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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옛 가락에 취한 최참판댁의 봄-소설 <토지> 하동 평사리


 

옛 가락에 취한 최참판댁의 봄-소설 <토지> 하동 평사리

 

다시 평사리를 찾았습니다.

여행자는 최참판댁이 평사리에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곳을 자주 찾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조붓조붓한 돌담길과

조부잣집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소설 토지에 나오는 어떤 집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상상만으로 길상과 서희의 흔적을 더듬고 했었지요.

 

가상의 공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도 가끔 찾았습니다.

서희와 길상이 금방이라도 나올 듯하였습니다.

별당아씨와 구천의 애절한 사랑을 부러워하곤 했습니다.

월선이 주막에서 저무는 섬진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용이를 기다렸습니다.

 

오늘 다시 찾으니 평사리는 제법 번화한 시골마을이 되었습니다.

나귀가 끄는 우마차를 타고 동네를 도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삿갓배미 다락논에는 유채가 가득 피었습니다.

노란 유채와 초록의 보리밭이 잘도 어울립니다.

용이가 사는 초가집도 보이고 김훈장이 살던 기와집도 보입니다.

 

논두렁을 걷는 맛이 참 좋습니다.

틀에 박힌 듯한 여느 민속마을과는 달리

경사를 따라 층층 지은 집들이 정겹습니다.

 

형제봉을 배경으로 최참판댁이 위엄 있게 서 있습니다.

악양 들판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섬진강 줄기가 휘돌아 흐르는 햇빛 넘치는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별당에는 수양버들이 연못에 늘어져 있습니다.

안채에는 명창이 구성진 소리를 하며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매주 토, 일요일 2시에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니 문득 조준구의 첩인 향심이가 가야금을 연주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향심은 가야금을 내려서 줄을 고른다. 손끝에 닿은 줄이 부르릉 떨면서 운다.

'...자아 그러면 가야금이 내 대신 울어주겠지, 서러워하겠지. 오늘같이 맑은 날엔 가야금도 제 목청을 뽑아줄 게 아니야?'

 

가야금 줄을 누르고 퉁기는 손끝에서 청아한 소리가, 구슬같이 물방울같이 새벽에 사라지는 별같이 우는 밤새 소리같이 흐느낌이 되고 통곡이 되고 한탄이 되면서 향심의 얼굴에 짙은 우수가 흐른다.

 
명창의 구성진 소리와 가야금 연주에 취해 보세요.



절세가인은 아니지만 어딘지 투박해 뵈는, 미모에 가까운 얼굴이다. 그 얼굴은 우수가 흐르면서 작아지고 커지는 것만 같다. 가느다란 울음소리가 가야금 울음을 타고 넘어간다. 굽이굽이 넘어간다.

 

별안간 향심은 다섯 개의 줄을 모조리 움켜잡듯 한꺼번에 퉁긴다.

둥당둥당! 

요란하고 어지러운 소리와 더불어 가야금은 무릎에서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휴우!">

 

사랑채로 향했습니다.

누마루에 서니 시원한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악양들판과 부부송, 섬진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옛 가락에 취해 한참을 누마루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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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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