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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味학

6천 원에 이렇게 정성스럽고 푸짐하다니... 고택 시골밥상

 

 

 

 

 

6천 원에 이렇게 정성스럽고 푸짐하다니... 보성 강골마을 고택 시골밥상

 

지난 주말 보성 강골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게 됐다. 이곳에서 1박을 하게 되면 마을에서 지정한 집에서 식사를 할 수가 있다. 민박집에서 손님들에게 일일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없어 한 집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다.

 

 

식사를 한 곳은 뜻밖에도 이식래 가옥이었다. 이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160호로 문화재로 지정된 집이다. 혹자는 문화재에서 식사를 하면 되겠느냐며 자칫 잘못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람이 살고 온기가 있어야 집이, 특히 한옥이 제대로 보존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식사를 한 이식래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160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이식래 가옥은 집 주위에 대숲이 우거져 있어 집안에 다른 정원수가 없는데도 그윽하고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1891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본채와 사랑채 등 다른 건물들은 초가로 지어졌는데 광채는 기와로 지어졌다. 곡식과 농자재 등의 보관을 중요시했다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집이 부유했음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런 고택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는 '一‘자 형인 5칸의 제법 긴 안채에서 했다.

 

 

일단 초가집 안채에 오르는 일부터 남다른 기분이다. 뭐랄까. 마치 밭일을 끝내고 오니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려놓고 농부를 수줍게 기다리고 있는 새색시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오랜만에 들른 친구내외를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꺼내 차렸으면서도 찬이 없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주인내외의 그 소박한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방 안에는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초가집의 겉모양도 그러하지만 방안도 영락없이 옛 모습 그대로다. 다락하며 시렁하며 선반하며 조금은 낯선 듯 친근한 구조물이 고택에서의 식사를 한층 더 즐겁게 한다. 이미 앞서 온 다른 일행들이 식사에 열중하고 있다.

 

 

이식래 가옥에서 두 번의 식사를 했다. 첫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이었는데 놀랍게도 반찬이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손님을 배려하고 음식에 정성을 쏟은 것이다.

 

▲ 저녁밥상

 

첫날 저녁의 밥상을 보자. 밭에서 갓 따온 푸릇푸릇한 상추에 돼지두루치기, 꼬막, 갓김치, 버섯, 파전 등 10여 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사실 반찬의 가짓수도 가짓수지만 정갈하게 담은 음식 하나하나에 쏟은 정성이 놀라웠다. 반찬 하나를 먹어도 맛없는 것이 없었고 직접 만들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더 달라고 하라며 그 인심 또한 후했다.

 

▲ 아침밥상

 

이튿날 아침에도 13가지의 반찬이 나왔다. 아침상으로는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정도였다. 게다가 전날 저녁과 같은 반찬은 김치밖에 없었다. 전날에 나온 무채 대신 아침에는 깍두기가 대신할 정도로 같은 재료라도 다른 반찬을 내놓을 정도로 신경을 쓴 것이다. 묵은 김치 고등어조림을 필두로 계란말이, 양념게장, 깻잎, 무말랭이, 열무김치 등이 아침밥상에 놓여졌다.

 

 

이 모든 것을 합친 가격은 놀랍게도 6000원이었다.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우리 가족 외에도 서너 가족이 더 있었는데 하나같이 식사를 즐거워했다. 반찬 혹은 밥을 더 먹지 않은 가족이 없었을 정도였다. 친구끼리 여행 온 아가씨 셋이 옆자리에 앉았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칭찬일색이다.

 

"와, 이 정도면 벌교는 굳이 갈 필요가 없겠는걸. 꼬막이 이렇게 푸짐하고 맛있는데...."

 

 

이 집에선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처음엔 도시 사람들이 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밥상을 좋아하고 즐기게 돼서 너무 좋단다. 정성스럽고 풍성하고 신선함이 가득한 이곳의 시골밥상은 자연 그 자체를 먹는 기분이었다.

 

 

후식으로 엿이 나왔다. 저도 모르게 ‘엿 먹으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방안 가득 웃음소리다. 강골마을의 엿은 꽤나 유명하다. 매년 겨울에 만드는 이곳의 엿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이에 달라붙지 않아 엿을 싫어하는 이들도 결국 맛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게다가 부러 깨어 먹지 않고 느긋하게 입안에서 녹여먹으면 졸깃졸깃한 그 맛이 일품이다.

 

 

그것도 사랑채 툇마루에 걸터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