라운 운동감각에 스스로 감탄을 하고 있는데 앞서가던 몇몇은 벌써 옷을 버린 모양이다.

 

 

 

해안절벽을 따라 난 산책길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암반 위를 그대로 걷는 길이다. 하여 해수면과 거의 같은 높이로 길이 나 있어 살랑대던 파도가 갑자기 몰아치는 일은 당연한 것, 운이 억세게 나쁘거나 풍광에 빠져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옷을 흠뻑 젖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파도에 놀라 바다에 빠질 수도 있으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겠다. 지구온난화로 이곳의 해수면도 예전에 비해 높아졌나 보다.

 

 

 

산방산이 바다도 쑥 빠진 지형이 용머리해안, 수천만년동안 층층이 겹쳐 쌓이면서 만들어진 사암절벽이 파도의 끊이지 않는 구애에 제 몸을 내어주어 형성된 해안이다. 마치 용이 머리를 틀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룩돌’ ‘누룩바위’라고도 불린다.

 

 

 

바다와 나란히 나 있는 용머리해안을 걷다 보면 그 다양한 해안절경에 절로 입이 벌어진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 있는가 하면, 파도가 훑고 지나간 듯한 절벽의 무늬들도 오묘하다.

 

 

 

바다에서 절벽 쪽으로 움푹 들어간 제법 너른 곳에는 어김없이 할머니 두서너 명이 앉아 해산물을 팔고 있다. 절벽을 올려다보고,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긴장을 했다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제주도 해안 곳곳에는 이처럼 작은 좌판들을 펼쳐놓고 해산물을 파는 풍경을 더러 볼 수 있다. 이 또한 제주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용머리해안의 잔등과 꼬리 부분이 끊어져 있다고 한다. 진시황이 용머리해안의 형세가 장차 왕이 나타날 형세임을 알고 호종단이라는 사람을 보내 용의 잔등과 꼬리 부분을 칼로 끊어버렸다고 한다. 이때 바위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산방산은 며칠 동안 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고 한다. 지금은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사이를 해안도로가 통과하니 전설이 전혀 허무하지는 않다.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은 올레길 뿐만 아니라 산방산 둘레길이 나 있다. 전체 10km 정도로 산방산을 한 바퀴 돌고 용머리해안을 따라 걷는 코스이다. 이곳 용머리 해안에서도 성산일출봉이나 송악산처럼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가 파놓은 인공굴들을 볼 수 있다. 2010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추노>의 아름다운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면서 용머리해안은 더욱 유명해졌다.

 

 

 

☞ 용머리해안은 바다를 바로 접하고 있는 길이라 물때를 맞춰 찾아가야 관람할 수 있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파도가 거친 날은 입장이 제한되니 미리 확인하고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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