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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땀 흘리는 불상과 화려한 십자형 종루, 완주 송광사



 

땀 흘리는 불상과 화려한 십자형 종루, 완주 송광사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완주 송광사를 찾았다. 송광사하면 누구나 순천 조계산 송광사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완주 종남산에도 한자 표기도 똑같은 송광사가 있다.

 

이날 일정이 바빠 사찰 진입의 정석을 무시하고 옆문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나타나는 휑한 절마당이 다소 당혹스러웠다. 일주문에서 들어왔더라도 진입로의 정연함 에 비해 중심마당의 그 황량한 느낌은 아마 더 했을 것이다. 평지사찰의 가람배치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송광사는 옛 백제 지역 사찰들이 보여주는 전통을 면면이 간직하고 있다.

 

마당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십자형의 종루이다. 종을 달아 놓은 2층 종루인데 열 십자 모양의 건물이 인상적이다. 화사하면서도 현란한 독특한 외관은 보는 이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이러한 십자형 건물은 흔치 않으며 더욱이 조선시대의 유일한 열 십자형 2층 누각으로 그 가치가 크다.(보물 제1244호)


 

휑한 절마당에 상당히 육중한 대웅전(보물 제 1243호)이 자리하고 있다. 절이 창건될 무렵에 처음 지어졌고 철종 8년인 1857에 중건되었다. 처음에는 2층이었으나 중건하면서 단층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다른 건물에 비하여 가운데 칸이 비교적 좁고, 문 위 벽면에 빗살무늬 창살 대신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특징이다.

 

건물 안쪽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와 약사여래를 함께 모셔 놓은 소조삼불좌상(보물 제 1274호)이 있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아미타여래좌상은 국가에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리는 불상으로 유명한데, 외환위기 때인 1997년 12월에도 땀을 흘렸다고 한다.

 

본존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과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불상을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숭정 14년’ ‘숭덕 육년’이라는 명과 청의 연호를 나란히 기록하고 있어 당시 명, 청 양국의 눈치를 살펴야 했던 조선의 처지를 알 수 있다. 무량사 소조아미타불상(5.4m)과 함께 가장 거대한 소조불상(5m)중으로 알려져 있다.

 

송광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서로 엇갈린 주장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신라 경문왕 때 도의선사가 창건하였다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 폐허가 되어가던 것을 고려 중기의 고승 보조국사가 제자를 시켜서 그 자리에 절을 지으려고 했지만, 오랫동안 짓지 못하다가 광해군 14년인 1622년에 응호·승명·운정·덕림·득순·홍신 등이 서로 합심하여 짓기 시작하여 인조 14년인 1636년에 완공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송광사개창비의 기록을 들어 비의 이름 자체가 ‘개창비’인데다 그것을 건립한 해도 창건불사가 마무리된 1636년인 점을 들어 송광사가 조선 후기에 창건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문헌적 근거나 유물, 유적이 없다는 것도 그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최근 송광사에는 연밭이 조성되어 여름이면 연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이곳은 봄이면 진입로부터 약 2㎞에 걸쳐 펼쳐지는 벚꽃이 장관을 이루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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