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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 기행

그리운 남쪽, 벚꽃 지는 망덕포구의 봄

 

 

 

 

그리운 남쪽, 벚꽃 지는 망덕포구의 봄

 

50여 분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버스는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낯선 포구에 여행자를 내려줬다. 옥곡 버스정류장을 출발한 버스는 신기, 외금, 상금, 이천, 진상항만물류고, 진상정류장, 지랑, 청도, 입암, 차사, 마동, 방죽, 용소, 이정, 진월면사무소, 외망까지 30여 분을 달리더니 작은 포구에 섰다. 출발할 때 세 명이었던 승객은 내린 지 오래, 여행자 혼자 남게 됐다. 기사는 종점인 포구까지 갈 거냐고 물었다. 거센 바람에 벚꽃 잎이 이리저리 날렸고 작은 포구의 메마른 잿빛 갯벌로 어선이 두어 척 보였다. 그냥 걷겠다고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버스는 벚꽃길 저편으로 사라지더니 이내 다시 나타났다가 포구 저쪽으로 사라졌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빈 바람만 빈 배를 훑고 지나고 있었다. 지는 벚꽃도 마지막임을 눈치 챘는지 안간힘으로 꽃잎을 떨구지 않으려 애써 버티고 있었다.

 

▲ 망덕산과 망덕포구

 

포구를 빙 둘러싼 벚나무 뒤로 봉긋하게 솟은 산이 보인다. 백두대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로 알려진 망덕산이다. 그 아래에 있는 망덕포구는 그 옛날 사람들이 섬진강을 거슬러 다압, 구례, 곡성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광양만을 한눈에 파수(망)할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망뎅이’라 이름 했는데 한자의 음을 빌려 ‘망덕(望德)’이라 표기했다. 혹은 왜적의 침입을 망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전북 덕유산을 바라보고 있다는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 망덕포구 일대가 전어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전어조형물 '망뎅이'

 

최근에 생긴 진남루에 적힌 이곳의 풍광을 대강 옮겨보면 이러했다.

‘노화(蘆花, 갈대꽃)를 적신 물이 칠문을 통하여 배알도를 휘감아 돌아 남해 물결과 만나고 영봉의 억불봉을 뒤로 하고 풍치 좋은 무접도와 망덕산을 좌우에 거느리고 있다. 여름이면 물결 출렁이는 소리와 가을이면 갈대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한낮에는 사람살이에 지친 이들과 밤이면 별빛에 취한 사람들이라면 이곳 진남루에 올라 망덕포구의 운치를 즐기라’

 

▲ 진남루와 '내고향 망덕포구' 노래비

 

비록 이른 봄이지만 진남루에 올라 포구를 내려다보는 정취가 깊다.

 

내 고향 망덕포구 새 우는 마을

울고 웃던 그 시절이 하도 그리워

허둥지둥 봄바람에 찾아왔건만

님은 가고 강 언덕에 물새만 운다

 

내 고향 망덕포구 꽃 피는 마을

웃고 놀던 그 사람을 차마 못 잊어

허둥지둥 봄바람에 찾아왔건만

님은 가고 강 언덕에 동백꽃 핀다

 

진남루 옆 강석오가 작사․작곡했다는 <내 고향 망덕포구> 노래비에 새겨진 노랫말이다. 바람은 여전히 매서웠고 가을이 아닌데도 갈대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포구의 횟집 수족관에는 미끈하게 잘 생긴 숭어가 가득했다. 처음엔 이곳 포구에서 유명한 전어인 줄 알았다. 쌀쌀한 날씨도 착각을 일으키는데 한몫했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을 보고 퍼뜩 숭어임을 알아챘고 어른 손바닥보다 더 큰 섬진강의 명물 ‘벚굴’을 보고서야 지금은 전어가 나올 수 없는 남해의 봄 포구라는 걸 뒤늦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말발굽모양의 포구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짧지만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벚꽃 가로수길을 걸어 바다처럼 탁 트인 바깥 강의 포구로 나갔다. 강을 따라서 횟집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잘 정리된 나무 데크와 긴 벤치가 중간 중간 설치돼 있었다.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했다. 금방 보았던 살갑던 포구와는 너무나 다른 최신식의 포구와 데크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예전엔 강변을 따라 포장마차 같은 것이 일렬로 있었는데 미관 차원에서 모두 안쪽으로 옮겨졌다고 상인은 말했다. 자연스런 포구의 풍광도 관광지가 되면서 관치행정으로 획일화되어가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섬진강을 따라 포구가 형성돼 있다.

