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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섬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이곳!



푸른 안개, 유채 돌담길 청산도 당리를 걷다
-청산도 마을 도보여행 ③ (청산도 당리마을)

도락리에서 당리로 향했다. 간간이 비추던 햇살이 산비탈에 걸려 안개만 남았다. 자욱한 안개, 아니 푸른 안개였다. 새벽의 빛이 푸르다는 건 밤을 지새우면 알게 된다. 몇 해 전 새벽 강이 그리워 밤을 새워 산청 경호강에 홀로 간 적이 있다. 그때 얼핏 본 푸른빛을 이곳 청산도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언덕 위에 있는 서편제 촬영지 초가집 옆에 솔숲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 가니 당집이 있었다. 높은 돌담에 쌓인 당집은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였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원래 당집이 있었는데, 근래에 허물어 새로 지었다고 했다. 앞에는 마을 주민들이 1988년 10월에 세운 불망비가 있다. 새로 당집을 지을 때 앞장선 김효환 씨를 기려 세운 것이다. 당리라는 마을 이름도 매년 정월에 제를 지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당리마을의 당집

당리마을 전경

이 일대가 한국영화 사상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의 하나로 꼽히는 <서편제> 촬영지이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인 판소리로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빼어나게 표현한 서편제는 이곳 청산도의 아름다움과 절묘하게 조화되어 빛을 내었다. 돌담 사이 황톳길을 따라 유봉, 송화, 동호 세 주인공이 구성진 진도아리랑의 가락에 맞추어 한바탕 신명나는 소리판을 덩실덩실 벌이며 내려오던 장면이 바로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서편제>에 나온 돌담 황톳길

영화 <서편제>에서 돌담 사이 황톳길을 따라 유봉, 송화, 동호 세 주인공이 구성진 진도아리랑의 가락에 맞추어 한바탕 신명나는 소리판을 덩실덩실 벌이며 내려오는 장면


푸른 마늘과 노란 유채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돌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부산한 사람들의 소리마저 안개 속에 묻혀 버렸다. 황톳길을 따라 이동하니 돌담 너머로 하얀 집이 나왔다. <봄의 왈츠> 촬영지이다. 가 볼까 하다 발길을 돌렸다. 희미한 장막 뒤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당리 마을로 향했다. 길 들머리에서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를 손질하고 있었다.

 

“할머니, 범바위 이쪽으로 가면 됩니까?”

“예, 그쪽으로 쭉 가면 됩니다.”

“쑥인가 보네요. 정말 잘 자랐네요.”

“여기는 볕도 좋고 날도 따뜻해서 뭐든 잘 자라지요.”

 

할머니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쑥을 부지런히 손질했다.

 

“그 범바위라는 것이 명물이여. 날씨가 맑으면 거기에서 제주도도 보이지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범바위에서 보면 제주도가 산처럼 벙벙하게 떠있지 않애. 찰랑찰랑 물에 엎드려 있제.”

 

기가 막힌 표현이다. 제주도가 바다 너머로 겨우 보인다는 말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시인보다 낫습니다.” 라고 하니 그저 웃을 뿐이었다. 많이 파시라고 한 뒤 당리마을로 내려섰다.


당리는 제법 큰 마을이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회관의 화장실은 여행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돌담길이다. 사실 청산도는 섬 지방에 걸맞게 마을 대부분이 돌담길이다. 당리의 돌담길은 처음부터 강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둘러본 문화재로 지정된 상서마을보다 당리의 돌담길이 적어도 여행자에게는 더 멋들어져 보였다. 물론 동촌마을의 돌담길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지만 말이다.

당리마을 돌담길


골목 안쪽에는 오래된 정미소가 있었다. 방아를 돌리는 기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직도 외형은 반듯했다. 마을회관을 지나 미로 같은 골목길 끝에 <서편제> 세트장이 있었다. 마을 위의 황톳길과 이곳 세트장에서 영화가 주로 촬영되었다. 세트장으로 들어가다 흠칫 놀랐다. 낡은 초가 마루에 남녀 한 쌍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었다. 허, 참.


당리마을의 <서편제> 촬영지

청산진성을 올랐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은 근래에 복원한 것으로 보였다. 청산도에는 조선 숙종 때에 수군만호진이 설치되었다. 그 후 1866년에 당리진이 설치되어 강진, 해남, 완도 일대를 관장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곳에는 관망대와 봉화대를 설치하고 외곽에 성을 쌓아 각각 동문, 서문, 남문을 두었다고 한다. 1895년 진이 없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복원된 <청산진성>

안개에 묻힌 당리 마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범바위로 가야했다. 동구 밖에서 논일을 하고 있는 어르신께 길을 물었다. 오늘은 날이 이미 저물었고 버스도 끊겼으니 숙소가 있는 도청항으로 돌아가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마을로 다시 들어와 부두로 향했다.


할머니 두 분이 마당에서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시금치의 크기가 팔뚝만 했다. 잠시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골목에서 작은 트럭 한 대가 바삐 움직인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동안 보고 있었다. 한 어르신이 이 집 저 집 부지런히 옮겨 다니면서 집집마다 미역을 주고 있었다. “이거, 엊그제 먹은 맥주 값이오. 허.” 하더니 이내 트럭에 오른다. 미역을 한 묶음 받은 아주머니도 “괜찮은디.” 하면서 웃음으로 대답한다. 그 흐뭇한 광경에 혼자 실실 웃으며 도청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섬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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