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쌍계사, 가을 지나다
겨울에도 꽃이 핀다는 지리산 화개골 쌍계사.
육조 혜능의 정상을 이곳에서 참배함이랴.
삼신산 눈 쌓인 계곡 위에서 한 떨기 꽃을 찾는다.
일주문 앞 계곡가를 두른 와편담장에 멈춘 눈길.
담장 중간 중간에 난 문,
문득 들여다보고 싶은 풍경이다.
승탑 몇 기.
그중 한 기에서 읽어낸 어렴풋한 글씨. 벽송당.
묵직한 둔기가 머리를 때린다.
벽계 정심, 벽송 지엄, 부용 영관, 청허 휴정으로 이어진 조선불교의 선맥
선풍을 날리던 대선사. 벽송당
이 외진 곳에 쓸쓸하니 고요하니 그렇게...
해강 김규진이 쓴 일주문 현판 너머로 불국정토로 가는 해탈의 문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여태 남은 단풍도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落葉歸根.
잎은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나니...
동백은 벌써 햇살 한 줌 가득 피어났다.
마음(心)이 곧 적(寂)이고, 설(說)한 바 없이 설하고 듣는 바 없이 듣는 것이니...
무설이니 설선이니 적묵 따위가 무엇이랴.
앙상한 나뭇가지엔 빈 바람만 가득할 뿐.
이곳의 마애불은 천진난만 천진불.
늘 깨어 있는 물고기가 허공을 울린다.
바람 소리를 들으려 허공을 쫓으나... 미망이다.
부지런히 비질을 하는 행자승은
무엇을 쓸어낼 것인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담장 앞에 앉았다.
올 8월에 이곳 쌍계사에 왔다는 행자승이 먼저 말을 건넨다.
오늘 처음 담장을 보았다고.
여태 왜 보지 못했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여여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
가을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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