 

강은 바람에 새파랗게 질렸고 멀리 시린 하늘을 뚫고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광양제철소다. 바다 같은 섬진강과 호수 같은 광양만이 남해로 흘러가는 망덕포구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있는 기수지역이다. 전어, 장어, 백합, 벚굴, 재첩이 유명해 사시사철 바다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3개의 도를 굽이굽이 돌아 550리 물길을 내달린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이곳의 풍성한 어장은 전어철에 절정을 이룬다. 전어철인 가을이 되면 두 척의 배가 한 선단으로 짝을 맞춰 바다로 나가 전어를 잡는다. 지금은 금호도와 태인도를 막아 광양제철소가 들어섰지만 예전엔 이곳 망덕포구를 중심으로 겨울철 김 양식과 가을철 전어잡이가 흥흥했다. 전어잡이 배를 띄우고 만선의 기쁨을, 구성지고 흥겨운 가락의 전어잡이 노래를 불러 흥을 돋았다. 지금까지도 전어잡이소리보존회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정작 노래가 전승되고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경남 사천 마도의 갈방아소리와, 이곳에서 섬진강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있는 진월면 신아리 신답마을의 진(느린)가래소리와 농악인 풍장소리가 전승되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어를 활어(活魚)로 개발한 곳 또한 이곳 망덕포구였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올 만큼 고소한 맛을 가진 가을철 별미가 망덕포구의 대표어종이다. 그래서 망덕포구 가운데의 갯벌에는 전어의 본고장임을 알리는 거대한 전어 조형물인 ‘망뎅이’가 설치돼 있다. 지금도 해마다 9월이면 이곳 포구 일대에서 전어축제가 10년 넘게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렸다. 모두 노인 분들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제히 횟집으로 향했다. 여행자가 횟집 수족관의 벚굴을 꺼내자 환호성을 지르며 저마다 감탄을 내질렀다. 어른 주먹보다 몇 배 큰, 얼굴만 한 엄청난 크기에 놀라더니 이내 횟집으로 모습을 감췄다.(이곳의 명물 벚굴은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겠다.)

 

▲ 섬진강의 명물 벚굴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강굴'이라고도 하는데 벚꽃 필 때까지 주로 먹는다.(벚굴에 대헤서는 다음에 별도로 소개하겠다.)

 

 

포구의 끝에 난전이 있었다. 난전이라기보다는 ‘하동수산’이라고 적힌 가게에서 길가에 해산물을 그득 내놓고 지나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팔고 있었다.

 

“이거요, 우럭이요, 생선 우럭이 아니라 우럭조개라는 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우럭도 알고 보면 볼락 아니겠소.”

 

3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주인이 늙은 어머니를 대신해 설명해 준다.

 

“이건 홍맛이라는 거요. 그 흔히 맛조개라 부르는 거죠. 이놈 참 오늘 호강하는구먼. 사진도 찍고...”

 

이번에는 사내의 아내가 거들었다. 한눈에 봐도 해산물은 싱싱하기 이를 데 없었다.

 

 

 

▲ 우럭조개

 

 

▲ ▼ 홍맛이라는 맛조개

 

 

▲ 호수 같은 섬진강 너머로 광양제철소가 보인다

 

배알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각을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1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식사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깔끔한 외관을 한 별장처럼 생긴 집 앞으로 거대한 나무가 보였다. 수령 450년이나 되었다는 팽나무였다. 팽나무는 높이가 9m, 둘레가 3.9m로 보호수로 지정돼 있었다. 지정일자가 1982년으로 30년이나 지났으니 지금은 나무의 나이도 481년이 되었고 키나 나무둘레도 예전보다 더 컸을 것이다.

 

▲ 수령 480여 년 된 팽나무 한 그루

 

 

 

강을 거슬러 포구의 적당한 식당을 물색하고 있는데 제법 너른 공터가 보였다. ‘남해수협중매인 70번’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부원수산이라는 글자가 또렷했고 그 옆으로 남해횟집 주차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텅 빈 공터인데도 공장의 기계소리는 요란했다. 그 옆으로 낡은 집 한 채가 오도카니 시간을 비켜 서 있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의 원고를 숨겨두었던 정병옥 가옥이었다. 낡은 양철지붕을 한 오래된 창틀에 몸을 바짝 붙였다. 그러곤 눈을 댄 채 건물 안을 한동안 흘깃흘깃 훔쳐보다 묵직한 철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 윤동주 시인의 원고를 숨겼던 정병옥 가옥

 

☞ 망덕포구는 옥곡역정류장이나 진상역 앞 진상정류장 혹은 항만물류고정류장에서 17번 버스를 타면 된다. 운행시간은 다음과 같다. 

 

※ 망덕포구 버스시간표

옥곡

진상

망덕

옥곡

(토, 일, 공휴일)

진상

(토, 일, 공휴일)

망덕

(토, 일, 공휴일)

6시 45분

6시 50분

7시 20분

6시 45분

6시 50분

7시 15분

8시 35분

8시 40분

9시 10분

9시 23분

9시 30분

10시 정각

9시 45분

9시 50분

10시 10분

12시 23분

12시 30분

13시 정각

10시 45분

10시 50분

11시 10분

14시 53분

15시 정각

15시 40분

11시 45분

11시 50분

12시 10분

17시 53분

18시 정각

18시 40분

13시 45분

13시 50분

14시 10분

20시 25분

20시 30분

20시 50분

14시 45분

14시 50분

15시 10분

 

 

 

15시 45분

15시 50분

16시 10분

16시 45분

16시 50분

17시 10분

17시 45분

17시 50분

18시 10분

18시 45분

18시 50분

19시 10분

20시 5분

20시 10분

20시 30분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 오른쪽 '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