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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기행

'패떴' 이효리가 잔 고택에서 하룻밤 묵었더니

 

 

 

 

 

 

‘패떴’ 이효리가 잔 고택에서 하룻밤 묵었더니

 

이상하게도 눈에 익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집. 강골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박향숙 씨에게 전화를 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잠시 노닥거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민박할 손님이냐며 물었고 우린 할머니를 따라갔다.

 

 

조붓조붓한 돌담길 끝에 제법 너른 바깥마당을 가진 고택 한 채가 나타났다. 특이한 구조였다. 집 정면으로는 안채의 처마 끝만 보일 정도로 담이 둘러쳐 있었고 그 아래로 장독대와 작은 화단이 꾸며져 있었다.

 

 

대문이 한쪽 구석에 있는 점이 특이했다. 그 이유는 문을 들어서자마자 알 수 있었다. 사랑채가 안채의 앞에 있는 여느 고택과는 달리 아래채 겸 사랑채가 'ㄱ' 구조로 안채와 잇닿아 있는 소박한 집 구조 때문이었다. 집 정면으로 대문을 내었다면 문을 열자마자 안채가 훤히 보이게 되어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대문을 한쪽 구석으로 두어 손님과 주인이 서로 옷깃을 여밀 시간적인 여유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화장실이 대문채에 딸려 있지만 이 대문채는 일종의 헛담 내지 내외벽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집은 오봉생가다. 너른 마당에 집은 안채와 아래채, 광채 등 세 채의 건물이 전부다. 으리으리한 여느 고택과는 달리 아주 소박한 구조인데도 그 모양새가 가볍지는 않다. 5칸 반에 이르는 안채가 제법 묵직하고 그 안채를 울창한 대숲이 두르고 있어 위엄을 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 칸의 아래채도 별당처럼 작은 안마당에 온갖 화초를 두었고 뒤로는 마루를 내고 작은 마당을 두었다.

 

 

 

광채에는 풍로, 절구, 멍석 등 옛 물건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대문채에서 안마당으로 이어지는 징검돌일 게다. 비가 와서 땅이 질척거릴 때 걷기도 좋거니와 시각적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대문채에서 안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시선의 이동을 염두에 둔 징검돌은 절로 감탄이 나온다.

 

 

고택에 도착하자 할머니가 매실차와 엿을 내왔다. 직접 담든 것이란다. 엿은 강골마을에서 해마다 겨울이면 만드는 제법 유명한 엿이다. 이에 잘 달라붙지 않고 녹여 먹으면 그 졸깃한 맛이 일품이다.

 

 

다과를 먹고 나자 할머니의 집 소개가 이어진다. 우리가 묵을 방에 짐을 풀고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제일 먼저 할머니가 보여준 건 마루였다.

 

 

"이게 뭔 줄 아시오? 우리 집을 온 사람들에게 매번 물어 봐도 맞추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내와 여행자, 아이는 한참이나 곰곰이 생각했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할머니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번지고 있었다. "여태 맞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니께. 갓통이오. 갓통!" 그제야 일행은 ‘아’ 하며 머리를 쳤다.

 

 

갓통은 의관을 매우 중요시 여겼던 조선시대에 갓을 사용하지 않을 때 갓을 넣어 보관하던 통이다. 이 갓통은 반구형으로 바닥이 원형이고 2등분하여 한 쪽을 여닫게 되어 있었다. 대나무로 모양을 잡고 그 위에 기름 먹인 종이 여러 겹을 덧발라 만들었다. 위쪽에 끈을 달아서 벽이나 천장에 걸도록 하였다. 통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신기하게도 아직 갓이 들어 있었다. 어떤 갓통은 무늬도 넣고 화려하게 꾸며진 것도 있다 하나 이곳의 갓통은 소박했다.

 

 

 

마루에는 옛 것들의 전시장이었다. 흔히 녹용으로 알려진 사슴뿔도 있었다. 주인이 썼던 활과 화살도 벽 한 쪽에 걸려 있다. 숯을 넣어 사용하던 다리미며, 삼베에 풀을 먹이던 솔하며, 박 바가지, 램프, 약을 빻던 도구까지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옛 도구들이 빼곡하게 진열돼 있다.

 

 

 

놋쇠로 만든 요강도 보이고 그 위에 놓인 타구도 보인다. 타구는 가래나 침을 뱉는 그릇이다. 다듬이 방망이, 저울, 홍두깨도 벽에 걸려 있다.

