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논두렁에 덩그러니 서 있는 인왕상, 너무나 허망해!

 

 

 

 

 

 

논두렁에 덩그러니 서 있는 봉능리 석조인왕상

 

 

 

 엄청난 크기의 신방마을과 봉산마을 표지석

 

철길을 건너 봉산마을(전라남도 보성군 조성면)로 향했다. 마치 광개토대왕비처럼 커다란 마을 표지석이 이색적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표지석은 마치 거석문화의 표본처럼 저마다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봉산마을 전경. 마을의 생김새가 스님이 바랑을 지고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하여 '불무등(佛舞登)'으로 불리다 마을 뒷산에 명당이 있어 지관의 왕래가 잦아지면서 '봉산'으로 바뀌었고 전해진다.

 

그 옆으로 두 번째 거대한 저수지가 나왔다. 마을은 신방저수지 옆 안쪽에 있었다. 마을 초입에 제법 번듯한 정자가 있고 유래비가 있어 이 마을이 예사마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신방저수지

 

마침 저수지 옆 밭을 매고 있는 아주머니께 석조물의 존재를 물었으나 처음 듣는 얘기라 했다. 지도로 대충 가늠해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을회관 뒤에 오르니 정자나무가 있고 그 아래로 너른 벌판이 펼쳐지더니 그 끝으로 득량방조제가 보였다. 탁 트인 들판 풍경이 푸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봉산마을 정자나무에서 내려다본 예당평야와 득량만

 

‘여기 어디쯤일텐데.’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담장 너머로 인기척이 났다. 허리가 조금 구부정한 중년의 사내에게 인왕상의 존재를 물었는데 나중에는 석조물, 불상, 부처님 등 여행자가 설명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대어야했다. 그제야 사내는 교회 맞은편 비닐하우스 뒤로 보이는 소나무를 가리켰다.

 

“저 짝이오.”

 

 반나절을 찾아 헤맨 봉능리 석조인왕상은 논두렁 아래 논 가운데에 있었다.

 

소나무를 목표삼아 비닐하우스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묵정논 끝에 소나무는 있었으나 기대했던 인왕상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싶어 어른 키의 갑절은 족히 되는 아찔한 논두렁 아래로 목을 쑥 내밀었더니 그제야 석조물이 보이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길도 없는 논두렁 절벽을 풀을 엮어 잡은 채 내려갔다. 두어 시간 만에 봉능리 석조인왕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대개 인왕상하면 사찰이나 불상들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을 말하는 것으로 사찰의 문이나 탑, 승탑 등에 장식한다. 이곳 인왕상은 마모가 심해 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눈을 부릅뜨고 있는 얼굴만큼은 강렬했다.

 

 

 

손에 지팡이나 방망이를 쥐고 있는 다른 인왕상과는 달리 권법자세만 취하고 있는 벌거벗은 모습이다. 비록 닳았을지언정 사실적인 상체와는 달리 하체는 형식화된 느낌이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인왕상은 대개 탑의 부조로 조각되는 다른 것과는 달리 하나의 돌로 만든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주위에는 탑의 부재들이 한곳에 모아져 있고, 기와 편들이 더러 보여 이곳이 옛 절터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인왕상이 있는 자리를 보면 뒤로는 야트막한 산이 둘러쳐 있고 앞으론 작은 들판이 있고 다시 작은 산이 포근하게 감싸고 있어 작은 절이 설 자리로는 마땅해보였다.

 

 봉능리 석조인왕상에서 본 청능마을이 아늑하다.

 

이 작은 불상 하나를 찾기 위해 반나절을 헤맨 셈이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논두렁에 덩그러니 버려진 듯 무심하게 서 있는 문화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34호)를 보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중에 찾았던 우천리 삼층석탑도 마찬가지였지만 마을 입구나 국도변에 안내문이라도 있었다면 이토록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논 가운데(사진 왼쪽 중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봉능리 석조인왕상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