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뜬금없이 동백섬을 찾았다.
봄빛에 몸마저 나른한 오후였다.
도시 여행을 잘 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 뜻밖의 일이었다.
부산에는 몇 번 다녀 갔을 뿐 동백섬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잡한 도로와 터널마다 돈을 받는 일명 '동전터널'로 인해 부산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지 않았었다.
매번 이 도시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 도망치듯 빠져나오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달맞이고개, 해운대, 광안리 해변을 거닐어 보는 게 전부였다.
여행이 아니라 잠시의 휴식, 적어도 나에게 부산은 그렇게 다가 왔었다.
동백섬.
동백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섬인줄 알았었다.
오랜 퇴적작용으로 섬은 육지가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동백나무도 울창한 소나무숲에 점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때 늦은 동백꽃만이 마지막 붉음을 태우고 있었다.
숲이 울창한 길을 잠시 걸어가자 이내 바다가 보인다.
해안 절벽 사이로 난 산책로가 인상적이다.
바다로 바추 붙은 이 산책로는 도시의 해안답게 말끔히 정비되어 있다.
멀리 해운대와 달맞이 고개가 보인다.
한가로이 세월을 낚고 있는 낚시꾼들과
젊음을 푸른 바다에 던져 수상레져를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이 바다를 차지하고 있다.
등대에 이르자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점점 떠 있는 섬들, 남해의 섬풍경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인간이 만들어낸 조형물인 광안대교와 해운대의 층층 호텔들이
도시의 섬을 황홀하게 만든다.
누리마루 APEC하우스와 광안대교
APEC 정상회담 회의장
섬의 위치 또한 빼어나다.
APEC 정상회담을 이곳에서 할 정도였으니 거기에 무슨 토를 달 필요가 있겠는가.
좌로는 해운대와 달맞이고개가 청룡을 이루고
우로는 광안리와 이기대, 오륙도가 백호를 이루는 곳에 동백섬 누리마루가 있었다.
등대가 있는 곳이 정수리에 해당한다면
누리마루는 눈의 위치에 있다.
누리마루 내부의 창으로 본 등대
멀리 오륙도가 보인다. 조수의 들고남에 따라 섬이 다섯 개 혹은 여섯 개로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운대가 최치원의 또 다른 호에서 붙여진 이름이듯 천년 전 고운선생도 이곳 풍광에 반한 모양이다.
멀리 오륙도가 보이고 오른쪽에 이기대가 있다.
APEC 정상회담장에 들어서서 바라보는 맛도 그윽하였다.
유리 밖으로 비치는 바다풍경이 자연스레 면분할이 되면서 조금 색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동백섬은 한마디로 인공미와 자연풍광이 잘 어우러진 도심의 섬이라는 생각이 든다.
섬에 관한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닌가 싶다.
아련한 그리움에 뜬금없이 찾았던 동백섬,
솔숲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신선한 바다공기마냥
도심의 이들에게 평온한 휴식처가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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