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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금낭화 활짝 핀 서운암의 봄


금낭화 활짝 핀 서운암의 봄





내연산에 자리한 보경사는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과 탐방객들로 연일 번잡하다. 호젓한 절맛나는 곳을 원하는 이들은 보경사 서쪽 갑천 건너편의 서운암을 찾으리라.




오랜 가뭄으로 계곡은 말라 있다. 연둣빛 숲에 걸쳐진 돌다리를 건너면 서운암을 오르는 돌층계가 있다. 아직도 물이 고여 있는 작은 샘에서 시작하는 짧지만 앙증맞은 돌계단이 끝나는 빈터에는 돌탑 한 기가 길손을 맞이한다.


돌탑에서 길은 크게 휘어진다. 속세와의 인연을 단번에 끊어 버리라는 길의 묵시이다.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에게 암자를 둘러싼 돌각담이 다시 한 번 연을 끊으라고 외친다.



속세의 연을 끊었는지를 보려고 겹벚꽃이 돌각담 위로 고개를 내민다. 아니 여행자에게 어서 오라는 듯 화려한 옷을 입고 마중을 나왔다. 돌각담 사이의 작은 문을 들어서니 암자 마당이다.




비구니스님과 합장을 하고 암자를 둘러본다. 깔끔하다. 집은 사람을 닮는 법이다. 스님의 정갈한 손길이 암자 곳곳에서 느껴진다.



이리저리 암자를 둘러보다 화단에 피어난 담홍색의 금낭화에 눈길이 쏠렸다. 금낭화의 매혹은 글로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볼록한 주머니 모양의 화관에 물방울처럼 매달린 꿀주머니가 영롱하다. 꽃에 정신이 팔려 있다 무언가 싸한 느낌에 화단을 내려섰다.



"아마, 독사일거요. 여기는 뱀이 많아요." 순간 화들짝 놀란 내가 우스운지 스님이 덧붙인다. "도시에서 왔나 봐요." 시골에서 나서 자랐지만 뱀을 아직도 무서워한다. 뱀이 많다는 건 아직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땅이라는 걸 반증하지만 겁이 나는 건 도리가 없다.


잠시 허한 웃음을 터뜨리고나자 암자는 이내 고요해진다. 암자마당에는 스님과 보살님 그리고 나 셋만 남았다.




초파일을 앞둔 암자에는 연등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이 고요한 암자에도 초파일만큼은 사람들로 붐비리라. 저마다의 행복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소중한 불을 밝히리라.




암자 뒷담을 돌아서면 적송, 참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대나무 사립문을 살짝 밀고 나가면 부도밭이다.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부도밭은 무성한 숲 아래 외진 곳에 있어 가장 고즈넉하고 호젓한 곳이다.



잠시 내려놓은 마음을 다시 추스려 암자를 나섰다. 메마른 계곡 바위에 누군가 돌탑을 쌓았다. 성근 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과 나무가 만든 그늘, 그 빛과 어둠 속에서 돌탑은 그저 모습을 드러낼 뿐 말이 없다.


빛과 그늘이 늘 공존함을 돌탑은 말없이 맨몸으로 보여주었다.



서운암은 포항 내연산 보경사의 산내암자이다. 보경사 바로 옆에 있는 갑천계곡을 건너면 암자가 있다.




▒ 바람이 소리를 만나니 바람에 손을 씻다(http://blog.daum.net/jong5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