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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이곳에서의 하룻밤, 당신에겐 최고의 선물!

 

 

 

 

이곳에서의 하룻밤, 당신에겐 최고의 선물!

- 4대째 이어온 백년의 산장, 남해 금산 남해금산산장

 

금산 보리암에 오르면 남해를 왜 ‘한 점 신선의 섬, 일점선도’라 부르는지 절로 알게 된다. 그 수려한 풍광에 빠져 금방 자신을 잃게 되니 신선이 따로 없다. 보리암에서 쌍홍문을 지나 제석봉을 오르면 벼랑 끝에 핀 한 떨기 꽃처럼, 바위 위에 살짝 앉은 보리암의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금산을 오를 때마다 여행자는 늘 제석봉을 오른다. 이곳이야말로 보리암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그림처럼 펼쳐진 한려수도의 다도해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보리암을 둘러싼 대장봉, 화엄봉, 일월봉으로 이어지는 왼쪽의 풍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른쪽으로 상사바위와 기암절벽의 장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멋진 풍광 속에 얼핏 봐서는 산중의 무슨 암자이겠거니 여겨지는 산꾼들의 숙소로 쓰였던 여관이 하나 있다. 부산여관(부산산장)으로도 불리는 남해금산산장이다.

 

▲ 제석봉에서 본 금산산장

 

지난 5일 새벽, 금산에 올랐다. 일출 보기를 학수고대했지만 희끄무레하니 붉은 구름만 보았을 뿐이었다.

 

“혹시 산장에서 주무셨는지요?

 

모자를 푹 눌러쓴 중년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제석봉의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몇 번이나 되물은 다음에야 그의 말을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저는 저기 산장에서 잤는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예전부터 한번 자야지 맘을 먹었다가 이번에 실행으로 옮겼답니다.”

 

 

 

▲ 산장에서 내려다본 상주해수욕장 일대

 

마치 세상 밖의 어느 곳인 듯, 꿈속에서 잠시 머물렀던 공간처럼 그에게 산장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 모양이다. 아침잠을 덜 깬 것은 분명 아닌데 그는 계속 얼떨떨한 표정이다. 나중에 산장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산장 할머니를 도와 우리 일행의 밥상을 나르고 있었다. 분명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사진 촬영을 끝내고 산장으로 향했다. 동트기 전부터 시작된 금산 유람은 해가 뜨고 나서야 끝이 났다.

 

“커피 줄까? 사람이 제일 반갑지.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같이 과일 깎아 먹고 커피 한 잔 하다 보면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기라. 사진은 와?”

 

일행이 내려가고 나서 조용해진 틈을 타 산장 할머니가 있는 부엌으로 갔다. 마침 할머니 두 분은 잠시 일손을 놓고 커피를 마시며 바빴던 아침을 한숨 돌리고 있었다.

 

▲ 산장의 이정순 할머니와 김연수 할머니

 

이정순(67) 할머니와 김연수(72) 할머니. 이정순 할머니는 20년째, 김연수 할머니는 18년째 산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손님이 뜸한 평일에는 하루씩 교대로 일하고 주말에는 같이 일한다. 산 아래 이동면 용소에 산다는 두 할머니는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안다. 사진을 찍는 와중에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 두 할머니가 산장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셈이다.

 

 

으레 할머니들이 그렇듯 늙은 거 사진은 뭐 하게 하면서도 금세 웃음을 띠며 포즈를 취한다. 이왕이면 밝은 마루가 좋겠다고 하자 “어이구, 남사스럽게.” 하면서도 곧장 마루로 나와 자매처럼 다정하게 서로의 손을 잡는다.

 

 

▲ 옛식 그대로인 산장의 마루와 방

 

이곳 마루는 두 할머니의 주요 생활공간이다. 산장 생활을 하는 동안 딱히 일이 없으면 마루에 앉아 손님이 오나 안 오나 고갯길을 내다보곤 한다.

 

“여기서 보면 훤히 다 보여.”

