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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남해가 꼭꼭 감춘 비경, 부소암을 아세요?

 

 

 

남해가 꼭꼭 감춘 비경, 부소암을 아세요?

 

 

남해 금산의 서남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다. 보리암에서 일월봉, 제석봉을 지나 평평한 산마루 아래로 난 숲길을 죽 내려가다 보면 아득한 공중에 한 떨기 연꽃처럼 우뚝 솟은 부소대(부소암)를 만나게 된다. 부소암은 예부터 금산 38경 중의 하나로 ‘법왕대’라고도 불렸다.

 

 

숲길이 끝나자 갑자기 탁 트인 시야에 요새처럼 우뚝 솟은 천해고도 부소암. 수평선과 잇닿은 쪽빛 남해의 바다와 점점 떠 있는 섬 풍경이 한 점 신선의 섬 ‘일점선도’의 풍경이 바로 여기라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천 길 낭떠러지로 달리는 암반 끝에 일주문마냥 소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안내한다. 매서운 바람이 연신 불어대는데도 온몸으로 버텨내며 암자 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한다. 부소암을 가기 위해서는 벼랑과 벼랑을 연결한 하늘 높이 걸린 구름다리를 건너야 한다. 근래에 만든 철제다리마저 골짜기 사이를 웅웅 불어대는 바람에 흔들린다. 간담이 서늘하다.

 

 

다리를 건너자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부소암. 한눈에 담을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어찌 보면 사람의 머릿속 모양이다. 어찌하여 부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전하는 말에 따르면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고 갔다고 한다. 혹은 단군의 셋째아들 부소가 방황하다 이곳에 앉아 천일을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부소암 일대는 기암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왼쪽 층계의 사람을 보라.

 

진시황의 아들 부소라. 부소가 이곳까지 다녀갔단 말인가. 이곳에서 얼마간을 내려가면 상주리석각이 있다. ‘서불과차’라고 불리는 이 석각은 진시황 때 삼신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남해를 온 서불이 동남동녀 500여명을 거느리고 이곳 금산을 찾아 한동안 수렵 등으로 즐기다가, 떠나면서 자기들의 발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부소암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돌산이다. 바위 왼쪽 소나무 아래 사람믈 찾으면 바위의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짐작할 수 있다.

 

진시황의 노여움을 산 부소가 흉노를 막기 위해 장성에 주둔하던 몽염 장군의 대군을 감독하러 북방의 상군으로 간 적은 있으나 이곳 남해까지 유배를 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모의에 의해 자결한 그의 비극적 삶에 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가 맞물려 한 편의 전설이 된 것이겠다.

 

 

멀리 호구산과 망운산에 해무가 가득 끼었다. 좁은 벼랑길을 돌아가니 느닷없이 돌층계가 나타난다.

 

 

“다들 가셨나 봅니다. 모든 게 바쁩니다.”

“그러게요. 제가 마지막입니다. 홀로 뒤늦게 왔지요.”

“뭘요. 오히려 느리면 얻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뭔지요?”

“돌아가시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시면 알 겁니다.”

 

 

일행 중 제일 뒤에 모습을 드러낸 여행자에게 암자에 홀로 남은 보살이 말을 건넨다. 며칠 째 출타 중인 암주를 대신해 이곳에서 며칠을 보냈다고 한다. 밤새 목청껏 염불을 하고 목탁을 두드려도 간섭하는 이 하나 없는 이 무한 공간이 너무나 좋다며 약간은 들뜬 낯빛이었다.

 

 

“청화 스님도 이곳에 머물다 가셨습니다.”

 

청화 스님은 토굴에서의 묵언과 48년 동안 눕지 않는 장좌불와, 하루 한 끼 공양하는 일종식의 원칙을 고수하며 수행에 전념한 당대 최고의 선승이었다. 구례 사성암, 지리산 벽송사, 월출산 상견성암 등 전국의 깊고 깊은 산중에서 수도를 했는데 이곳 남해 부소암 또한 그가 수선안거한 곳이다.

 

 

스님이 수행처로 택한 곳은 하나같이 백척간두. 백척간두에서 한 발 나아가지 못한다면 참 나를 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수행이었다. 험해서 오르기 어렵다는 ‘능가’의 경지. 부안 변산의 부사의방, 해남 달마산 도솔암에 견줄 만한 수행처 부소암은 천 길 낭떠러지의 끝에서 한 줄기 밧줄에 의존해서 도를 구하는 곳이었음이라. 그 옛날 겨우 사람 하나 드나들 돌문을 들어와야 부소암에 오를 수 있었다.

 

 

천 년이 넘었다는 암자 자리엔 근래에 지은 토굴이 하나 있다. 비록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하나 단출하기 이를 데 없는 암자이다. 바위산 아래 숨은 듯 둥지를 튼 이 작은 암자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보물 ‘대방광불화엄경 진본 권53’을 소유하고 있어 그 역사가 유구함을 다시 절절히 느끼겠다.

 

 

두어 평 남짓한 텃밭에는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어디서 생명이 오고 갔을까. 한 발 내디디면 절벽이라 조심스레 돌담 아래를 살피는데 벼랑에 무더기로 피어난 구절초가 보인다. 위태로움은 잊은 채 소담하게 무리지어 핀 구절초는 고요했다.

 

 

산신을 업고 포효하며 산을 내달리는 호랑이 형상의 바위와 갖은 차림을 한 무사의 호위를 받는 듯 벼랑에 둥지를 튼 새처럼 돌산 아래에 암자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물 한 방울 없는 돌산 여기저기서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거대한 자연 속에 티끌 같은 생명조차 허투루 여기지 않는 불성의 가피인가. 암자 옆 불단에는 선각의 작은 마애불이 백척간두에 펼쳐진 일망무제의 풍광을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다.

 

 

암자 마당에 섰다. 일망무제…. 아득히 눈길 머무는 곳에 소치도·노도가 보이고, 아침 구름에 둘러싸인 호구산·망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오는가 싶더니 문득 드무개(두모)마을의 다랑논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예전에 썼을 돌확이며 절구 등이 암자마당 끝에 간신히 놓여 있다. 보살님이 따뜻한 차 한 잔을 권했으나 고개를 저으며 합장을 했다. 일행이 모두 자리를 떠난 후라 서둘러야 했다. 며칠이고 머물고 싶은 풍광에 다음에는 꼭 혼자 들러 며칠이고 머물기를 다짐하며 되돌리는 발길을 아쉬워했다.

 

 

☞ 부소암은 예전 산꾼들에게 남해의 숨은 비경으로 알음알음 알려져 오다 2013년 9월 2일에 두모계곡~부소암~복곡헬기장 2,8km 구간의 탐방로를 개방하면서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