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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지리산 오지암자 가는 길

 

 

 

 

지리산 오지암자 가는 길, 연둣빛 산행

 

 

 

음정 마을에서 차 한 대 겨우 지나는 산길을 한참이나 올랐다. 처음에는 벽소령으로 갈까 했으나 수년 전 이곳에 왔던 기억을 더듬어 영원사로 향했다. 버스가 다니는 종점인 음정 마을에서 영원사까지는 고바우길이다.

 

 

초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이 길은 산을 하나 그대로 오르는 비탈길이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라도 있을까 조바심을 내며 힘겹게 오르기를 한참, 마침내 영원사라는 작은 표지판을 발견했다.

 

 

양정 마을에서 만난 노인이 영원사 못 미처 200m 아래쯤 크게 휘어진 곳에 도솔암 가는 산길이 어렴풋이 있다고 하지 않았다면 한참이나 헤맬 뻔했다.

 

 

마침 긴 머리를 단단히 묶은 산꾼을 영원사 앞에서 만나 도솔암 가는 길을 재차 확인했고 그의 말대로 다리를 찾았으나 지나치고 말았다. 분명 이 어디쯤인데 망설이고 있을 무렵 거짓말처럼 산꾼이 눈앞에 다시 나타나 내가 짐작한 그곳이 맞다며 다시 길을 설명해줬다.

 

 

곰이 출현하니 속히 돌아가라는 선뜩한 경고문을 뒤로하고 계곡을 건넜다. 오지 암자로 가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이나 있을까 했던 의구심은 기우였다. 아주 옛날부터 이 산길을 다닌 것처럼 길은 또렷했다.

 

 

온통 연둣빛을 발하는 나무의 색은 가을 단풍만큼이나 황홀했다. 햇살에 비치는 나뭇잎의 핏줄이 선명하다. 푸르거나 검거나 이 두 가지 색으로만 채워진 봄의 숲에 이방의 나무가 보였다.

 

 

자작나무였다. 너무나 하얀 알몸을 그대로 드러낸 자작나무가 연둣빛을 뚫고 푸른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자작자작’ 껍질을 만지자 자신의 이름을 어김없이 내뱉는다.

 

 

비탈길이다. 계곡을 서너 차례 건널 때만 해도 평지에 가까웠던 산길이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하늘로 치닫기 시작했다. 이상하리만치 돌이 많은 길은 예전 누군가 애써 놓지 않았다면 분명 이렇게 또렷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숨이 깔딱 넘어갈 즈음 깔딱 고개는 끝이 나고, 수십 그루의 아주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편백나무가 좌우로 열을 지어 있었고, 그 끝으로 대로 만든 사립문이 얼핏 보였다.

 

 

“돌아가시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었다. 조심스레 사립문을 지나 암자로 들어섰다. 해발 1200m가 넘는 이곳에도 봄빛이 완연해 스님이 심은 고추가 텃밭 고랑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암자엔 하늘빛만 가득하다. 스님과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참이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산을 내려왔다. 스님께 인사를 하고 산길을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난다. 스님이다. 지게를 진 스님의 발길이 바쁘다.

 

 

 

“어디 가시게요.”

“아, 저 아래 누가 물건을 갖다 놓은 모양이오.”

 

그러더니 어느새 앞서간다. 축지법을 쓰는지 상체는 그대로인데, 쓱쓱 발길이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 숲길 끝으로 지게만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바람이 자작나무를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