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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여행/여행의 기술, 칼럼

기차역에서 열린 이색 북콘서트, 남도여행법

 

 

 

 

 

기차역에서 열린 이색 북콘서트, 남도여행법

 

지난 6월 27일(금)에 저의 책 《남도여행법》북콘서트가 있었습니다. 당초 50분을 모시기로 했는데, 많은 분들이 오시는 바람에 서 계시거나 주위를 배회하신 분들이 계셔서 죄송했습니다. 멀리 강원도에서부터 서울, 경기도, 대전, 전주, 남원, 대구, 부산, 창원, 거제, 사천, 하동, 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오셨습니다. 특히, 블로거 분들이 많이 참석하셨는데요. 서울에서 온 보라미랑 장유근 님, 창원의 김주완․김훤주 님, 달그리메 님, 강원도에서 온 한사 정덕수 님, 대전에서 오신 펠콘 김대영 님 등이 참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날 북콘서트에서는 여러 가지 사연이 있었습니다. 북콘서트 날짜를 잘못 알고 3번이나 진주역을 찾으신 분, 신문보도를 보고 기사를 잘라서 부러 찾아와서 책을 사 가신 할아버지, 기차에서 내려 저자 사인을 수줍게 받아가던 아가씨, 야근이 있어 저녁시간에 잠시 나와 책만 사 간다는 직장인, 페북에서만 뵙다가 오프에서 처음 뵈었던 분, 일면식도 없는데도 오시다가 교통사고로 못 오신 분 등 많은 분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책은 넉넉잡아 100권을 준비했는데도, 부족해서 미처 구입하지 못한 분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폭풍 사인을 해드리겠습니다.

 

저의 《남도여행법》 북콘서트가 기존의 출판기념회와 조금은 다르고자 노력했습니다.

 

1. 기차역에서 열린 조금은 이색적인 북콘서트

북콘서트 하면 대개 레스토랑, 카페, 혹은 실내 문화 공간 등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데요. 저의 책이 기차여행인 만큼 조금은 특별한 공간을 찾았습니다. 처음엔 한적한 시골 간이역에서 하는 것도 생각했으나 멀리서 오는 분들도 있고,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아 경전선 진주역 대합실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조금은 이색적인 장소였습니다. 역에서 북콘서트를 한다고 하니 역에 있는 회의실에서 한다고 생각한 분들도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저녁 6시 45분과 8시 15분 사이인 7시에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7시 39분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었는데, 대합실로 승객들이 우르르 몰리는 순간도 하나의 연출된 장면처럼 재미있었다고들 했습니다.

 

2. 봉투와 화환이 없는 북콘서트

북콘서트에서 유일하게 화분 하나가 딱 들어왔는데요. 행사 당일 경황이 없어 다음 날에야 알았습니다. 처음엔 화분을 돌려줄까도 생각했는데, 아내의 말에 따르면 화환이 아니라 저의 건강을 위해 후배가 특별히 가져온 거라고 강조했다는군요. 해서 화분은 제 서재에 그냥 두기로 했습니다.

봉투도 몇 개 들어와서 고민이었는데, 다행히 그 액수만큼 책을 가져갔다고 해서 그냥 감사히 받기로 했습니다. 다음엔 앙돼용~~

제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총장님도 봉투를 보내셨는데요. 봉투 안에 책값 1만 8천원만 들어 있었습니다. 홍보실에서 화환을 안 받는다고 하니 비서실에서 그렇게 책값을 준비했다는군요. 물론 책은 총장님께 잘 전달했습니다. 이런 봉투라면 부담 없이 받을 수 있겠지요. 이번 행사에는 모든 분들이 책값만 내도록 했습니다.

 

3. 식순에서 내빈 인사말 없는 북콘서트

사실 어떤 행사를 가도 제일 지루한 게 내빈 소개와 인사말입니다. 학창시절 교장선생님 훈시만큼이나 지루하죠. 다분히 권위적인 성격이 강한 내빈 소개와 인사말을 이번 북콘서트에서 과감히 뺐습니다. 대신 저자가 참석자 분들을 간단히 소개하는 식으로 했죠. 물론 소개한 사람도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먼 곳에서 오신 분들, 특이한 이력을 가지신 분들, 처음 뵙는 분들을 위주로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시간절약도 되고 즐거운 행사가 되었습니다.

