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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스님의 재치 돋보이는 이 건물 정체는?

 

 

 

 

스님의 재치 돋보이는 이 건물의 정체는?

 

다불유시(多佛留是), 대체 이곳은 무엇 하는 곳일까?

 

 

지난 주말에 찾은 지리산 백장암. 눈이 소복이 쌓인 산중 암자는 고요했다. 암자 뜨락을 거닐고 있는데, 멀리 벼랑 끝으로 작은 건물 같은 것이 숲 사이로 언뜻 보였다. 무엇인데 저리 위태로운 곳에 있을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처음엔 해우소인가 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가는 길에 해우소는 따로 있었다. 그럼, 뭘까. 해우소를 지나 인적이 드문 길 모롱이에 자리한 이곳은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슬레이트 지붕을 이고 두 짝의 문이 달린 지극히 간소한 건물. 나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색색 연꽃을 그리고 기름한 나무에 세로로 내려쓴 ‘다불유시(多佛留是)’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글자대로라면 ‘모든 부처가 이곳에 머문다.’는 뜻이다. 부처가 머무는 곳이라….

 

 

아무리 궁리를 해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문을 열어볼까 하다가 무언가 영적인(?) 장소일 수도 있겠다 싶어 머뭇거렸다. 해우소가 바로 옆에 별도로 있으니 해우소는 아닐 터. 도대체 이 건물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한참을 서성이다 공양간으로 다시 나왔다. 마침 공양주 보살이 떡 좀 먹지 않겠느냐고 해서 염치불구하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궁금하시죠? 그것이 이곳 백장암의 명물입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알 수가 없네요. 부처가 머무는 곳이라고 적어 놓았는데….”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해우소입니다.”

“예? 아… 그렇군요.”

 

허를 찔렸다. 해우소(화장실)가 바로 옆에 없었더라면 당연히 해우소로 짐작하고 문을 열어 봤겠지만 지척에 해우소가 번듯이 있는데 해우소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스님들의 재치가 놀랍지요?”

“근데 해우소에 왜 ‘다불유시’라고 적었을까요?”

“아이 참, 영어로 해우소를 ‘더(다)블유시(WC)’라 하잖아요. 그 ‘더블유시’를 한자로 표현하니 ‘다불유시’가 된 게지요. 게다가 자연스럽게 의미도 연결시킨 거겠지요. 스님이니 당연히 부처님을 떠올리면서 이름을 지었겠죠.”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다시 가서 확인을 해보니 역시 해우소였다. 좌우에 문을 두 군데 내고 변기는 나무로 공들여 짠 덮개로 막아 두었다. 덮개를 여니 아래가 바로 낭떠러지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다.

 

 

 근데 이곳 창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기가 막힌다. 지리산 설경이 나뭇가지 사이로 마구 쏟아진다. 그야말로 이곳은 ‘다불유시(多佛留是)’. 부처가 머무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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