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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굴비도 울고갔다는 샛서방고기, 여수 금풍생이를 아시나요

 

굴비도 울고 갔다는 샛서방고기, 여수 금풍생이를 아시나요

 

며칠 전 아내가 시장을 보고 오더니 그날따라 유난을 떨었다. “여보, 내가 귀한 생선 사왔어. 시장에 갔는데 할머니가 하도 좋은 생선이라 해서.... 아는 사람만 먹는 ‘깨돔’이래. 깨돔.” 잔뜩 상기된 표정의 아내가 무안할까봐 생선을 보자고 했다. 어디서 본 듯한 생선이었다. 어디 보자. 일단 모양새로 보아서는 돔 종류는 확실한데. 뭐였더라.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밥을 짓고 그 생선을 구워 밥상에 올릴 때만 해도 생선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였더라... 일단 고기 한 점을 떼서 입안에 넣었다. 알 듯 말 듯... “아, 이거. 금풍생이, 금풍생이야!”

 

며칠 전 아내가 시장에서 우연히 사온 깨돔(금풍생이)

 

그제야 지난 3월 여수에서 먹었던 금풍생이가 떠올랐다. 거문도를 가기 위해 여수여객선터미널에서 표를 산 후 바로 길 건너 있는 구백식당으로 갔었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나중에 알고 봤더니 ‘금풍생이’와 ‘서대회’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30년 쯤 된 이 식당의 전화번호가 061-662-0900인데 식당 이름을 지을 때 이것저것 귀찮아서 전화번호 뒷번호를 그대로 따서 ‘구백’이라 했다는 것이다.

 

1인분에 1만 2천 원, 다소 비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배시간도 다 되어 가고 혼자도 먹을 수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가격에 비해 나온 반찬은 너무나 초라했다. 생선 두 마리에 이렇게 빈약하다니.... 맛집에 대한 심한 배신감이 들었고 맛집에 대한 지나친 열풍에 화가 날 정도였다.

 

이때만 해도 속은 편하지 않았다. 건데 생선을 뜯는 순간 짜증까지 겹친다. 뼈가 억세고 많은데다 살점은 잘 떨어지지 않고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여행자의 젓가락질을 보았는지 종업원이 다가왔다.

 

“이 고기는 원래 살점이 잘 떨어지지 않아요. 뼈가 많아 살점도 적은 편이고... 그래서 머리와 내장까지 먹어요. 바로 요런 것이 별미지요. 오죽하면 이 생선을 샛서방고기라고 했겠어요. 이순신 장군도 최고로 꼽은 생선이지요.”

 

이쯤 되면 괜히 무안해진다. 애써 살점 하나를 떼어내 입안에 넣으니 삼삼하니 고소 담백한 것이 감칠맛이 났다. 두 마리의 생선은 젓가락질 몇 번에 금방 머리와 뼈만 남겨둔 채 살점은 사라졌다. 입안에 감돌던 맛도 금방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난 3월 여수 구백식당에서 먹은 금풍생이구이. 1인분에 1만 2천 원, 처음엔 심한 상실감에 빠졌다가 금풍생이 맛을 보고 조금 위로가 되었다

 

여수에서 ‘금풍생이’로 불리는 이 생선은 경남지방에서는 깨돔, 꾸돔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수와는 달리 여행자가 사는 경남에서는 뼈가 억세고 살점이 없어 별로 인기가 없다. 여수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는 이 생선의 원래 이름은 ‘군평선이’다.

 

여수에서 주로 구이로 먹는 금풍생이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긴데, 통째로 구워 고춧가루와 실파 등을 넣어 만든 간장을 끼얹어 내온다. 뼈가 억센 금풍생이는 속살을 발라 먹고 내장도 같이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뼈만 남기고 싹 훑어 먹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먹는 것은 외지인들을 조금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그 맛은 일품이어서 여수에서는 ‘본서방에게는 안 주고 샛서방에게만 몰래 차려 준다.’고 해서 ‘샛서방 고기’라고도 부른다. 아마 호사가(好事家)가들이 이 고기가 너무 맛있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지어준 별명이 아닌가 싶다.

 

맛이 좋았다는 것은 이 뿐만 아니다. 오죽하면 "굴비가 울고 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겠는가. 살이 별로 없는데 비해 내장과 머리까지 다 먹을 수 있는 이 생선을 두고 '먹어도 한 접시 안 먹어도 한 접시'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 내장까지 빠짐없이 먹어야 제대로 먹는 것이고 머리까지 아작아작 씹어야 금풍생이의 맛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고들 한다.

 

생긴 것도 특이한 이 생선이 금풍생이(군평선이)라 불린 데는 이야기 하나가 전해져온다. 임진왜란 직전에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했을 때 어느 날 이 생선이 식탁에 나왔는데, 너무 맛이 좋아 시중을 드는 관기에게 고기의 이름을 물어 보았더니 관기는 물론 아무도 이 고기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마침 장군의 시중을 드는 관기의 이름이 '평선'인지라 "그럼 이제부터 '평선이'라 불러라."해서 '평선이'가 되었다가 구워서 먹으면 맛이 더 좋아 평선이 앞에 '군(구운)'자가 붙기 시작하면서 '군평선이'라는 이름이 전해왔다는 이야기이다.

 

금풍생이는 표준어로는 군평서니인데 이만큼 별명이 많은 생선도 드물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군평선이'로 쓰고 있고, 전남에서는 '금풍생이'나 '금풍쉥이', ‘쌕쌕이’, ‘꽃돔’으로, 경남에서는 깨돔, 꾸돔으로 불린다. 특히 서로 다르게 생긴 등지느러미가 얼레빗 같기도 하고, 참빗 같기도 해서 얼게빗등어리, 챈빗등이, 딱때기, 딱돔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풍생이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긴데, 통째로 구워 고춧가루와 실파 등을 넣어 만든 간장을 끼얹어 내온다. 너무 맛있어 굴비가 울고 갈 정도이고 남편한테 주지 않고 샛서방한테 몰래 준다는 생선이다

 

▒ 혹여 여수엑스포 가시거들랑 한번쯤 ‘금풍생이’의 맛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묘한 상실감 따위도 있다는 걸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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