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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여섯 살 아이의 눈에 비친 ‘봉하마을’



 

여섯 살 아이의 눈에 비친 ‘봉하마을’


“아빠, 궁금한 게 있는데, 대통령 할아버지가 왜 죽었어.”

“.......”

“왜, 죽었냐고, 궁금한데. 그러면 산에는 왜 갔어.”

“.......”

아이의 뜬금없는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괴로워서”

아내가 겨우 답을 해주었다.

“떨어질 때 앞에서 받아주면 살잖아.”

여섯 살 딸아이의 갑작스런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앞에서 누군가가 받아 주었다면, 아니 뒤에서 떠밀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

 부끄러웠다. 봉하마을을 세 번이나 찾은 아이지만 대통령의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렸던 모양이다. 아니 나도 그러했었다. 앞만 뚫어지게 보며 아무 말 없이 운전만하는 아빠를 보던 아이도 제 풀에 지쳤는지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봉하마을 가는 내내 차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아이는 봉하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자전거를 먼저 챙겼다. 고인이 손녀를 태우고 돌던 마을회관 앞 공터를 아이도 연신 내달렸다. " 아빠, 이 그림 정말 잘 그렸지." "어, 왜 잘 그린 것 같아?" "응, 티비에서 본 것하고 똑같잖아."


 

 얼마 전 복원된 고인의 생가 앞뜰에는 메밀꽃이 피어 있었다. 하얀 메밀꽃과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가 사진기를 향해 웃기 시작하였다.



"아빠, 여기 누가 살았어." "대통령 할아버지." "너무 작다."


안방에는 고인과 여사의 결혼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백열등이 애처롭다.


'대통령이 그리울 때는 편지를 쓰세요.'


생태공원 '사람사는 세상'에도 사람들의 손길이 이어진다.


마을 앞 과수원에는 진영의 특산품인 단감이 발그스레 익어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묘지에 먼저 도착한 아이가 연신 나를 불렀다.


"아빠, 바닥에 글씨가 있어." "어, 사람들이 대통령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쓴 글이야." "읽어 봐야지." 아이는 돌에 새긴 글이 신기한지 하나하나 읽어가는 재미에 빠지고 있었다.



 고인의 묘는 생각보다 작고 초라하였다. 절을 하고 난 후 아이는 자전거를 향해 다시 갔다. 이제 아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봉하마을이 자전거를 타기에 너무 좋다는 것이었다.



 묘지 뒤로는 사자바위, 왼쪽으로는 부엉이 바위가 한눈에 보인다. 묘지 뒤에는 녹슨 벽이 있다. 든든한 보루가 있었다면.......


 묘지 앞에는 대통령할아버지에게 쓴 어느 꼬마아이의 노란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일흔 살의 노인이 보낸 편지도 있었다.


 부엉이바위는 말없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해가 이미 떨어졌음에도 정토원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고인의 회고록과 책들을 파는 가게가 생겼다.


명계남씨가 책을 사는 이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아빠, 저기 한 번 가보자." "그냥, 가자." 아내는 이미 어두워져 집에 가는 길을 걱정하였다. 아이는 막무가내로 떼를 썼다. 벽에 걸려있는 수많은 액자들이 아이의 눈길을 잡은 것이었다.



"담배 있나?"


고인을 추모하며 명계남씨가 쓴 글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  (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