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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솔향기 가득한 안면도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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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는 본디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 남쪽 끝의 태안곶이었다. 그러던 것이 삼남지방의 조세물을 한양으로 옮길 때 거리도 줄이고 왜구의 약탈로부터 보호하려고 조선 인조 때인 1638년에 지금의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사이의 땅을 끊어 물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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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는 우리나라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이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섬은 고구마를 닮았다. 안면도를 다니다 보면 고구마와 육쪽마늘 파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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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해수욕장에서 1박을 하고 승언리로 향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터라 산책삼아 가보자는 제안에 일행들은 흔쾌히 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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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자연휴양림 입구에 들어서자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홍송들이 지천이다. 소나무는 늘 우리네 삶과  함께 해왔다. 땔감으로 쓰이기도 하고, 집을 짓거나 각종 가구나 농기구를 만드는 데도 사용될 만큼 우리의 생활과 뗄래랴 뗄 수 없는 관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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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있으면 늘 소박을 맞듯 우리의 소나무도 그러했다. 못생겼다는 이유에서다. 평생을 남편 뒷바라지하다 예쁜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는 못생긴 조강지처의 운명을 닮아서일까. 소나무의 이 서러움을 단박에 없애는 것이 이곳의 홍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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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찌를 듯 뻗어 오른 안면도의 홍송을 보면 미인이 따로 없다. 어찌 이리 잘생겼는지. 소나무 사이의 숲길을 들어서니 솔향기가 바람에 묻혀 온다. 여름 뙤약볕을 피할 정도로 소나무가 울창하다. 야산이라 더운 기운은 어쩔 수 없지만 솔바람 향기에 이내 더위를 잊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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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의 소나무 군락은 자연림이 아니라 인공림이다. 고려 때에는 섬전체가 방목장이었던 것이 조선시대에 소나무를 심어 나라에서 관리하였다. '왕실의 '숲'이라 하여 함부로 벌채라도 했다 발각되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엄히 관장하였다. 황월장봉산黃月長封山 이라 하여 왕실의 관을 짜는 데에만 사용될 정도로 관리가 엄격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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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서 떨어져 있는 섬이여서 잘 보존되던 소나무들이 일제시대에 들어와 상황이 달라졌다. 일제시대에 개인업자에게 헐값으로 팔려 많은 나무들이 사라졌고 태평양 전쟁 때에는 군수물자로 송진을 채취하면서 많은 소나무가 훼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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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수령 100년 내외의 소나무들이 430ha에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휴양림 한 켠에는 이곳 안면읍 창기리 출신인 채광석 시인의 시비가 있다.

기름진 고독의 밭에
불씨를 묻으리라

이름모를 산새들 떼지어 날고
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 오는
 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
맺힌 사연들을 새기고
구겨진 뜻들을 다리면서
기다림을 익히히라

카랑한 목을 뽑아 진리를 외우고
쌓이는 낙엽을 거느리며
한 걸음 두 걸음 조용히 다지다가
자유의 여신이 찾아오는 그날
고이 목을 바치리라

대를 물려 가꿔도 빈터가 남는
기름진 고독의 밭에
불씨를 묻으리라

----- 채광석의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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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의 울창한 솔숲에서 태어나 어두운 시대 온몸을 불태우며 살았던 시인의 기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차례 무심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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