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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싱싱한 삼치. 제일 맛있는 부위는 어디?

 

 

살살 입에 녹는 거문도 삼치 들어오던 날

-거문도 여행 ③

 

그때가 정확히 몇 시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거문도의 어느 횟집에서 자연산 광어회를 혼자 먹었다는 것, 제법 술이 취해 볼이 불콰해질 즈음 잠시 바람 쐬러 밖에 나왔다는 것. 갑자기 대낮처럼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몇 척의 배가 포구로 들어왔다는 것밖에 기억이 없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건 카메라뿐. 남은 회와 소주잔을 들이킨 후 민박집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카메라를 들쳐 메고 배가 정박한 곳으로 가니 이미 배의 시동은 꺼져 있었고, 창고 앞에 무엇인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삼치라요. 삼치! 거문도하면 삼치!"

 

▲ 어선들이 정박한 고도의 거문항

 

"삼치라요. 삼치! 거문도하면 삼치. 여름에는 갈치, 지금은 삼치가 제일이지요."

 

얼핏 보아도 인상 좋게 생긴 사내가 땅바닥에 널브러진 번득거리는 물체들을 보고 머뭇거리는 여행자에게 소리쳤다. 낯선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미소에 끌려 다가갔다.

 

 

상자에 삼치를 부지런히 담으면서도 그의 말은 쉼이 없었다. 어디서 왔는지, 혼자 왔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 언제쯤 거문도를 떠날 예정인지…. 삼치에 대한 궁금증을 잔뜩 가지고 있는 여행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마치 뭍에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자식을 대하듯 물었다.

 

삼치, 옛날엔 없어서 먹지도 못했다

 


상자에 삼치를 포장하는 박종신(69) 할아버지

 

1944년생인 박종신 할아버지(69)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공판장 앞에서 삼치를 포장하는 십여 명의 사람들 앞을 서성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발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거문도에서 태어난 이 토박이 할아버지는 젊었을 적부터 삼치잡이를 해 삼치에 관한 한 박사를 넘어 박사 후 과정까지 마친 전문가인 셈이었다. 사실 그가 69세라고 말한 순간 믿지 않았었다. 놀라는 여행자의 표정을 그는 싫지 않다는 듯 바라보며 계속 웃기만 했다.

 

 

"15년 전만 해도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지. 이곳 삼치가 싸고 맛이 있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좋아했어. 왜정 때에는 일본 사람들이 거문도 삼치를 초밥 재료로 최고로 쳤지. 국내에서는 가격이 비싸 먹어 보기는커녕 맛보기도 힘들었지. 근래에 들어 내수용으로도 소비가 되고 있어. 왜 그런지 알아요? 중국이 삼치를 잡아 수출에 가담하고 나서 부터지."

 

삼치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국까지 끼어들자 일본에서는 삼치 수입량이 늘어나고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던 우리나라 삼치 물량에 여유가 생겨 국내에서도 판매가 된 거다 이 말이여."

 

 

말을 하는 도중에도 상자에 삼치를 담는 그의 손놀림은 여전히 빨랐다. 천장까지 높이 쌓인 스티로폼 상자더미에서 노끈으로 묶인 상자 한 묶음을 내리더니 다시 끈을 풀어 상자 하나를 넓고 긴 탁자에 잽싸게 올린다. 그러고 나서 얼음을 상자 바닥에 깔더니 삼치를 담는다. 비닐로 삼치 몸통을 감싸더니 얼음을 한 삽 가득 퍼서 삼치 위에 수북이 붓는다. 이때 상자 끝부분을 움푹 칼로 도려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상자의 끝부분을 잘라내 삼치에 상처나는 걸 방지한다

 

"이렇게 끝부분을 도려내야 상처를 방지하고 맛도 좋아. 꼬리를 접으면 상품이 될 수 없거든. 이거 전부 여수로 나가. 수협공판장에서 아침이면 여수로 나가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바닷바람에 단단해진 그의 얼굴이 이미 말하고 있었다.

 

삼치 중 가장 맛있는 부위는?

