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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북두칠성을 모신 통도사 안양암




북두칠성을 모신 통도사
 안양암
- 산은 장쾌하나 절은 미망에 가리다.

 

통도사의 산내 암자인 안양암은 '통도사 팔경' 중의 하나이다. 통도사 개울을 건너 높은 곳에 자리한 안양암은 전망이 시원하고 통도사 경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암자이다.


유명한 선승 경봉스님이 출가한 곳이 이곳 통도사 안양암이라고 한다. 안양 동대라는 평평한 바위 위에 자리잡은 안양암은 고려 충렬왕 21년인 1295년에 창건되었다. 그후 고종 2년인 186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암자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이상하다. 통도사 경내의 넘치는 관광객들은 보았지만 이곳 암자까지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다. 가까이 가보니 약수터에서 물을 받고 있었다. 긴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암자로 가는 길을 재촉하였다.


매서운 바람이 볼을 훔치려는 순간, 암자가 내려다 보인다. 햇살이 비추는 영축산과는 달리 암자가 들어선 자리는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장독대 앞에서 옷깃을 한 번 더 여미고 암자로 내려 갔다.


경내에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와 몇 개의 건물이 전부이다. 원래 현재의 북극전만을 안양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나머지 건물들은 훗날 지어진 것들이다.


북극전은 흔히 칠성전이라고도 한다. 사람의 장수를 도와주는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이라는데서 비롯되었다. 도교신앙과 관계있는 칠성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며 이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수명신壽命神으로 불교화되었다. 사찰에 가면 흔히 삼성각을 볼 수 있다. 삼성각은 칠성七星, 산신山神, 독성獨聖 등 세 성인을 봉안하는 전각을 일컫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세 성인을 따로 봉안하여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으로 독립되어 있기도 하다. 도교신앙이 불교화 된 것이 칠성신앙, 토속신앙이 불교와 결합한 산신신앙, 천태산에서 도를 닦아 홀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나반존자를 독성이라 한다.

북극전 북두칠성을 봉안하는 불전으로 안양암의 모태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극전이 작은 암자에 있음에도 화려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것은 조선 후기에 칠성 신앙이 민중 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었다는 반증일 수 있다. 안양암에 서면 통도사 경내가 시야에 잡힌다는 소문을 들은지라 암자 이곳저곳을 샅샅이 둘러 보았다. 아무리 봐도 나뭇가지에 가려 통도사가 잘 보이질 않았다. 인기척을 듣고 스님 한 분이 방문을 연다. 통도사를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 어디냐고 여쭈자 돌아오는 답이 명쾌하다. " 뭔 소립니까. 여기서는 안보여. 통도사를 한 눈에 볼려면 헬기나 타면 모를까." 바람이 불자 추운지 휑하니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린다.


스님 말이 정답이다. 암자를 자주 다니다 보니 다양한 스님들을 만난다. 인간 사는 어디든 다 비슷하리라. 더러움이 있어야 청정하고  맑음이 있어야  탁함도 있는 법. 때론 아름답게 표현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

통도사 경내가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사실 풍경은 안목, 감성과 표현, 상상력에 따라 달리 보이겠지만 문학적 허용과 사실의 왜곡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양암에서 어찌 통도사 경내가 시원스럽게 보인단 말인가. '눈에 보이는 것만  풍경이냐. ' 라고 마치 도인인 양 시답잖은 글쟁이들의 과장은 차라리 '마음으로 보았다. 안양암에 통도사를 담았다.'고 하면 또 모를까. 안양암을 글로 쓴 이들이 안양함에 와보기는 했는지, 통도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가시에 찔리고, 돌부리에 넘어져는 봤는지, 때론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글이 필요하다.

하기야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건 꼭 눈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미망에 가려 보이지 않는 통도사의 전경은 아쉬웠지만 언덕 위 바위에서 바라보는 영축산은 장쾌하였다.

영축산의 연봉이 이어지는 서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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