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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바람과 돌담 사이, 가파도 청보리밭

 


 

바람과 돌담 사이, 가파도 청보리밭

 

바람이 모질다는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5.5km, 직선거리로는 2km밖에 되지 않는 곳에 평평하게 누운 섬 하나가 있다. 이름 그대로 거센 파도가 밀려온다는 가파도이다.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의 유명세에 밀려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하던 이곳에 최근 들어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사실 여행자가 가파도를 찾은 건 우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계획된 것도 아니었다. 제주도 본섬 외에 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우도 , 마라도 등의 유인도는 이미 다녀왔다. 가파도와 비양도를 아직 찾지 못해 이날 가족과 함께 가파도를 찾았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정도에 불과한 가파도는 섬 전체가 27만여 평 정도이다. 조선 성종 때인 15세기 말 이곳에 목마장이 생기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섬이다.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가 살게 된 것은 1842년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보다 앞서 영조 26년인 1750년에 제주 목사가 조정에 진상하기 위하여 소 50마리를 방목하였으나 소의 약탈이 빈번하여 소들을 지키려고 1842년에 40여 가구 주민들의 입도를 허가하였다고 한다.

 

접시 모양으로 평평한 섬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20.5m에 불과하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산이 한라산이라면 유인도 중 가장 낮은 섬이 가파도이다. 가파도에서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한라산 자락을 보고 있노라면 가장 낮은 섬의 고단함을 알겠다.

봉긋 솟은 산방산과 길게 누운 송악산, 형제섬과 박수기정, 월라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라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제주를 찾는 이들이 가장 높은 곳을 좇아 한라산을 찾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곳 가파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르기에 급급한 세태의 한 단면일 수도 있다. 낮은 곳이 있어야 높이도 의미가 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최근 이곳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가파도에 올레 10-1코스가 개장하면서 가장 낮은 섬의 가치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지난 해 2만여 명이 찾았다고 하니 이 섬도 더 이상 변방의 외로운 섬은 아닌 셈이다.

사진 왼쪽으로 앞에서부터 형제섬과 박수기정, 월라봉이 보인다. 

상동포구에서 내려 할망당을 둘러보고 하동포구로 향했다. 아이가 있어 자전거를 빌려 섬을 돌기로 하였다. 사실 혼자라면 바다와 함께 한없이 걷는 길을 택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포장된 해안도로를 달리는 맛은 일품이었다. 물앞이돌에 이르니 거친 자갈길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걸어가야만 했다. 멀리 있던 마라도가 걷는 속도에 따라 조금씩 아주 느리게 다가왔다.

 

하도포구에서 잠시 요기를 한 후 가파도의 명물 <청보리밭>으로 향했다. 이렇다 할 명소는 없지만 검은 현무암 해변과 멀리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단산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가파도의 전경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돌담 너머로 고개를 내미니 끝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18만여 평에 달하는 보리밭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3월에서 4월 중순까지 보리잎의 푸름이 절정을 이룬다는 가파도 청보리는 전국에서 가장 먼저 푸르게 자라난다.

 

이 절정의 푸른빛은 축제로 이어졌다. 작년부터 시작된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그것이다. 보리밭 산책로는 누구나 편히 걸을 수 있다. 30여 분 걸리는 A, B코스로 나누어 길을 내었다.

단산과 송악산, 산방산

청보리가 여물어가는 시절 바람에 너울거리는 청보리밭을 거닐면서 제주 특유의 검은 현무암 해안을 걸어 보자. 아름다운 돌담길과 푸른 바다, 바람마저 눕는 청보리 밭을 걷노라면 가파도의 봄날은 추억 속으로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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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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