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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올 여름 한달만 자유개방,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오름 원시림에 빠지다

 

 

 

이번 여름 단 한 달만 자유개방하는 세계자연유산 재주 거문 오름

 

흔히 우리나라를 금수강산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얼핏 보아서는 맞는 듯하지만 그 진면목은 우리 땅을 속속들이 파고들어야만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밋밋할 수 있는 우리 땅에 제주도는 분명 특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섬이다. 애써 아름답다, 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제주는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땅이요, 섬이다.

 

지난 8일 일요일에 열린 2012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 오름 국제트래킹 대회 광경

 

지난 8일 일요일, 거문 오름을 찾았다. 제주관광협회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번 제주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일정 중의 하나가 거문 오름 탐방이었다.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거문 오름으로 향했다. 아침에 제주의 중산간을 달리는 맛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행사장은 이미 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2012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 오름 국제트래킹 대회'라고 적힌 현수막이 큼직하니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 행사가 끝나자 참가자들이 출발점에 섰다. '꽝'하는 소리와 폭죽이 터지고 놀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앞으로 나섰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출입증을 받았다. 거문 오름은 탐방출입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탐방을 마친 후에는 출입증을 반납해야 한다. 국제트레킹대회인 만큼 외국인들도 더러 보인다. 한국말을 썩 잘해 한국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한 일본인은 영사관에서 왔다고 했다.

 

 

날씨는 무더웠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 삼나무 숲이 우거진 오름을 향해서. 이번 '2012 세계자연유산 제주 거문 오름 국제트래킹'은 오늘 8일부터 8월 5일까지 약 1달간 열린다. 이 기간 동안에는 사전 예약 없이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자유로이 입장할 수 있다.

 

거문 오름

 

거문 오름은 숲으로 무성하게 덮여 있어 검게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돌과 흙이 유난히 검어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신을 뜻하는 '검'에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어 거문오름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전해진다. 예전에는 그 생김새를 보아 '방하오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동쪽 종달리에 있는 거미 오름을 동거문 오름이라 부르고 이 오름을 서거문 오름이라고도 불렀다.

 

 

거문 오름에서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건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다. 숲이 얼마나 빽빽한 지 그 향이 코로 들어와 폐를 찌르는 듯하다. 몸의 나쁜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없앨 태세로 숲의 기운이 몸 깊숙이 파고들었다.

 

 

경사면을 따라 비스듬하게 놓인 길을 따라 얼마쯤 가니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태극길’과 ‘용암길’이 그것이다. ‘태극길’은 약 8km로 거문 오름 분화구 내와 정상부 능선을 따라 도는 순환코스이다. 그 모양이 태극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용암길’은 약 5km로 거문 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흘러내린 길을 따라가는 코스이다. 동굴카페로 유명한 경덕홈스프링스(다원)로 이어진다. 물론 ‘태극길’을 돌고 연이어 ‘용암길’을 탐방할 수도 있다. ‘용암길’ 도착지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1시간 간격(11시~17시)으로 운행되는 순환버스가 있다. 주말과 휴일에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분화구 내로 들어서자 이내 캄캄해진다. 햇살마저 뚫지 못할 정도로 숲은 원시 그 자체였다. 탐방로를 따라 설치된 나무 데크가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탐방이 아니라 탐험이 될 뻔했다.

 

 

거문 오름은 지금으로부터 약 30만 년 전에서 10만 년 전 사이에 화산활동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원시의 모습을 간직한 숲은 푸르다 못해 검어 보였다. 바위에는 두터운 이끼들이 뒤덮여 있었고 갖은 나무와 풀들이 울울해 이미 인간의 발길을 잊은 지 오래였다.

 

 

이윽고 나타난 삼나무 숲, 거문 오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삼나무 숲은 잊을 만하면 느닷없이 나타나는, 적어도 이곳에서는 흔한 나무였다. 몸에 좋은 피톤치드를 막 뿜어낸다고도 하지만 비염환자에게는 좋지 않다고도 하니 모든 게 일장일단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쭉쭉 뻗은 삼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숲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에선 누구나 하늘을 올려다본다. 삼나무가 어디까지 뻗을 수 있나, 를 감시라도 하듯 고개를 젖히기도 하고 나무 주위를 빙빙 돌아보기도 한다.

 

 

오름 분화구에 내려서자마자 나타나는 용암협곡에 순간 움찔해진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낭떠러지가 칠흑같이 어두운 숲 아래 숨어 있었다. 그 폭이 80~150m이고, 깊이가 15~30m, 길이가 약 2km 정도로 뻗어 있다고 하니 얼마나 장대한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협곡 주위는 겨울에도 푸르고 울창한 숲이 유지되어 항공사진으로도 보인다고 한다.

 

일본군 동굴진지(좌, 아래)와 선흘수직동굴(우)

 

희귀식물인 식나무와 붓순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일본군 동굴진지가 나왔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의 굴이 아주 작아 얼핏 보면 자연동굴로 보이기도 한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이곳에 구축한 갱도진지로 거문 오름에서 확인되는 일본군 갱도는 모두 10여 곳에 달한다.

