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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 가는 길

원효암 툇마루에 앉아 빈바람 소릴 듣다

 

 

 

 

 

 

 

원효암 툇마루에 앉아 빈 바람 소릴 듣다

 

 

 

암자 가는 길을 물었다. 역에서 만난 시골 할머니는 “거기가 어딘데 걸어가요. 택시 타고 가도 겁나게 가팔라요.” 그 무슨 어림없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원효암에 다닌다는 할머니는 버스도 하루에 서너 번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절 아래 마을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가야 된다고 했다.

 

 

일단 군북오일장을 둘러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시장이 파할 즈음 병원으로 바뀐 옛 군북역 광장에서 택시를 탔다. 기사는 택시비가 10000원쯤 나올 거라 했다. 구불구불 위험천만한 길을 거의 직각으로 오르다시피 한 택시의 요금은 9900원이었다. 눈이라도 한 번 내린 겨울에는 아예 빙판이 되어 봄이 되어야 암자는 차로 드나들 수 있단다. 내려올 때는 혹 암자를 찾는 신도의 차를 얻어 타는 게 좋을 거라며 택시기사는 차를 돌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내려갔다.

 

 

암자는 고요했다.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한 절 마당엔 인기척도 없다. 헛기침을 두어 번 했더니 늙수그레한 할머니 보살 한 분이 요사채에서 나왔다. 눈인사를 하고 목이 말라 약수터를 먼저 찾았다. 칠성각 옆에 있는 약수터는 신비의 약수로 알려져 있는데 이 약수를 집으로 가져가 술을 빚으면 발효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맛 한번 시원하다.

 

 

단출한 암자. 초입에 새로 지은 요사채를 시작으로 대웅전, 칠성각이 나란히 있고 우뚝 솟은 벼랑 끝으로 의상대가 위태위태하게 매달려 있다. 그 아래로 요사채와 해우소가 살포시 앉아 있다. 부채꼴 모양으로 전각이 배치되어 있는 암자 앞으로는 산 능선이 멀찍이서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오늘이 제일 따뜻한 것 같어요. 볕이 너무 좋아.”

마루에서 김밥으로 조촐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이를 본 보살님이 커피를 권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따금 몇 마디를 주고받고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시퍼런 하늘과, 갓 봄물이 오르기 시작한 산자락과, 툇마루에 길게 늘어진 햇살과, 지루하리만치 따분한 봄의 시간이 느긋하게 침묵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의상대 오르는 길에 석탑자리가 보인다. 수십 명은 너끈히 앉을 정도로 넓은 너럭바위에 서면 암자가 한눈에 들어오고 벼랑 위에 앉은 의상대가 준엄하다. 원래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이 있었던 자리란다. 보살님의 얘기로는 예전에 종이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없어졌다고 했다.

 

 

산자락이 꽃잎처럼 사방으로 암자를 둘러싸고 그 가운데에 의상대는 마치 꽃술처럼 우뚝 솟아 있다. 비록 가파른 산비탈 절벽에 서 있을망정 의상대라는 현판이 달린 전각은 의연하다. 이곳 함안 사람들은 원효암을 ‘의상대절’이라고 부른다. 의상대는 1370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중건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근래에 들어 보수했다.

 

 

조심스럽게 법당 문을 열었다. 의상대 안에는 두 분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의상과 원효,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 해골 물을 마신 두 사람의 인연이 이곳에서도 이어졌다. 마치 오래된 벗처럼 두 구도자는 나란히 그리고 그윽하게 중생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법당에 앉아 몸을 돌려 반쯤 열린 문밖을 보았다.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소나무가 되었다는 노송은 고사한지 오래, 둥치만 남아 허허롭다. 공교롭게도 노송이 고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삼층석탑도 도난당했다 한다.

 

 

의상대에서 한참을 머물다 칠성각으로 내려왔다. 암자에서 가장 눈여겨 볼 건물은 칠성각이다. 칠성각은 1370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1935년 중건된 기록이 남아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됐다.

 

 

대개 칠성각은 경내 뒤편에 배치되고, 맞배지붕의 소박한 형태인데 이곳의 칠성각은 경내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으며 팔작지붕을 올려 외형이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내부 불단 중앙에도 웬만한 사찰의 대법당에 조성되어 있는 후불탱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칠성탱화가 조성되어 있고, 좌우로 독성탱화·산신탱화가 걸려 있다. 한때 칠성각은 주 법당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요사채로 내려왔다.

툇마루에 앉아 빈 바람 소릴 듣는다.

스님은 출타 중이고 텅 빈 암자엔 풍경 소리만 가득하다.

암자는 원효암인데 벼랑 끝 전각은 의상대다.

오전 내내 걷다 마침내 도착한 암자, 내가 하는 일이라곤 봄볕을 쬐는 것뿐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암자 마당에 새 한 마리 날아들었다.

 

 

저 아래 산마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발걸음을 옮겼다. 깊숙이 아주 깊숙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산은 멀어지고 마을이 가까워졌다.

 

 

원효암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수도하던 곳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 여항산(770m) 중턱에 있다. 667년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정확히 알 길이 없다. 다만 1370년(고려 공민왕 19)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경내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중창연대는 정확해 보인다. 이 삼층석탑은 현재 도난당한 상태다. 그 후의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한국전쟁 때 원효암은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다. 1990년 칠성각과 의상대를 제외한 사찰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후 대웅전과 요사채를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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