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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길

느릿하게 걷는 즐거움, 흑산도도보여행

 

느릿하게 걷는 즐거움, 흑산도 도보여행


흑산도는 흑산 팔경으로 유명한 영산도를 비롯하여 홍도, 태도, 가거도, 만재도, 대둔도, 장도 등의 수많은 섬을 껴안고 있는 오지랖 넓은 섬입니다. 부두가 있는 예리항은 고기잡이 어선과 상가 등으로 언제나 흥청대는 곳입니다. 모양이 새 입과 같아 모든 것을 끌어 들이는 형국이라 하여 예리로 불립니다.


예리항은 흑산도답게 곳곳에 홍어를 파는 식당들이 즐비합니다. 흑산도 홍어는 육지의 그것과는 달리 삭히지 않고 그냥 회로 먹습니다. 섬치고는 꽤나 번화한 항구이지만 아주 오래된 집들이 진한 옛 추억을 불러옵니다.


선착장 뒤에는 벼룩시장이 열립니다. 건어물이 대부분이지만 싱싱한 횟감도 더러 눈에 띕니다. 시장을 휑하니 둘러보고 자산문화전시관으로 향했습니다.


전시관은 손암 정약전 선생을 기리는 문화공간입니다. 자산어보와 흑산도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흑산도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곳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도보여행을 시작합니다. 딱히 정해진 코스도 잡지 않고 그냥 걸을 수 있는 데까지 걷기로 하였습니다. 흑산중학교로 난 바닷길을 걸었습니다. 멀리 상라산성이 보입니다. 성의 모양이 반달을 닮아 반월성이라고도 합니다. 장보고 선단이 중국을 왕래할 때 흑산도를 거점으로 활용했던 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1박2일 팀이 묵었던 흑산비치호텔 아래에는 오래된 조선소가 하나 있습니다. 흑산도에서 제일 화려한 호텔과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조선소의 풍경이 묘하게 잘 어울려 보입니다.


흑산중학교 벽면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바다를 건넜습니다. 아주 짧은 길이지만 흙 냄새나는 흙길이 여행자를 반깁니다. 따스한 봄의 향기가 흙 내음에 묻혀 전해집니다.


언덕배기에 성당이 보입니다. 초장골 전시관이 있는 성당은 아담하니 참 예쁩니다.


성당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그만입니다. 내영산도, 외영산도, 다물도, 대둔도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대입니다. 성당 옆 언덕에는 빨간 지붕을 한 진리교회가 있습니다. 성당만큼 예쁜 건물입니다.


고개를 넘으니 진리입니다. 진리는 흑산면의 중심지입니다. 옛날 흑산진이 있었다 하여 진리라고 불립니다.


마을 앞에는 해수욕장이 하나 있습니다. 철이 일러 피서객들이 없는 해수욕장은 동네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놀이터입니다.


물이 참 맑습니다. 길은 바다로 계속 이어집니다. 당숲으로 가는 입구에는 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철제로 만든 흔들다리인데 흑송교라 불립니다. 흑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란 뜻으로 다리 이름을 지었습니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당산은 흑산도에서 가장 울창한 숲을 자랑합니다.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에도 흑산도 주민들은 이 당산의 나무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신성시 했던 장소입니다.


흑산도와 주변의 섬에는 모두 15개의 당산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마을의 번영과 풍어를 기원하는 진리당과 용왕당이 있습니다. 진리당은 당산의 입구에 용왕당은 바다 끝에 있습니다.


당산숲은 걷기 좋은 곳입니다.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합니다. 바람 소리가 머리를 맑게 합니다. 파도 소리가 아련한 그리움을 자아냅니다. 동행했던 친구는 아예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봄길은 행복했습니다. 이 숲을 벗어나면 모든 즐거움이 사라질 것 같은 착각이 듭니다.


다 늦은 동백꽃도 따뜻한 봄을 이기지 못해 길에 누웠습니다. 졸음을 이기지 못한 어떤 동백꽃은 아예 숨마저 멈추었습니다.


진리당에서 다시 포장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포장길이 싫어 도로 건너 산길을 잡았는데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걷기로 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배낭기미해수욕장이 있습니다. 샛개와 더불어 흑산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입니다. 몽돌로 된 해수욕장 주위로는 해송이 자라고 있어 햇빛을 피할 수 있습니다.


배낭기미라는 말은 흑산도 사투리입니다. "배가 닿는 곳" 혹은 "배가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이곳에서는 봄에는 숭어 개매기 축제를, 여름에는 바다 수영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해수욕장 건너편에는 작은 습지 저수지가 있습니다. 철새들이 날갯짓하며 여행자 주위를 맴돕니다. 깊은 적막을 깨는 새소리에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읍동으로 가는 길에 한 낚시꾼이 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미끼도 없는데 던지기만 하면 고기가 올라옵니다. 하도 신기해서 무슨 고기냐고 물었더니 숭어라고 합니다. 큰 낚시바늘이 인상적입니다.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고기 바구니는 금세 숭어로 가득 찼습니다.
 

어느덧 길은 상라봉 아래 읍동마을에 이르렀습니다. 흑산도에 처음으로 사람이 거주한 곳이라고 합니다. 흑산도의 중심마을로 관아터가 남아 있어 읍동이라 하였습니다.


읍동마을 앞에는 옥섬이라는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옛날에 죄를 지은 사람을 최장 60일까지 가두던 곳이라 하여 감옥 獄자를 써 옥섬이라 했습니다.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면 2m 깊이의 동굴이 보입니다. 죄수들이 은거했던 곳입니다.



갑자기 무언가 푸더덕 소리를 내더니 하늘로 솟구칩니다. 가마우지 같이 보입니다. 미처 도망을 못 간 한 마리는 고개를 숙이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괜스레 미안해진 여행자는 조용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허기가 졌습니다. 눈을 씻고 봐도 마을에는 식당이 없었습니다. 겨우 찾은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샀습니다. 참 소박한 가게였습니다. 과자 하나가 주는 행복이 이렇게 큰 줄을 몰랐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걸었습니다. 상라봉이 지척입니다. 탑산골 골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끕니다. 나무 아래에는 석탑과 석등이 사이좋게 있었습니다. 무심사지입니다. 읍동마을 주민들은 석탑과 석등을 각각 '암탑'과 '수탑'으로 부르며 매년 정월 초하루에 당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상라봉 십이고갯길을 앞두고 도보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 도보 여행 : 예리항-자산문화도서관-초장골성당(흑산성당)-진리-진리해수욕장-각시당(진리당)과 용신당(용왕당)-배낭기미해수욕장-옥섬-읍동-무심사지(약 4km-느릿느릿 2시간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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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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