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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지리능선, 청매암

 

 

 

 

히말라야가 따로 없는 지리산의 장관, 청매암

 

지리산 둘레길로 알려진 창원 마을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빙긋이 웃더니 이내 마을 뒤 산길을 앞서갔다. 거침없다. 얼마나 갔을까. 마을을 지나 막다른 길에 이르러서야 멈췄다. 어찌해서 이곳까지 왔을까. 의심은 이내 풀렸다. 길의 끝에 암자가 있었다.

 

 청매암

 

하얀 차 꽃이 피었다. 씨알이 굵은 호두도 차밭 여기저기 떨어져 있다. 밭둑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꽃이 폈네요. 감이 붉으면 꽃 피는 것과 매한가지 아니겠소.”

 

 청매암 차 꽃

 

 

“고개를 돌려보시지요.”

 

암자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띠며 저 멀리 능선을 가리킨다. 아…. 어쩜 이리도 도솔암에서 보던 풍경과 똑같단 말인가. 고도계를 꺼내보니 해발 350미터를 조금 넘길 뿐이었다. 하봉, 중봉, 천왕봉, 세석, 영신봉까지. 도솔암에서 바라보는 지리능선 바로 그 장쾌한 풍경 그대로였다. 스님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를 알겠다.

 

 해발 350m 정도인데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천왕봉과 지리능선이 장관이다.

 

 

청매암은 정견 스님이 20년 전에 이곳을 우연히 발견하고 암자를 짓기 위해 터를 닦기 시작했다. 당시 민가가 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울 계획을 잡았던 것. 토굴로 계속 있어오다가 2년 전에 인법당을 지어 제대로 된 암자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청매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암자의 이름을 청매라 한 것은 청매 인오(1548~1623) 스님을 기린 것이다. 암자가 자리한 곳은 오도재 기슭. 청매 조사가 도를 깨쳤다 하여 이름 붙여진 오도재에 청매암이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처이다. 1200고지에 있는 도솔암에 비해 800미터 넘게 고도가 낮음에도 청매암은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한 곳으로 보인다. 허기야 깨달음을 이루는데 마땅한 곳을 가려 찾음이랴.

 

 

“정남향입니다.”

 

혹시나 해서 좌표를 재봤더니 역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침반은 정남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암자를 세울 때 법당이 향하는 방향까지 꼼꼼하게 챙긴 스님의 안목이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히말라야가 따로 없소. 장관이지요.”

 

 

청매 조사는 서산 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서산 대사를 따라 승병장이 되어 3년 동안 싸워 공을 세웠다. 유명한 십무익송을 지었으며 그림에도 뛰어났다. 광해군 때 왕명으로 벽계 정심, 벽송 지엄, 부용 영관, 서산 휴정, 부휴 선수의 오대 선사들의 영정을 그렸다. 말년에 지리산 연곡사에서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 오도재로 넘어가는 지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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