 

4. 식사 대접 없는 북콘서트

아직도 우리에게는 초청받는 사람만 참석하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데요. 사실 모든 행사는 초청하는 분들이 참석하는 것이 준비하는 측에서도 편리하고 낭비도 없고 준비를 알차게 할 수 있습니다. 식사 대접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되면 회비를 별도로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저자나 출판사의 부담이 너무 커서 원래의 소박한 취지가 없어지겠지요. 대신 참석자들의 출출함을 다랠 수 있는 작은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5. 뒤풀이와 숙박비용을 저자가 부담하는 북콘서트

소박한 북콘서트인 만큼 참가하신 분들은 책을 읽으실 분들만, 즉 책값만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봉투를 준비하는 등 다른 행사와 같다면 참가하는 이들도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북콘서트에 참석하는 모든 분들이 즐길 수 있도록 뒤풀이 비용과 멀리서 온 분들을 위해 숙박비용을 저자가 내는 걸로 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보도된 <남도여행법> 북콘서트 관련 기사

 

북콘서트는 대략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사회는 경기도 여주에서 도예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원주 화가(도예가)가 봤습니다. 포스가 대단한 분이죠. 축가는 <남도기행> 앨범을 낸 가수 김산 씨가, 축시는 양희은의 <한계령> 작사자인 한사 정덕수 시인이 직접 지은 시를 낭송해 주셨습니다(이 글 끝에 시가 있습니다.). 출판사 생각을 담는 집 임후남 대표가 책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한 다음에 저의 짧은 강연이 있었습니다. 전주에서 오신 아동문학가이자 시인이신 소야 신천희 스님의 시 낭송을 끝으로 북콘서트는 끝났습니다. 이윽고 이어진 저자 사인회에서 많은 분들과 눈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습니다. 촬영은 블로거 보라미랑 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뒤풀이는 치맥집 등지에서 이어졌고요.

 

한사 정덕수 시인의 축시 낭송

 

가수 김산의 축가

 

생각을담는집 임후남 대표

 

 

저자의 짧은 강연

 

아동문학가 소야 신천희 스님의 축시 낭송

 

이번 북콘서트는 여행하는 즐거움, 책 읽는 즐거움, 기차 타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가을에는 남도 사진전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항상 길 위에서 저에게 많은 힘을 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혹시 이번에 부족한 점이 있었더라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다음에 또 좋은 자리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참석하신 모든 분들과 비록 사정상 오시지는 못했지만 마음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진은 김대영 님, 이우기 님 제공입니다.)

 

- 끝 -

 

 

 

 


 

 

 

경전선 철길 위에 서면

-김종길 작가의 남도여행법에 붙여

 

정덕수

 

삶이 문 닫은 빈 점포처럼 고단하고

마음이 가야의 운명처럼 흔들리면

봄날 같던 시간으로 떠날 때임을 알자

삼랑진역이나 송정역에서

잃어진 꿈을 이어 줄 기차표 한 장 받으면

그 시절 당당하게 이름 걸고 있던 앵남역에서

하루 몇 번 정차하는 통일호 시간 맞춰

간이역 역장이 되던 그 친구 안부 정도는

바람결에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함초롬 비 젖은 안부를 묻고

바람 부는 들녘을 지나며

갈래머리 고운 소녀들의 추억 하나쯤

기억의 틈에서 꺼내도 좋겠다.

기적 길게 울리며 정차하던 통일호 열차처럼

어느 한 순간 정도는 가슴에 간직했으면

간이역엔 더 이상 기차는 멈추지 않더라도

살뜰한 추억 한 자락 정도야

목 쉰 가락으로나마 들리지 않으랴

 

이 땅 밖으로 벗어나야 여행인 줄 아는

그들에게야 대단할 거 없는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줄 알겠지만

갈비뼈 사이 설렁거리는 바람 한 올 맞이하였을 때

정작으로 소중한 것들을 만날 수 있다네

그때쯤에야 느릿하게 움직이는 경전선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는 남루함이

차고 넘치는 행복인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건 말이지, 행운을 찾아

행복을 짓밟는 어리석음으로

불행을 맞이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것과 같은 일

 

청보리 익어가는 들판을 지나

매미 요란하게 울던 숲에 쏟아지는

여름 한 낮의 소나기처럼 들리는

갯내음 물씬한 사투리가 따숩게 하니

억새 하얗게 핀 강변 한달음에 달려와

덥석 안겨 올 것 같은 행복 아니랴

 

다시 한 장의 차표를 받아들고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좋을 길을 떠나자

떠나야만 돌아와 다시 만날

그런 행복이 있으니

얼마쯤 느리게 도착하더라도

그게 덜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길

한 장의 차표만큼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