 

 

이 집에는 비밀 다락도 있다. 지금은 부엌을 입식으로 바꾸어서 원래 이중으로 되어 있던 다락의 아래 부분을 헐었다. 원래는 아래위가 나뉜 이중다락인데 밖에서 보면 다락이 제법 큰데 다락문을 열면 다락 하나만 보이고 크기도 작아 보인다. 여기에 비밀이 있는데 다락문을 열고 아래 다락에 올라가야 다락 한 구석에 위의 다락으로 통하는 비밀문이 있었던 것이다. 집안의 귀중품은 주로 위에 있는 다락에 보관했는데 아직 한 번도 도둑맞은 일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눈속임을 했다고 한다.

 

 

전통 한옥답게 이 집에는 쇠못 대신 모두 나무못을 쓰고 있었다.

 

 

안채 앞으로는 툇마루를 놓았는데 대청마루는 아예 문을 달아 집안으로 들였다. 남부지방에선 대개 대청마루에 아예 문이 없이 탁 트이게 하거나 문을 달더라도 들창을 두어 개방성을 강조하는데 이 집에선 문지방을 두어 방과 똑같은 구조로 마루를 들였다. 이런 구조는 이곳 강골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마루구조였다.

 

 

 

그래도 마루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면 집 마당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마당의 따뜻한 기운과 시원한 바람이 함께 마루로 들어온다.

 

 

광채 앞마당 한구석에는 우물이 있다. 아직도 물은 깨끗한데 두레박이 있어 물을 긷을 수 있었다.

 

 

안채와 아래채 사이에 장독대를 두었다.

 

 

아래채는 세 칸으로 마당 쪽으로 쪽마루를 내고 뒤쪽엔 툇마루를 두었다. 마당이 있는 곳에선 쪽마루에 걸터앉아 가족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뒤쪽에는 화단을 두고 조용히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툇마루를 내고 그 앞으로 또 쪽마루를 논 것이다. 이 집 주인의 공간 인식이 그대로 집에 반영된 것이다.

 

 

이 집, 오봉생가는 6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중재 씨의 집이다. 집이 지어진 것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아래채 사랑방에는 이중재 의원의 활동 모습이 담긴 사진과 선물로 받은 갖은 액자들이 있다.

 

 

 

갖은 화초와 대숲으로 둘러싸인 아래채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세상과는 단절된 숲의 한가운데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이 집에서 방송촬영을 많이 했지요. 그 '패밀리가 떴다' 알지요. 이효리, 유재석, 박예진이가 여기서 잤지 않았겠소.” 그제야 유독 이 집이 왜 낯설지 않았는지, 어디선가 본 듯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패밀리가 떴다’를 두 번 촬영했어. 처음에 촬영하고 방송이 나가자 시청률이 제일 높았던 모양이라. 그래서 마지막 방송도 여기서 찍었어요. 제작진들이 촬영지 중에서 이곳을 최고로 꼽았다고도 하고...”

 

 

할머니가 마루를 가리키며 “그때 패밀리가 떴다 출연진들이 잔 곳은 방이 아니라 이곳 마루였소. 마루에 있는 온갖 세간들을 다 치웠지. 우리도 물론 피신을 갔지. 제작진까지 수십 명이 오니 온 마당이 빽빽했어. 유재석 그 사람 실제로 목소리가 정말 커더라고. 목성이 쩌렁쩌렁 참 좋더니만. 이효리는 처음에 모자를 쓰고 왔는데 여간내기가 아니다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성격이 정말 털털하더니만.”

 

 

할머니의 당시 촬영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빅뱅의 대성이는 참 귀엽고.” 아니 빅뱅까지 안단 말인가. 그래서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연세를 물었다. 팔순 둘이시란다. 창녕 조 씨인 조명엽(82) 할머니는 총기가 대단했다. 다큐 찍으러 왔던 용재 오닐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커뮤니티 공간에서 한참 촬영 중이었는데 불이 나서 촬영장소를 이집으로 옮겨서 계속 촬영했다고 한다. 할머니의 아들은 현재 도의원인 이정민 씨고 며느리는 여행자와 통화했던 박향숙 씨였다. 강골마을의 대표적인 일꾼이다.

 

 

나중에 득량역 역전이발소 공병호 할아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봉생가에서 잤다고 했더니 “우리 보성 도의원 집에서 잤구먼. 그 할머니가 총기가 대단혀.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야.”라고 했다. 여행자도 사실 놀랐었다. 할머니는 유창한 일본어에 말에는 조리가 있었고 설명 또한 명쾌했다. 이중재 국회의원 액자의 한문을 막힘없이 읽어내는 모습을 보고 예사 분이 아니구나, 여겼었다.

 

 

고택의 밤은 일찌감치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어두운 툇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두견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녁 아홉 시를 넘겼을까. 도시라면 초저녁일 시간이 이곳에선 한밤중이었다. 이부자리를 깔고 잠시 뒤척이다 여행자는 잠들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