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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지리산 암자, 벽송사에서의 하룻밤

 

 

 

 

지리산 암자, 벽송사에서의 하룻밤

- 스님이 환생해서 홀딱 벗고 운다니...

[김천령의 지리산 오지암자 기행⑥] 조선 선불교의 종가, 벽송사(상)

 

전나무 두 그루 / 널따란 바위 하나 / 산중의 암자 / 팔순의 보살은 / 종일 이곳에 머문다.

이곳에선 / 숲이 보이고 / 암자가 보이고 / 내가 보인다.

이곳에선 / 숲도 없고 / 암자도 없고 / 나도 없다.

 

 

종무소를 찾고 있는데 낯익은 사내가 아는 체를 했다. 알고 지내던 지역신문 기자였다. 주지 스님을 뵙고 막 내려가는 중이란다. 그가 가리키는 대로 종무소를 찾았다. 기와불사 건물에 있는 보살에게 오늘 이곳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고 하니 얼떨떨한 표정이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주지실로 향했다. 이윽고 주지 스님이 나왔다. “어, 내가 오라고 했어. 이 분.” 아뿔싸, 스님의 목소리는 며칠 전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중년사내의 목소리였다! 스님인 줄도 모르고 식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실없이 물었었다. 전화기 너머로 껄껄껄 웃으며 농을 던지며 스님이 답했었다. "밥 안 주는 절도 있든가요. 여태 다니면서 밥도 못 얻어먹은 모양이오?"

 

 

화장실 딸린 암자의 방

원돈 스님은 해인사에서 3개월 전쯤 이곳의 주지 스님으로 왔다. 예전 이곳 지리산의 백장암, 도솔암, 벽송사에 머물렀다가 해인사를 거쳐 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할머니가 쓰는 방을 내주세요. 화장실도 딸려 있어 편할 거요.” 보살은 스님의 다소 극진한 대접에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나대로 이 깊은 산중 암자에 화장실 딸린 방이 있다는 말에 의아했다. 청허당과 마주하고 있는 안국당은 템플 스테이나 절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이들을 위한 건물이다. 한옥으로 지은 방에는 실제로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애초에 빈방이 있으면 대충 끼워 자려고 했는데 산중에서 펜션 뺨치는 시설에서 잘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보살이 청소를 하는 동안 절을 둘러보았다.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나무장승

 

벽송사는 예전에 두어 번 온 적이 있다.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세가 제법 커진 것으로 보였다. 전나무 두 그루가 있는 입구 널따란 바위에 서면 벽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그루의 전나무가 벽송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셈이다. 맨 아래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청허당과 안국당이 마주하고 있고, 두 벌의 높은 축대를 오르면 ‘벽송선원’ 선방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양 옆으로 요사채가 있다. 선방 뒤로 원통전이 있고 그 옆으로 산신각이 있다.

 

미인송(좌)과 도인송(우). 미인송과 도인송을 잘못 알고 반대로 쓴 글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오류다.

 

원통전 뒤로는 벽송사의 상징이 된 도인송과 미인송이 있다. 도인송은 꼿꼿한데 비해 미인송은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있다. 제일 뒤쪽 예전 법당 자리로 보이는 곳에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그 옆으로 승탑 세 기가 오순도순 모여 있다. 청허당 뒤 절 입구에는 장승 두 기가 보호각에 둘러싸여 있는데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선방 주위에선 발소리도 죽이시고, 특히 오전에는 멀리서도 조심해야 합니다. 저곳은 스님들이 씻는 곳이니 들어가면 안 되고, 요사채인 저기도 마찬가집니다. 저 꼿꼿한 나무는 도인송, 그 옆은 미인송… 저녁 공양은 5시, 아침 공양은 6시, 점심 공양은 11시니 시간 맞춰 오시고… 옷은 그대로 입으시거나 필요하시면 별도로 드리고… 또 뭐가 있지.” 보살 아주머니의 설명이 끝이 없다. 청소가 끝난 방 한쪽으로 담요 하나, 이불 하나, 베개 하나, 수건 두 장이 놓여 있다.

 

 

저녁 5시, 공양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렸다. 공양간으로 갔다. 무심코 발우에 밥과 반찬을 담아 자리에 앉았더니 할머니 한 분이 야단을 친다. 그건 스님의 발우라며 그냥 접시에 먹으란다. 미처 접시가 있는 줄을 몰랐다. 발우가 먼저 눈에 띄어 거기에 음식을 담은 것이 사달이 났다. 처음이라 어리벙벙해서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불호령이 떨어진다. 불심이 아주 강해 보이는 할머니는 인상이 굳어졌다. 사실 스님들의 식기인 발우를 요즈음은 일반인들도 많이 쓴다고 강변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기로 했다. 옆에 있던 보살이 눈치를 채고 미처 설명을 하지 못했다며 할머니께 대신 사과를 했다. 어색한 분위기도 잠시, 묵묵히 공양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떡 한 접시를 내밀었다. 할머니였다. “말을 잘 들어야제. 떡 좀 자셔.” 방금까지 염라대왕 같던 할머니의 얼굴이 이번에는 부처의 얼굴이다. 팔순의 할머니는 두어 달 전 전라도 화순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암자에서의 커피 한 잔 그리고 적막

