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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다시는 오지 않으리. 낙동강 제1비경 경천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낙동강 제1비경. 경천대


“지금 와서 사진 찍으면 뭐해. 진작 찍었어야지.” 일면식도 없는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그의 말은 이미 반말이었고 대꾸라도 하면 주먹이라도 날릴 태세였다. 그건 여행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건드리면 눈물 한 바가지쯤은 금방이라도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상주 나들목을 빠져나오자마자 도로는 오가는 트럭들로 붐볐다. 다리를 건널 무렵 강변에서 차를 세웠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제방은 차치하더라도 다리보다 더 높이 쌓은 모래언덕이 가슴을 짓눌렀다. 

도로는 전쟁이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여서 식당 주위의 도로가에는 트럭 수십여 대가 줄을 지어 있었다. 길바닥은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고 트럭에서 흘린 듯한 모래들이 차창을 사정없이 때렸다.

 

경천대에 왜 왔을까. 모래톱이 없어진다는 소식에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은 속된 욕심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일까. 부끄러웠다. 무기력한 여행자는 부끄러웠다. 주차장에 내려서 망설였다. 하얀 연기만 계속 뿜어대다 용기를 내어 산을 올랐다.
 

아직 이곳에는 단풍이 남아있었다.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이 삭풍에 떨고 있었다. 단풍이 애처롭기는 처음이다. 돌담길을 따라 전망대로 향했다. 진한 솔향기가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바람은 여전히 차고 햇살은 비켜서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니 바람은 더욱 세찼다. 사방이 탁 트인 전망대에 서니 경천대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절경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바람결에 시끄러운 소리가 실려왔다. 아래를 내려 보니 트럭들이 하얀 모래밭을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강변으로 난 솔숲을 따라가니 경천대가 나왔다. 경천대는 낙동강의 제1비경이라 불릴 만큼 천혜의 절경이었다. 우담 채득기선생이 이곳에서 은거하며 터를 닦았다고 한다. 본래는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고 해서 자천대自天臺라고 불렀으나 우담선생이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 崇禎日月’이란 글을 새긴 뒤 경천대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경천대 바위 한 면에는 경천대 비가 있고 우담선생이 사용했다는 세 개의 돌그릇이 있다. 바위 위에 있는 이 돌그릇은 왼쪽의 것은 연을 기르던 연분, 가운데 것은 세수를 하던 관분, 나머지 하나는 약물을 제조하던 약분이다. 바로 옆에 있는 무우정도 공사로 막혀 있었다. 4대강과는 별도로 경천대로 오르는 철계단과 난간을 보수하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어수선한 분위기는 여행자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4대강사업만 아니었다면 여행자도 경천대의 아름다움과 이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도저히, 도저히.... 그런 글을 쓸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이 잔인한 광경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강변으로 나있는 길을 택하니 어느새 드라마 ‘상도’의 세트장이 나왔다. 그림 같은 세트장에서도 오가는 트럭들과 굴착기가 눈을 어지럽혔다. 모래는 사라지고 깊은 강물만 흘렀다. 지금이라도 공사를 멈춘다면 바로 앞의 넓은 백사장이라도 건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헛된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지금 와서 사진 찍으면 뭐해. 진작 찍었어야지.” 사진을 찍고 있는데 일면식도 없는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그의 말은 이미 반말이었고 대꾸라도 하면 주먹이라도 날릴 태세였다. 그건 여행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 건드리면 눈물 한 바가지쯤은 금방이라도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경천대 안내책자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천대. 깎아지른 기암절벽, 굽이쳐 흐르는 강물 울창한 노송숲으로 형성되어 하늘이 만들었다 하여 자천대라 하였으나 하늘을 떠받든다는 뜻으로 경천대라 불림. 바위가 삼층으로 대를 이루고 경천대비가 있으며 낙동강 1,300리 물길 중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나 있다.’

 

경천대 홈페이지(http://gyeongcheondae.sangju.go.kr)에는 ‘낙동강 1300리 물길 중 하늘이 스스로 만든 곳’이라고 모래밭이 아름다운 경천대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하늘은 이미 인간을 버렸고 강은 말문을 닫아버렸다. 인간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 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畏敬)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 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久遠)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憐憫)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 신 동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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