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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섬진강 재첩국수 먹어 보셨나요?

 

 

 

 

 

 

섬진강 재첩국수 먹어 보셨나요?

 

노고단에서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화개로 내려갔다. 이즈음에서는 물길이 좁아져 강 아래의 하얀 모래밭은 볼 수 없지만 깊은 산속의 계곡처럼 자연그대로의 강줄기를 탐닉할 수 있다. 그 흔한 논 한 마지기도, 밭 한 뙈기도 없는 산기슭을 에돌아가는 길은 나그네의 들뜬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할 정도로 평탄하다.

 

 

미끄러지듯 달리는 강변 풍경이 잠시 멈췄다. 화개 삼거리 못 미친 곳에 있는 아주 오래된 쉼터. 강으로 바짝 붙은 언덕에 있는 이 쉼터엔 27년째 재첩국수를 말아내는 부부가 살고 있다.

 

등나무 덩굴이 쉼터를 가리고 있는데다 예전에 있던 트럭가게가 보이지 않아 혹시 주인내외가 더 이상 가게를 하지 않나 하며 주빗거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찾은 여행자를 반가이 맞으신다.

 

 

이곳을 들락거린 지도 벌써 15년쯤 되었으니 섬진강 강물만큼이나 깊다면 깊은 인연이겠다. 걸음을 옮기는데 눈에 익은, 가게와 주방으로 쓰던 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2년 전, 예전의 낡은 트럭은 버티다 못해 내려앉는 바람에 철거했단다. 대신 방도 한 칸 넣은 번듯한 조립식 가게가 새로이 생겼다.

 

“글쎄, 그 트럭을 치우던 날 어찌 그리 눈물이 나던지 모르겠소. 저 강물처럼 펑펑 울었다오.”

 

 

20년 넘게 함께해 온 트럭이 없어졌으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트럭은 이미 주인내외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 아니 삶 그 자체였으리라. 예전 트럭이 있을 때에는 그 안에서 잠도 자기도 하고, 음식도 만들고, 갖은 산야초 등의 물품들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기도 했다.

 

 

강 아래를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모든 게 조금씩 변해갔지만 아주머니의 국수 솜씨는 여전했다. 날씨라도 좋으면 쉼터 이곳저곳에 둘러앉아 아주머니가 말아내는 국수를 먹으면 그만이었다. 행여 날씨라도 추우면 강변 언덕 아래에 얼기설기 지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국수를 먹곤 했었다. 바람을 막아주는 언덕을 등지고 따뜻한 햇볕이 넘치는 강변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국수 한 그릇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예전의 낡은 트럭은 없지만 제법 번듯한 새 건물엔 이제 테이블도 몇 개 놓였다. 비바람과 추위를 피할 곳이 생겼으니 편리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허름한 비닐하우스에서 먹는 국수가 가끔 그립겠지만 섬진강 풍경은 변함없으니 애써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사치이리라.

 

 

강변 쉼터에 자리를 잡은 가게여서 이곳에는 원래부터 공원용 벤치와 긴 테이블이 있었다. 거기다 주인내외가 만든 평상 몇 개가 느티나무 아래 강변 쪽으로 놓이면서 강을 품는 곳이 되었다. 아마도 이곳만큼 멋진 풍경을 자아내는 곳은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곳에서 국수를 먹으면 섬진강이 맛국물이 된다. 아주머니는 푸른 섬진강에 국수를 말아내고 손님은 맑은 섬진강을 들이키는 셈이다.

 

 

재첩국수의 가격은 6천 원. 싸다고는 할 수 없는 가격. 그러나 알알이 통통한 재첩과 총총 썬 신선한 부추, 진한 재첩국물, 접시에 덤으로 내놓은 국수면, 잘 익은 묵은지, 메실 장아찌, 아삭한 열무 등을 함께 먹고 나면 비싸다는 생각은 싹 가시게 된다. 재첩국수를 먹는 순간, 누구든 국물 하나 남김없이 그릇을 비우게 된다.

 

 

그리고 길거리 쉼터에서 파는 음식이라고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음식이 맛깔스럽기도 하거니와 국수와 반찬을 내오는 그릇은 묵직하면서도 깨끗한 사기그릇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아주머니의 정갈함은 여전하다. 게다가 섬진강 풍경까지 덤으로 있으니….

 

“전국에서 재첩국수를 파는 곳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예전에 제가 진주에서도 팔았었는데, 지금은 여기서만 팔아요.”

 

 

벌써 7, 8년 전인가 보다. 아주머니가 몸이 많이 좋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섬진강을 오가며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늘 안쓰러웠는데 이제는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국에서 유일한 섬진강 재첩국수를 오래도록 맛볼 수 있을 터. 산 그림자 저무는 섬진강을 보며 오늘도 난 재첩국수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