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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신선의 술병이 꽂힌 고창의 비경


 

신선의 술병이 꽂힌 고창의 비경


  병바위와 소반바위, 신선이 술에 취해 넘어져 들고 있던 술병이 땅에 꽂힌 병바위와 소반이 엎어진 모양의 소반바위

고창읍에서 선운사로 가다보면 너른 들판에 느닷없이 우뚝 솟은 바위산들을 보게 된다. 한눈에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전북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의 이 바위들은 저마다의 이름과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할매바위, 병바위, 소반바위, 안장바위, 선바위, 형제바위. 신선이 세상일은 저만큼 밀쳐두고 잠시 경치에 취할 만큼 독특한 생김새의 바위들이 비경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아산초등학교 인근에는 신선이 술에 취해 이곳에서 넘어져 들고 있던 술병이 거꾸로 땅에 꽂혔다는 병바위와 소반이 엎어진 모양이라는 소반바위의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아산초등학교와 병바위 일대

구암리와 반암리 마을 사이로는 인천강이 흐르고 있다. 조선 명조 때 하서 김인후 선생의 문하생인 변성진이 강의 경치에 매료되어 현 아산초등학교 옆 강변의 호암 옆에 초당을 짓고 그의 형인 변성온과 함께 문화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의 인천仁川이라는 호 역시 이 강이 고창 평야를 자주 범람하자 강을 어질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으로 ‘어질 인 내 천’으로 지었다고 한다. 또한 바위는 인천의 형의 호인 병 호 바위 암을 써서 호암이라고 했다. 이 바위는 일명 장군바위라고도 한다.



두락암과 두암초당

  말 안장을 닮은 안장바위

그런데 이 병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달리 보인다. 특히 마을 입구의 다리를 건너 구암리 쪽 강둑에서 병바위를 보면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시원한 이마와 오똑한 콧날, 꽉 다문 입모양이 너무나 선명하다.


  병바위 앞으로는 인천강이 흘러 강변 비경을 만든다.

병바위 위에는 금보깨(금복개-금으로 만든 그릇 뚜껑)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었으나 워낙 가팔라서 아무도 오를 엄두를 못 냈는데 한국전쟁 직후 김효영이란 산악인이 등반하여 금보깨는 찾지 못하고 수백 년 된 소나무만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병바위 꼭대기에 금보깨가 있다고 믿어 왔다고 한다. 어쩌면 마을사람들에게 있어 병바위는 ‘큰 바위 얼굴’처럼 오랜 믿음과 소망의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병바위, 병이 거꾸로 꽂힌 모양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아산초등학교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족히 수십 미터는 될 바위절벽이 있다. 두락암 혹은 전장(좌)바위로 불리는 절벽 아래에 정자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두암초당은 호암 변성온과 인천 변성진 형제가 만년에 머문 곳이라고 한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마치 곡식을 되는 말과 같고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두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병바위 일대는 호남 8대 명혈로 지목된 인촌 김성수의 조모인 정씨 부인의 묘가 있다. 술 취한 신선이 누워있는 형국이라는 선인취와형이라 한다.


할매바위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