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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다





슬로시티 청산도에서 히치하이크를 하다
청산도 마을 도보여행 ⑦ (청산도 양지리에서 읍리까지)

햇빛 넘치는 양지리에서 다음 목적지인 읍리로 향했다. 시각은 이미 정오를 향하고 있었다. 도청리에서 배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걷기로 했다. 가다가 마을버스가 오면 탈 요량이었다.

부흥리 전경

길은 신풍리로 이어졌다. 돌로 층층 쌓은 논들은 저마다 푸른 머리를 이고 있다. 그 너머로 부흥리가 보인다. 빨간 원색의 지붕들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파란 지붕이 인상적이다. 부흥리는 높은 산 아래 깊은 곳이라 하여 ‘안골’로 불리기도 했다. 마을 초입에는 두 그루의 당산나무가 높은 돌담에 둘러싸여 있다.


신풍리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학교도 있고 가게들도 더러 보인다.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신풍리는 청산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신풍리에서 길은 가팔라진다. 산마루로 길게 뻗은 아스팔트길에는 오가는 차들만 간혹 눈에 띈다. 잠시 삼삼오오 무리지어 걷는 이들도 보인다.


시들해진 벚꽃 아래 유채꽃만 노랗다. 낮은 곳에서 꽃피우는 방법을 터득한 모양이다. 여행자도 꽃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키가 작은 벚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이야 기껏 해봤자 손바닥만 한 그늘이겠지만 개의치 않았다. 흘러내리는 땀과 화끈거리는 얼굴을 잠시라도 식힐 수만 있다면 그만이었다.

신풍리 전경

동구를 벗어나니 소나무 아래 비석들이 있다. 효자와 열부 비였다. 청산도의 마을 초입에서 보는 비석들은 대개 돌로 기둥을 세우고 비신 위에 누각을 씌운 형태였다. 뭍과 다른 조금은 독특한 모습들이다.


오르막길이 시작되자 바람이 분다. 청보리밭이 한 번 일렁이니 산벚꽃이 응수한다. 산은 이미 봄빛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곧장 뻗은 길 끝으로 청계리가 보인다. 마을의 지세가 노루가 뛰어노는 형국과 같다고 하여 장곡등
獐谷嶝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전거 두 대가 다랭이논길을 쌩하며 달리고 있었다. 청계리는 다랭이논으로 유명하다. 마을에서 읍리를 가려면 큰 재를 넘어야 한다. 마을이 높은 위치에 있다 보니 논은 당연히 산과 가까워지고 다랑다랑 매달리게 된다.

청계리 다랭이논

다랭이논을 보다 피식 웃었다. 하트 모양의 논둑이 몇 겹이나 겹쳐져 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하트 모양으로 손을 만들어 계속 쏘아대는 모양이었다. 예전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춤으로 하트를 쏘며 사랑을 고백했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청계리 다랭이논, 하트모양의 논둑이 인상적이다.

돌담에 깊숙이 쌓인 청계리는 한가로웠다. 풀을 뜯고 있는 염소가 순간 부러웠다. 음매애 음매애. 선비가 많이 났다 하여 ‘다사마을’이라고 칭하는 청계리를 벗어나니 본격적으로 길은 오르막이다. 가픈 숨으로 걷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범바위로 가는 5코스 초입이었다.

청계리

강렬한 냄새에 걸음을 멈췄다. 고사리였다. 삶은 고사리를 말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비탈은 심해지고 걸음은 지루해졌다. 차도 사람도 없는 길, 지구가 돌아가는 무서운 정적만 흘렀다. 아니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탁 탁 탁.


얼마나 걸었을까. 다리도 쉴 겸 고개를 돌렸다. 산으로 구불구불 올라가는 마을길들이 이채롭다. 양지리, 부흥리, 신풍리가 코앞이다. 멀리 신흥해수욕장과 신흥, 중흥, 동촌마을까지 보인다.

고갯길에서 본 부흥리(좌)와 양지리(우)

다리는 이제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침부터 딱딱한 시멘트와 아스팔트 길만 걸었으니 그럴 수밖에. 배시간도 빠듯했다. 일단은 읍리까지는 가야했다. 마을버스는 올 기미도 없었고 택시라도 타고 가야 했다.

고갯길에서 본 신풍리(중앙)와 양지, 신흥리(좌), 상서, 동촌리(우) 등
간혹 차량들이 지나갔다. 시계를 연신 보면서 차를 얻어 탈 것인가를 고민했다. 일단 읍리까지 히치하이크를 하기로 작정했다. 이럴 때에는 여자였으면 좋겠다. 예쁜 치마 입고 있고 눈웃음치며 손을 살살 흔들면 누군들 세우지 않겠는가. 시커멓게 탄 얼굴에 땀에 찌든 여행자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이런. 굳게 결심하고 있는데 차가 오지 않는다. 젠장. 무작정 차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읍리큰재를 넘으니 길은 내리막이다. 시계를 보며 택시를 부를까 하는데 포터 한 대가 고개를 넘어오고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얼굴에 웃음을 띠고 말이다. 누가 보면 ‘썩소’라고 하겠지만. 차는 거짓말처럼 여행자 앞에 섰다. 도청리로 나가는 청산도 주민 부부였다. 넙죽 절을 하고 트럭 짐칸에 올랐다.

짐칸에 앉자마자 포터는 달렸다. 처음에는 재미있더니 나중에는 겁이 덜컥 났다. 뒤로 돌아 앉은 데다 길도 구불구불하여 몸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했다. 속도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손에 땀이 날 정도로 트럭 난간을 꼭 잡았다. 자칫하면 조금 빨리 가려다 영원히 먼저 가는 수가 있다. 몇 번 휘둘린 몸이 겨우 중심을 잡을 즈음 트럭이 멈췄다. 읍리였다. 길가에 있던 여행객들이 무슨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여행자를 쳐다본다. 이럴 때는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떠나는 게 수다. 홍길동처럼 짐칸에서 공중을 재빨리 날라 착지한 후 부부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곤 쏜살같이 주변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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