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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아내가 최고로 꼽은 제주 오름의 꽃, 아부오름



목장에서 본 아부오름과 높은오름

아내가 최고로 꼽은 제주 오름의 꽃, 아부오름
- 로마시대 원형극장 같은 ‘아부오름’

동거문오름과 백약이오름, 영주산

제주 오름은 여행자에게 산중의 암자 같은 존재이다. 이름난 산사들이 몰려든 사람들로 고요함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관광자원이 된 제주도는 그 특유의 신비를 잃어가고 있다. 깊은 산중의 암자처럼 그나마 제주의 오름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을 덜 타고 있다. 우리 국토에 제주도마저 없었다면 얼마나 밋밋했겠느냐는 누군가의 말처럼 제주도에 오름이 없었다면 제주도는 진정 제주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높은오름 

“이번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

여행 마지막 날 두모악에서 차 한 잔을 하며 아내에게 물었다.

“어, 거기 말이야, 무슨 오름이라 했지?”

“아부오름?”
“응. 정말 좋더라. 두모악도 좋았고.”


의외의 대답이었다. 전날 아부오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저기를 올라가야 해?” 가파도에서 자전거 타기와 걷기를 반복했던 아내는 지쳐 있었다.

 서남쪽으로는 작은돌이미, 개오름, 모지오름, 비치미, 민오름 등이 보인다.

사실 목장 입구에서 오름까지는 어림잡아 200여 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아부오름이 해발 301.4m이지만 목장이 해발 250여 미터 정도에 있어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앞에서부터 작은돌이미, 개오름, 모지오름

여행자는 이럴 경우 무리한 동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쉬고 싶으면 차에서 휴식을 취하라고 말하고 오름을 향했다. “아빠, 같이 가. 나도 산에 가고 싶단 말이야.” 일곱 살 딸아이가 냉큼 달려온다. 체력 하나는 기특한 놈이다. 역시 여행자의 딸답다. 아내도 하는 수 없이 뒤를 따랐다.

 아부오름 분화구와 높은오름

아부오름은 목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위에는 오름을 안내하는 특별한 이정표가 없었다. 다만 목장 안에 앞오름이라고 새긴 돌비석이 있을 뿐이다. 숨이 가쁠 새도 없이 어느덧 오름에 올랐다. “이야~” 아내가 탄성을 질렀다. 참, 사람 일은 모를 일이다.

 

아내도 제주도를 예닐곱 번 왔었다. 그녀가 오른 오름은 대개 성산일출봉, 송악산, 산방산, 산굼부리, 우도의 소머리오름 등 관광지로 된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제주 중산간지대의 한적한 오름을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니 감동할 수밖에...

 

제주는 독특한 자연을 바탕으로 곳곳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되었지만 아직도 사람의 손길을 덜 타고 있는 곳이 바로 오름이다. 물론 올레길이 더 확장되면 오름도 예전의 신비를 점점 잃어가겠지만 말이다.

 

여행자는 제주 오름을 호령하는 ‘오름의 여왕’으로 우아한 다랑쉬오름을 꼽았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곳 아부오름은 ‘제주 오름의 꽃’일 것이다. 아부오름을 중심으로 주위 오름들이 꽃잎처럼 산개해 있다.

 손자봉과 용눈이오름 뒤로 성산 일출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동쪽으로는 높은오름,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동거문오름, 손자봉, 멀리 우도의 소머리오름과 성산 일출봉까지 보인다. 남쪽으로는 좌보미, 동거문오름, 영주산, 개오름, 비치미, 성불오름이 있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샘이오름, 거문오름, 안돌오름, 체오름, 당오름, 돛오름이 있다. 이 수많은 오름 가운데에 아부오름이 있다.

 높은오름, 손자봉과 용눈이오름 사이로 멀리 우도의 소머리오름이 보인다

아부오름의 분화구 안에는 마치 꽃술처럼 삼나무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꽃 속에 다시 꽃을 피운 모양인 아부오름은 거대한 꽃잎에 둘러싸인 한 떨기 꽃과 같은 오름이다.

 

아부오름은 일찍부터 <압오름>이라 불렸다. 송당마을과 당오름 남쪽에 있어 <앞오름>이라 하며 한자를 빌어 표기한 것이 <전악前岳>이다. 산모양이 움푹 파여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믿음직스럽게 앉아 있는 모습과 같다 하여 <아부오름亞父岳>이라고도 한다. 아부는 제주방언으로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사람을 뜻한다.

 한라산과 오름 군락

아부오름은 완만하고 단순한 형태로 원형 분화구의 대표적인 오름이다. 오름 정상에는 분화구인 굼부리가 패어 있다. 굼부리 안으로는 비탈이 완만하여 내려갈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굼부리 안의 삼나무 숲이다.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같이 둥근 원형을 하고 있는 삼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한라산

아부오름은 1999년에 만들어진 영화 <이재수의 난>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영화는 1901년 일어난 제주민란을 소재로 하였다. 제주도에서 실제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의 충돌사건을 다룬 것이다.

 다랑쉬오름, 높은오름, 손자봉, 동거문오름

당시 제주도의 천주교인은 프랑스인 신부의 힘을 업고 민초들을 억압하였다. 이에 대정읍의 통인 이재수가 민초들과 함께 제주성에 있던 천주교인과 관군을 공격했고 제주성을 함락해 교인 등 700여 명을 죽이나 끝내 체포되어 사형을 당한다.

 백약이오름 기슭과 영주산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박해를 받았던 천주교인들이 역설적이게도 세월이 흘러 핍박의 가해자가 된 천주교의 폐단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종교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분화구 내의 삼나무숲은 영화 촬영 당시에 심었다고 한다.

 

분화구 둘레는 1,400미터 정도이다. 잘 다듬어진 분화구 언덕을 따라 주변 오름을 감상하며 느릿하게 산책하기에 좋다. 연인이나 가족과 동행하여 가만히 걷기만 해도 좋다. 깊은 고요와 광활한 오름 군락 속에 서로의 존재가 소중함을 절로 알게 되는 곳이다.


 

☞ 여행팁 아부오름은 제주 오름 중 가장 오르기 쉬운 오름 중의 하나이다. 어린 아이도 오를 수 있어 가족여행지로서도 제격이다.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에 있다. 건영목장을 찾으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네비게이션에 ‘아부오름’을 검색해도 된다. 단 오름이 목장 사유지 안에 있으므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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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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