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섬

거북이 해를 감추다. '사도일몰'





거북이 해를 감추다. ‘사도일몰’


 

 섬과 바다. 누구나 꿈꾸는 여행지이다. 생활의 답답증을 한목에 날리려면 동해를, 깊은 추억과 회상에 잠기고 싶은 이는 서해를, 올망졸망 섬들과 이야깃거리를 찾는 이라면 남해를 찾게 된다. 오랜만이다. 섬 여행. 이번 여행지는 사도였다.


 

 여수 일대의 섬들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백야도 와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사도로 들어갔다. 사도는 연목, 나끝, 사도(본도), 중도(간도), 증도(시루섬), 장사도, 추도 등 7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섬과 섬 사이는 얕은 뭍으로 연결되어 있어 썰물이 되면 몇 개의 섬은 아기자기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시멘트 길이 놓인 중도를 지나면 양면해수욕장이 한 면의 바다는 등에 업고 또 다른 바다 한 쪽은 가슴에 안은 채 포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 끝에 거북바위가 있다.



 이순신이 이 바위의 생김새를 보며 거북선을 착안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니 사실 여부를 떠나 흥미롭다. 거북이가 바다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형국인 이 바위는 일몰 포인트로도 손색이 없다.


 

 사도는 섬이 작아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사도 주위로는 수많은 섬들이 점점 떠 있어 어디를 봐도 손색없는 포인트지만 일출로는 사도해수욕장 인근이 좋고 일몰로는 본도해수욕장과 거북바위가 있는 중도 부근이다.


 

 사실 장군바위를 돌아 시루섬 끝 바위에서 보는 해넘이도 좋을 듯하였지만 시간이 벌써 여섯시를 넘기고 있었고 동행한 일행들이 있어 거북바위 일대에서 해가 바다로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거북바위가 보이는 시루섬 바위자락에서 일몰을 기다렸다.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거북이가 해를 감추는 듯 서서히 숨기더니 아예 훔쳐 버렸다. 하는 수 없이 바다를 멀리 내려다볼 수 있는 바위 끝으로 올라갔다.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 해는 마지막 모습을 불태우더니 이내 바다 건너 섬 사이로 몸을 완전히 숨겨 버렸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한다.


 

 오늘의 일몰은 순식간이었다. 옅은 연무가 있고 구름이 있었다면 한결 멋진 일몰이었을 텐데. 아쉬움이 든다. 사실 노을은 해가 주인공이지만 바람과 구름, 안개의 도움 없이는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어렵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면 사람들은 자리를 떠난다. 그러나 일몰이 남기는 마지막 황홀한 빛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태울 불그스레한 빛, 지는 해가 뿜어내는 강렬하고 거친 빛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잦아든 고요한 빛이 온 섬에 내리게 된다.


 

갯바위에 우두커니 앉아 파도의 정적과 빛의 고요를 맛본다. 사도에서의 하룻밤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서해의 일몰이 장엄한 황홀함을 주었다면 남해의 그것은 깊숙한 다채로움이 있었다.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 김천령(http://blog.daum.net/jong5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