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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곽

이 문이 아니라면 호남은 없다.

 

이 문이 아니라면 호남은 없다.
- 호남의 수도, 충청의 목구멍. 전주성 풍남문

날씨가 더워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뜻하지 않게 거대한 옛 성문을 만났다. 전주에 오면 지나는 길에 간혹 보곤 했던 풍남문이었다. 내릴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다시 땡볕에 섰다. 버스를 기다리는 아주머니, 재잘대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 시장 이곳저곳에서 더위에 지친 목청을 내느라 안간힘을 쓰는 상인들로 거리는 북적댔다.

 

풍남문. 그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예로부터 전주를 일러 흔히 ‘풍패향’이라 했다. ‘풍패향’ 혹은 ‘풍패지향’은 어디에서 온 말인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나라는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멸망하였다. 진나라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초나라 항우를 누른 후 한고조 유방은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유방이 태어난 곳이 지금의 강소성 패현인 시골의 소읍 풍패豊沛였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관향이 바로 전주였다. 그래서 유방의 고향 풍패에 빗대어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르게 되었다. 풍남문은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인 셈이다. 전주성의 남문이 곧 풍남문이다.

 

다행히도 성문은 열려 있었다. 예전에는 온전했을 전주성의 웅장한 모습은 간 데 없고 풍남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조선왕조의 풍패지향인 전주는 호남지역을 관할하는 전라도의 중심도시였다.

 

당초 전라감영이었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이 있었으나 정유재란 때에 모두 파괴되었다. 이후 영조 때에 전주를 호남의 수도로 여겼던 관찰사 조현명에 의해 대대적이 개축을 하게 된다. 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문을 세우고 이때 남문을 명견루라 하였다. 그러나 명견루는 영조 43년인 1767년에 큰 화재로 불타버렸다.


 

현재의 문루는 그 이듬해에 당시의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한 것으로 풍남문이라는 이름도 이때 붙인 것이다. 홍낙인은 전주가 “왕실이 발원한 곳으로 예부터 풍패라고 일컬어....” 왔다는 이유를 들어 명견루를 풍남문으로 고쳐 불렀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순종 융희 원년(1907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전주성의 성곽과 성문은 철거되고 불행 중 다행인지 이 풍남문만 남게 되었다. 호남의 중심 성곽으로 군림하던 전주성이 철거되는 비운을 맞게 된 것이다. 옛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1978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보수공사로 풍남문은 옛 모습을 되찾았다.

 

풍남문은 아직 옹성이 남아 있다. 또한 이 건물에서는 다른 성곽의 문루에서 잘 볼 수 없는 특이한 구조가 있다. 아래층 내부에 전후 두 줄로 4개씩 세운 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2층의 모서리 기둥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기둥배치는 한국 문루건축에서는 희귀한 양식이다.

 

오랜 부침을 거듭한 풍남문은 조선 말기 천지개벽할 만큼 굵은 역사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흔히 동학으로 불리는 갑오농민전쟁의 전면에 전주성이 등장하게 된다. 1894년 1월 고부에서 봉기한 농민군이 4월 7일 황토현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26일에는 전주성까지 불과 4km 거리에 있는 삼천에 이르렀다. 다음날 전라감사 김문현은 성문을 닫고 민가 수천 호에 불을 질러 농민군의 공격을 막으려 했으나 한낮이 되자 농민군은 큰 저항을 받지 않고 전주성에 입성하게 된다. 이리하여 호남의 심장부 전주성은 농민군의 수중에 들어가게 된다. 그 후 전주화약이 맺어질 때까지 농민군은 경군과 대치하며 주둔하게 된다.

 

100년을 훌쩍 넘긴 오랜 세월이 흘러서인지 풍남문에서는 그때의 외침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일상에 바쁜 남문시장 상인들만이 불볕을 견디며 더 나을 것이 없는 내일을 위해 오늘도 고단한 삶을 살고 있었다.

 

보물 308호인 풍남문이 30년 만에 새 단장을 한다고 한다. 기와지붕을 고르고 빛바랜 단청을 새로 칠한다고 한다. 주위의 일부 터를 매입하여 거리에서도 풍남문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한다고 하니 기대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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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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