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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TV, 영화 촬영지

영화마을로 다시 태어난 산골마을, 금곡영화마을



 

영화마을로 다시 태어난 산골마을, 금곡영화마을


 

단풍나무숲으로 유명한 문수사 입구 마을에서 비포장길을 잡아 산을 넘었다. 트레킹으로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축령산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길이다. 먼지 폴폴 나는 산길을 얼마나 갔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린 듯한 마을이 나타났다.


 

조붓조붓한 돌담길이 인상적인 마을에 들어서자 오래된 초가지붕을 엮고 있는 손길들이 바쁘다. 마을 한 구석에는 우물이 있고 마을 입구의 장승이 길손들의 안녕을 빈다. 근래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물레방아도 가는 물줄기에 힘입어 열심히 돌고 있다. 마을의 오랜 내력을 설명이라도 하려는 듯 당산나무는 하늘을 향해 굵직한 가지를 끝없이 뻗는다.


 

금곡영화마을. 이 오지의 산골마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만남의 광장’, ‘왕초’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영화와 드라마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마을 풍경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옛 고향의 풍경이여서 이 산골마을이 영화촬영지로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제일 처음 간 곳은 ‘만남의 광장’ 촬영지였다. ‘어떤 영화지’하며 의문을 품는 여행자에게 동행한 이가 임창정이 나왔던 영화로 강원도의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설명한다. 세트장은 다 쓰러져가고 있었지만 마당에 있는 펌프와 속이 영글고 있는 배추밭이 눈에 들어온다.





실개천 너머의 언덕 비탈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얼마나 감이 많이 달렸는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가지가 축 늘어져 있다. 우리가 추억하는 고향의 풍경은 이렇게 감이 익어가는 소박한 것일지도 모른다.


 

맞은 편 골목길은 ‘내 마음의 풍금’ 촬영지로 가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붉음을 태우고 땅으로 돌아가는 단풍이 수북이 쌓여 있다. 기름통은 녹슨 지 오래고 투박하게 갈무리한 짚더미가 정겹다.


 

‘멍멍’ 갑자기 개들이 요란하게 짖는다. 여행자도 따라서 짖어대니 개가 당황스러운지 순식간에 입을 다문다. 단란한 가족으로 보이는 개들이 철창신세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요구했더니 철없는 강아지들이 문제다. 겨우 시선을 집중시켜 견공 가족사진 한 장을 찍었다.


 

영화 세트장은 이미 폐허 직전이었다.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였고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선생님(이병헌 분)을 사모했던 늦깎이 초등학생 홍연(전도연 분)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마을은 장성군에서 대대적으로 조성공사를 하고 있었으나 세트장은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고 쓰러져 가고 있었다.


 

초가지붕을 수놓고 있는 은행잎이 을씨년스러운 세트장에 자연의 치장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도 역시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가 늦가을의 정취를 더해준다.



 

마을 골목길로 접어드니 옛 정미소가 눈에 들어온다. 투박하게 쌓은 벽체가 위태로워 보이지만 잠시 어릴 적 추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마을에서 반가운 건 닭이었다. 닭이야 많이 보겠지만 병아리와 어미닭이 이렇게 노니는 풍경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건 뭘까요? 동행한 이와 한참을 고민했으나 무슨 날짐승인지 알 수 없었다. 길에서 만난 마을주민도 모르겠다고 한다. 아시는 분?


 

골목에서 다시 마을길로 나왔다. 축령산에 오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투박하게 적힌 ‘묵은지김치만두국’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무조건 들어갔다.


 

마당에 있는 주인 양반은 괭이자루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식사가 되냐고 여쭈었더니 물론이라고 한다. 안주인이 나와서 방으로 안내를 하였다. 소박한 집이었다. 고향집을 닮아서 집이 참 좋다고 하니 도시 집에 비할 수 있겠냐며 손사래를 친다. 집이라는 게 반듯하다고 해서 정이 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살며시 반문을 해보았다.


 

이윽고 소박한 밥상이 나왔다. 묵은지와 야채, 고기를 다져 손수 빚은 만두라고 하였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니면 주인 내외의 정성이 깊어서인지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후식으로 잘 익은 대봉감과 손수 끓인 커피를 내놓았다. 82년에 고향인 이곳으로 왔다는 예순의 부부는 시골이라 드릴 게 없다며 떠나는 여행자에게 미안해했다.


 

마루 아래 축담 한 구석에는 ‘울금’이 있었다. 술과 함께 섞으면 누렇게 금처럼 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울금은 생강과의 식물로 인도 카레의 원료로 장수마을로 유명한 오키나와 일대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애용되고 있다. 약초축제에서 종종 보이지만 이렇게 농가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연히 들린 금곡마을은 푸근한 고향을 닮았다. 조금 불편하고 물질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아직 이곳은 정겨움이 넘친다. 마을길이 새로 놓이고 수세식 화장실이 들어서는 오늘의 금곡영화마을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겠지만 고향 같은 정겨움을 계속 간직했으면 한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