주지실에는 커피향이 자욱했다. 저녁 공양 후에 스님이 차를 한 잔 하자고 해서 올라왔더니 커피를 내놓았다. 찻잔이 수북이 쌓인 차반에 커피향이 진했다. 커피의 유행은 이곳 지리산 선방까지 점령했다. 허기야 우리가 흔히 차라고 할 때 녹차, 화차 정도만 떠올리는 경직된 사고는 커피 또한 차의 한 종류라는 사실을 쉽게 잊게 한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아래에 있는 서암정사에 잠시 다녀왔다. 어스레하던 하늘빛이 금세 캄캄해졌다. 선방 앞 돌층계에 걸터앉았다. 선방 문살로 비치는 촛불은 점점 붉어졌고 어스름이 절 마당 깊이 내렸다. 발자국 소리마저 사라지니 사방이 적막하다. 숨소리도 멈췄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정적을 깨는가 싶더니 휘파람 소리가 어두운 허공 가득 울리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우두커니 불 켜진 선방을 응시했다. 검다 못해 푸른빛이 선방 주위를 감쌌고 깨달음의 불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 네 칸인 안국당에도 불이 모두 꺼졌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와 재수생, 그리고 할머니가 전부였다. 가져온 책을 한 권 꺼냈다. 폴 서루의 <아프리카 방랑>. 이 깊은 산사에서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한다. 한참을 보았는데도 고작 두 쪽을 넘기지 못했다. 새 소리는 더욱 또렷해졌고, 다른 새들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방문을 열었다. 새까맣다. 불빛 한 점 없다. 방문 여는 소리를 엿들었는지 새들도 울기를 멈췄다. 고요한 침묵이 천지간을 흘렀다.

 

 

스님이 환생해서 운다는 홀딱벗고새

추위가 몰려왔다. 아까 보살 아주머니가 방에 불을 넣어야겠냐고 물어서 새벽에나 넣으면 되지 않겠냐고 했던 게 화근이었다. 방바닥은 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가져온 여벌의 옷을 모두 꺼내어 껴입었다. 목에도 두건을 두르고. 불을 끄고 누웠으나 냉기에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저녁 아홉 시면 모두 잠자리에 드는 산중 암자에서 누군가를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새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호. 호. 호. 호.’ 딱 네 마디로 끊어지는 노래는 어디선가 귀에 익은 듯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이 새가 ‘홀딱벗고새’라는 걸 알았다. 커피를 마시며 스님에게 새의 정체를 물었더니 절에서는 ‘홀딱벗고새’라고 부른다고 했다. 처음에는 농인가 했더니 사실이라고 정색을 했다. 일명 ‘홀딱새’로도 불리는 이 새는 두견과에 속하는 ‘검은등뻐꾸기’란다. 어떤 이는 ‘카. 카. 카. 고.’라고 운다고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홀. 딱. 벗. 고.’처럼 들린다고 한다. 이 홀딱벗고새가 울 즈음이면 이름도 비슷한 자주색 ‘뻐꾹채’가 피어나고 농부들은 모내기를 시작한다.

 

 

공부를 하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다가 세상을 떠난 스님들이 환생했다는 전설을 가진 새, 스님들에게 더 열심히 공부해서 반드시 해탈하라고 밤새 목이 터져라 ‘홀딱 벗고’를 노래한다. 모든 것을 홀딱 벗고 성불하라고. 그래서 오늘도 이곳에 와서 하안거에 들어간 스님의 방에서 밤새 울고 있다. ‘홀. 딱. 벗. 고.’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든 모양이다.

 

‘홀. 딱. 벗. 고.’

 

한밤중 다시 새 한 마리 날아오더니 선방 가까이서 울었다. 12시를 넘긴 시간에 겨우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것도 잠시, 무언가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깼다. 방문을 두드리는 맑은 소리가 처음엔 저 멀리서부터 아득히 울리더니 점점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람의 노랫소리처럼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어느새 방문을 와락 열어젖힐 정도로 요란히 울렸다. 너무나 간절한 목소리에 비몽사몽간에 방문을 열고 나와 칠흑의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무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해…”

 

간절했다. 너무나 간절해서, 애달프기까지 한 깊은 목소리. 마치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구도의 절박한 염불은 짙은 어둠을 갈랐다. 도량석이다. 스님이 도량 곳곳을 돌며 새벽예불을 시작한 것이다. 보통 때보다 큰 목탁을 치며 절집을 돌며 염불을 한다. 처음에는 약한 음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높은 음으로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일체 중생이 놀라지 않고 천천히 깨어나게 하기 위함이다. 대개 천수경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경전도 하는데 이 스님은 ‘화엄경 약찬게’를 한 것이다. 온갖 꽃들로 장엄한 세계. 수많은 인간 군상들을 만난 선재동자, 그 선지식 안에 창녀와 승려가 함께 들어 있는, 자신이 길을 떠난 바로 그 자리에서 법을 깨닫는다.

 

 

툇마루에 정좌를 하고 어둠속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염불을 따라 외다 다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모두가 깨어 있는 데 홀로 잠이 들다니…. 잠시 후 눈을 부릅뜨고 세수를 한 후 정좌를 한 채 명상에 잠겼다. 날이 밝으면 조선 선불교 최고의 종가인 이곳에서 옛 조사들을 친견하는 감회에 젖을 수 있을까.

 

‘내가 지혜의 눈을 빨리 뜨게 해 주십시오. 원아조득지혜안(願我早得智慧眼)’

 

 

 

벽송사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