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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천년

하회마을의 중심, 그곳엔 삼신당이 있다!

 

 

하회마을의 중심, 그곳엔 삼신당이 있다!

 

하회마을 하면 으레 오래된 고택들이 즐비한 풍경을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에돌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재미가 쏠쏠한 곳. 이런 하회마을에서 방문객들이 놓치는 곳이 있다. 마을 깊숙이 은밀한 곳에 자리한, 큰 골목에서 기름한 작은 골목을 들어서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드는 수고로움을 겪고서야 겨우 마주할 수 있는 신령스러운 곳, 삼신당이 그것이다.

 

 

하회마을의 골목길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삼신당을 중심으로 방사선형으로 뻗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삼신당은 양진당, 충효당, 북촌댁, 원지정사, 빈연정사에 빙 둘러싸여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양진당에서 북촌댁으로 가는 큰 골목길. 양진당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길게 숨겨진 골목이 나온다. 왼쪽은 돌담이고, 오른쪽은 흙담이다. 골목길의 끝은 벽으로 가로막혀 있다.

 

 

 

무언가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공간이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 이미 발은 골목길에 들여놓게 된다. 가로막힌 벽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한 10여 미터 걸었을까. 어느새 한쪽으로 담장이 트이는가 싶더니 주위를 압도하는 거대한 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무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표지석을 보니 수령 600년 넘은 것으로 나온다. 그것도 1982년 조사 당시의 수령이다. 나무의 주위를 돌기만 해도 그 거대함에 놀라게 된다. 높이 15m, 둘레 5.4m의 노거수는 느티나무다. 어른 10명이 팔을 벌려 둘러야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인 이 나무는 하나의 굵은 가지가 중심을 이루고 그 주위로 몇몇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자라났다.

 

 

마을의 중앙 높은 곳에 자리한 삼신당의 600년 된 이 느티나무는 하회마을에 입향한 류종혜가 심은 것으로 전해지며 마을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기고 있다. 삼신당은 하당으로도 불린다.

 

 

하회마을에는 마을신을 모시는 당이 5개나 된다. 화산 중턱에 있는 서낭당과 화산 자락에 있는 국사당, 마을 입구의 큰고개와 작은고개에 돌을 쌓은 성황당이 있다. 그중 상당 서낭당, 중당 국사당과 함께 하당인 이곳은 주민들이 소망을 비는 삼당을 이룬다. 서낭당과 국사당과 다르게 삼신당은 당집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상당 서낭당의 당신은 탈을 깎던 허도령을 엿보던 처녀로 실제로 당시 17세였던 의성 김씨 처녀였다고 하고, 중당 국사당의 당신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온 공민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당들은 화산의 중턱과 자락, 마을의 중심이자 혈(穴) 자리에 놓여 있어 마을의 화합을 다지는 공동체의 구심점 구실을 한다. 정월 대보름 밤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를 상당과 중당에서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여기서 제를 올린다. 이곳에서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된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춤판이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곳임을 감안하면 이곳이 마을 민속신앙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하회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 모든 길이 이 삼신당에서 시작된다 해도 될 만큼 마을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이 삼신당을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집이 향하는 방향이 제각기이다. 우리나라의 마을 집들이 대개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의 집들은 하나같이 강을 바라보고 있다.

 

 

 

삼신당 주위로는 당제를 지내기 위해 쳐놓은 금줄이 있다. 소원을 적은 종이가 빼곡하게 달려 있다. 한구석에는 소원을 적을 수 있는 종이가 비치되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저마다 소원을 종이에 적는다. 그러곤 소원을 적은 종이를 금줄에 끼우고 손을 모아 기도를 한다.

 

 

하회마을에는 입향조 류종혜가 심은 이곳 삼신당 신목뿐 아니라 류운룡이 부용대가 누르는 기를 막기 위해 심었다는 만송정, 류성룡이 심었다는 옥연정사의 소나무, 13대 종부 무안 박씨가 심었다는 충효당 만지송이 있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