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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싶다

작은 시골에 100년이 넘은 초등학교라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나주 남평초등학교

 

 

 

“저 학교가 100년이 넘은 학교요. 남평에서 태어나서 이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태어난 해하고 졸업한 해의 숫자가 딱 맞아떨어지지요.”

 

 

향교로 가면서 기사가 한 말이 언뜻 생각이 나 기사에게 읍내 입구 사거리에서 택시를 세워달라고 했다. 도로 너머로 보이는 오래된 고목도 그러하거니와 교정 한쪽의 각종 비석들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는 ‘참, 이 사람 고집 어지간히 세구만. 터미널까지 공짜로 태워 준데도...’ 하고 여겼겠지만 이곳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한 후 초등학교를 향해 아스팔트길을 타박타박 걸어갔다.

 

 

2층으로 된 남평초등학교는 초록색으로 잔디를 깐 운동장과 그 주위를 둘러싼 붉은 트랙 주위로 잘 꾸며진 화단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학교의 역사와 함께했을 오래된 나무와 교문 옆에 무리지어 있는 비석들이 눈길을 끌었다.

 

 

그중 느티나무 두 그루와 팽나무 두 그루는 수령이 300년이 넘어 나주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나무에는 친절하게도 각자의 이름이 적힌 돌 명패가 놓여 있었다.

 

 

어느 곳 하나 허투루 소홀히 여기지 않을 정도로 교정은 잘 가꾸어지고 관리되고 있었다. 예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교실로 가다 현관 옆에서 우연히 석등과 마주치게 되었다. 학교 안에 무슨 석등이 있나 싶어 살폈더니 ‘동사리 석등’이었다. 아까 남평역에서 어디로 갈까 고민을 하면서 나주시 지도를 보았을 때 남평읍내에 동사리 석등이 있어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곳 초등학교 안에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이 기막힌 우연에 석등을 보는 기쁨은 두 배였다.

 

 

동사리석등(전남문화재자료 제95호)은 우리가 흔히 봐온 석등과는 그 생김새부터 달랐다. 정교하지는 않은 편인데, 소박한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고려시대의 석등으로 보인다. 8각의 석등으로, 등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4개의 작은 기둥을 모서리에 세웠다. 화사석 아래로는 아래받침돌, 8각 기둥, 위받침돌 등 3단의 받침을 두었으나 일부가 땅에 묻혀 있고 위로는 여덟 모서리의 지붕돌과 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하였다.

 

 

운동장 중앙 연단 옆으로 길쭉한 화강암에 새긴 ‘개교백주년기념비(1906~)’가 우뚝 솟아 있었다. 비를 세운 해가 2006년이니 지금은 100년하고도 7년이나 지났다. 이런 한적한 시골의 초등학교가 100년을 넘겼다니... 새삼 그 역사가 웅혼하고 대견스럽게 여겨졌다.

 

 

공군참모총장, 대한민국대법관, 국회의원 등이 모교를 빛낸 사람으로 적혀 있지만 눈길은 자꾸 아래로 간다.

 

 

스승과 제자’ 동상도 생경하여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나의 꿈 제100회 졸업생 45명 만남의 날 2033. 2. 15’이라고 적힌 작은 비석이 눈에 띈다.

 

 

졸업한 날로부터 20년 뒤에 동기들과 다시 만나자는 내용으로 졸업생 횟수대로 각자 약속의 비석들을 세운 것이었다.

 

 

 

담을 없앤 학교 안에는 남평공공도서관 건물이 있는데 그 앞으로 각종 비석과 석조물들이 있었다.

 

 

중 남평현 동헌유적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옛 동헌 터였음을 알 수 있었다.

 

 

1928년 광주고보 재학시절에 동맹휴학과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하는 등 항일투쟁을 한 이산 윤승현 선생의 비도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남평초등학교는 1906년 6월 15일 사립영흥학교로 개교하였으며 1911년 6월 15일 남평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아직도 37명의 교사에 280여 명의 학생이 있으니 시골학교치고는 제법 옹골찬 학교다. 2013년까지 졸업생 1만 2000여 명을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