 

이 외에도 일본군이 제주도를 최후의 전쟁기지로 삼으면서 108여단이 주둔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도 있고,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이용했다는 병참도로의 흔적도 남아 있다.

 

 

길은 다시 알 오름으로 이어진다. 알 오름은 특이하게도 거문 오름 안에 있는 오름이다. 거문 오름은 북동쪽이 트인 말발굽모양인데 알 오름은 그 가운데에 있다. 오름 능선을 따라 모두 9개의 봉우리가 있어 풍수지리로 거문 오름을 ‘구룡농주형’이라 일컫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부소오름, 골채오름, 조천민오름, 알밤오름, 웃밤오름, 체오름, 송당민오름 등 주위의 오름 들이 거문 오름을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다. 마치 알 오름이라는 왕궁을 도성인 거문 오름이 보호하고 그 주위의 오름 들이 산성처럼 수도를 방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거문 오름에선 예전부터 사람들이 숲을 굽고 화전을 일구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더러 사람들이 산 흔적이 보이는데 숯 가마터가 대표적이다. 아치형으로 둥글게 만든 숯가마로, 뒤로는 숨구멍을 내어 통풍을 했고 그 옆으로는 돌담이 남아 있다. 숯을 굽던 사람들이 살았던 움막 터로 추정된다.

 

숯가마터(위)와 화산탄(좌)과 풍혈(우)

 

오름 탐방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냉한 기운도 잠시, 이내 한기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성글게 쌓인 암석들 사이에서 찬바람이 나오는 '풍혈'때문이다. 대기 중의 공기가 암석들의 틈 사이를 지나면서 일정 온도를 유지하여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고 한다.

 

 

화산활동이 만들어낸 거문 오름 곳곳에서 '화산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가 거대한 풍선처럼 곳곳에 산재해 있는데, 이는 폭발 당시 공중으로 날아간 용암 덩어리가 회전하면서 둥근 모양이 되어 땅에 박힌 것이다.

 

 

이러한 화산활동이 특이한 지형을 만들기도 했다. 분화구 내를 걷다 보면 군데군데 푹 꺼진 지형을 만나게 된다. ‘용암함몰구’인데 용암이 흐르면서 누적된 이후 단층운동이 발생하여 수직으로 땅이 푹 꺼진 지형이다. 길게 협곡을 이룬 용암협곡에 있는 용암함몰구에는 식생들도 독특한 양상을 띤다고 한다.

 

 

특히 ‘선흘수직동굴’은 수직 35m로 깊게 꺼져 있다. 입구부터 7m까지는 70도 정도의 경사를 이루다가 그 아래로는 90도 가까운 수직으로 통로가 되어 있다. 동굴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수직 통로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월에도 이 일대는 쌓인 눈이 녹지 않는다고 한다.

 

 

수직동굴도 4.3의 아픈 흔적이 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이 수직동굴에 떠밀려 비명횡사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철조망으로 입구를 막아두었으나 검은 입을 떡 벌린 동굴이 수십 년 전 그날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이 수직동굴을 '창터진동굴'로도 불리는데 옛날 이곳에 빠진 염소가 바닷가 근처 월정리에서 이틀 뒤에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곳 분화구에서 분출한 용암류가 해안까지 북동쪽으로 구불구불 흘러가면서 '선흘곳'이라는 곶자왈 지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용암은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당처물동굴, 용천동굴을 만들어 바닷가까지 흘러갔다.

 

산수국

 

구불구불 이어진 탐방로는 수직동굴을 지나니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코스와 탐방로 입구로 나가는 길이 있다. 우리는 능선을 따라 돌기로 했다. 오르막길이 나타났고 숲 가운데에 화전민 터로 보이는 돌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멀리 이곳으로 들어온 용이 방향을 바꾸어 산속으로 숨은 형국이라는 ‘회룡은산봉’ 9룡(371m)에 오르니 오름 분화구와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오 선생님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곳에서 오름 탐방을 마칠 것을 제안했다. 능선을 따라 완주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다음 일정도 있고 능선 길은 여태까지 둘러본 것과 별반 도드라진 차이가 없다고 했다. 제주 오름이 368개 정도인데 그중 절반 정도를 탐방한 그의 말에 따라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 거문 오름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와 구좌읍 덕천리에 걸쳐 있다. 세계자연유산인 거문 오름 용암동굴계는 태극무늬를 닮아 태극길로 불리는 탐방로가 있으며, 총 8km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번 국제트래킹 행사 기간(7. 8. ~ 8. 5.) 동안에는 입장시간이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까지로 제한된다. 사전 예약을 할 필요 없이 탐방안내소로 가서 사전안내 및 출입증을 받은 후 탐방을 할 수 있다.

 

행사 기간 이후에는 탐방 2일 전까지 탐방안내소(064-784-0456)로 사전 전화예약을 하거나 탐방 5일 전까지 인터넷<거문오름http://geomunoreum.kr/>으로 예약을 해야 한다. 매주 화요일은 ‘자연 휴식의 날’로 탐방이 되지 않는다.

 

선흘리 마을 전경과 갤러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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