 

거문도 삼치는 갈치와 더불어 거문도를 대표하는 어종이다

 

어느새 바닥에 널브러져 은백색의 뱃살을 보이던 삼치들이 거의 상자로 들어갔다. 바삐 손을 놀리던 할아버지도 행동이 조금 굼떠졌다. 사실 여행자가 알고 있는 삼치에 대한 지식은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맛본 삼치구이가 전부였다. 좀 더 무식하게 말하자면 참치의 사촌 내지, 육촌뻘쯤 되는 것이 삼치가 아닌가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 삼치의 몸통이 길어 꼬리가 상자를 넘자 상자 끝부분을 잘라냈다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구이로 먹는 것은 대개 치어여. 크기에 따라 맛의 차이도 크지. 참치는 대개 잡자마자 영하 45도 이하에서 급 냉동하는데 비해 삼치는 냉동을 하지 않아. 냉동을 하면 먹을 때 물이 나와 맛을 버리지. 얼음으로 신선도만 유지하는 게 최고의 맛을 내지. 삼치는 살이 약해 아무나 회로 못 떠. 살짝 얼려서 회를 떠야 잘 되지."

 

그의 달변에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느냐고 잠시 끼어들자 예의 그 사람 좋은 말투로 간결하게 대답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배 부위가 가장 맛있어. 살살 입에서 녹아. 이로 씹을 것도 없이 혀가 맛을 단박에 알아차리지."


 

 삼치는 뱃살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삼치잡이의 다른 말은 꼬임낚시

 

잔뜩 기세를 올려 설명하던 그가 잠시 돌아서더니 손에 무엇인가를 쥐고 있었다. 사나운 갈고리처럼 생긴, 제법 큰 낚시 바늘이었다. 여행자는 순간 움찔했다. 허기야 몸길이가 1m가 넘는 이놈을 잡으려면 바늘 크기가 그 정도는 돼야지.

 

재미있는 것은 삼치를 잡을 때 쓰는 미끼였다. 윤기 있는 비닐을 멸치 모양으로 모형을 만든 미끼를 낚싯줄에 60개 정도 주렁주렁 달면 입이 큰 삼치라는 놈이 멸치인 줄 알고 덥석 잘 걸려든다고 한다. 이런 얄팍한(적어도 삼치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삼치잡이를 흔히 '꼬임낚시'라고 부른다. 여행자는 다음 날(3월 10일) 백도 가는 길에서 삼치 잡는 배를 더러 보게 되었다.

 


삼치를 잡는 큰 낚시 바늘을 보여주는 박종신 할아버지

 

이제 은백색의 몸뚱어리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천장까지 쌓인 빈 상자더미 앞에는 잘 포장된 묵직한 상자들이 다시 탑처럼 높이 쌓였다. 얼음이 가득 했던 작은 트럭의 짐칸도 바닥이 드러났다. 짙은 파란색의 바닥이 보였다.

 


삼치는 얼음으로 신선도만 유지하는 게 최고의 맛을 낸다

 

'드렁드렁' 코를 심하게 골다 순간 숨이 멈춰 경기가 나 잠을 깬 한량의 그것처럼 트럭에 시동이 걸렸다. 삽을 트럭에 싣고 정리하던 할아버지가 운전석에 올랐다. "혹시 내일 가지 않으면 한 번 들러요. 요 앞에 민박을 하는데 낮에는 시간이 많아"라고 말했다. 그러겠다고 약속했지만 3일 동안 강풍주의보가 내려진다는 예보 때문에 여행자는 섬을 떠나야 했다.

 

일을 끝낸 박종신 할아버지가 트럭에 올랐다

 

 

다음날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그냥 오늘 가는가 보네."

 

고개를 돌려보니 할아버지였다. '거문도 은갈치'를 판다고 제법 정성스럽게 종이 푯말을 적어 놓은 가게에서 그가 나왔다.

 

"내일부터 배가 안 떠서 그냥 가는가? 다음에라도 거문도 다시 오면 꼭 들러요. 소주 한 잔 하게."

 

할아버지의 목소리에는 끈끈한 그 무엇이 배어 있었다. 여행자는 허리를 숙여 마지막 인사를 깊이 드렸다. 잔잔한 바다에 은백색의 비늘이 번득거렸다.

 

백도에서 삼치 잡는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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