 

 

▲▼ 산장마당 전경, 이곳은 산장 최고의 명당으로 이곳에서 마시는 막걸리는 최고의 술이다.

 

 

“저기로 가 봐. 신선바위가 있어. 박찬호도 차인표도 앉았다 갔지.”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언젠가 모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 차인표와 박찬호, 허영만, 김중만이 이곳을 찾아 힐링에 대해 이야기하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명당이 어딘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저기서 막걸리 마시면 신선이 따로 없제. 여기가 신선당이라. 신선이 사는 집이란 말이제.”

 

 

▲▼ 산장에서 본 다도해 풍경

 

 

그러고 보니 아침상에 올랐던 막걸리가 생각났다. 술을 끊었지만 주위에서 하도 기막히다는 통에 한 모금했더니 그 알싸하고 시원한 것이 식도를 타고 아침 위장을 살짝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참밀로 뜬 누룩과 쌀을 이용한 술은 색깔이 진하고 뒷맛이 야간 시큼했다.

 

 ▲ 산장의 아침밥상

 

이정순 할머니는 산장에서 막걸리를 직접 빚는다고 했다. 수돗가로 가니 할머니가 담근 막걸리가 병에 담겨 둥둥 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4대째 이어오는 금산산장의 2대 할머니에게 제조법을 전수받았단다. 막걸리가 떨어지는 날은 없었다.

 

▲ 아침 산행을 같이 한 정현태 남해군수와 막걸리 건배

 

“막걸리는 말이제. 제일 중요한 것이 물맛이고, 다음으로 손맛이고, 셋째가 뭔지 알어? 바로 손님들 입맛이요. 아무리 잘 만들어도 손님들이 맛있다 해야 그게 가장 제대로 된 막걸리다 이 말이오.”

 

▲ 산장의 텃밭

 

손님들의 입맛까지 염두에 두는 할머니의 섬세함이 미치는 곳이 벼랑 끝 텃밭이다. 상추 등 푸성귀가 빼곡히 자란 텃밭은 손바닥만 할지언정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에서 직접 키운 채소들이 산장을 찾는 손님들의 밥상으로 곧장 올라간다. 산장 뒤 흔들바위 쪽으로 가면 거기에도 바위 틈 숲속에 서너 평 남짓한 밭뙈기가 하나 더 있다. 이곳의 별미, 된장도 남해의 콩으로 담근 것이란다.

 

▲ 텃밭에서 가꾼 채소가 바로 밥상에 오른다.

 

금산산장은 원래 비구니 암자였다. 현재 산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원식(40) 씨가 건넨 명함에는 ‘남해금산산장 최명구“라 적혀 있었다. 원석 씨의 아버지다. 원래 이 터에 있었던 비구니 암자는 모르긴 몰라도 삼사백년은 족히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암자가 산장으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인 원석 씨의 증조부 때, 증조할아버지의 고종(사촌)이 매입을 해서 증조할머니가 운영을 시작한 것이 산장의 시초다. 할머니, 아버지를 거쳐 4대째 이어왔으니 거의 100년은 되었다고 했다. 국립공원인 이곳에 지금까지 산장이 남아 있었던 이유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훨씬 전에 이미 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는 데에는 2인 1실 기준 3만 원이다. 3인 이상 5천 원씩 추가요금을 받는다. 식사는 한 끼에 팔천 원인데, 숙박을 하지 않더라고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하룻밤 자고 나면 손님이라는 허울은 벗어 던지고 마치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설거지와 일손을 거들게 된다. 제석봉에서 만난 사내도 아침부터 손님상을 부지런히 치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 적나라한(?) 화장실

 

다시 산장마당에 섰다. 쪽빛 남해와 올망졸망 떠 있는 섬들, 상사바위가 눈앞에 펼쳐진다. 지상 최고의 잠자리와 술자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곳에서 언젠가 하룻밤 자기를 고대해본다. 이곳에서의 하룻밤, 분명 당신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 남해금산산장(부산여관)은 경남 남해군 상주리 금산 보리암 인근에 있다. 전화는 (055)862-606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