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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벌교의 스타킹, 예순다섯 목수의 노래

 

 

 

 

 

남도 벌교의 스타킹, 예순다섯 목수의 노래

 

 

“쉿”

앞서 걷던 아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무슨 일인데?”“...”

아이와 아내는 입에 갖다 댄 손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제발 조용히 좀 하라는 시늉으로 안간힘을 쓴 채 목공소 안쪽을 뚫어져라 살피고 있었다.

 

 

이윽고 귀에 들어온 익숙한 음악소리.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목공소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예의 그 쓱싹쓱싹 대패질 소리하며 쿵쿵쿵 탕탕탕 망치질 대신 가곡이 흘러나오다니... 목공소 주인의 취향이 제법 고상하군, 어디 LP판이나 틀어두었나, 하며 각종 목재가 어지러이 널린 목공손 안을 들여다보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노래의 주인공은 오디오가 아닌 중년의 사내였다. 제법 커다란 안경 너머로 흰자위를 드러낸 그의 눈은 목재 이곳저곳을 보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입에는 중후한 노랫소리가 거침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 지었는지 알 수 없는 먼지가 켜켜이 쌓인 천장 서까래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했다. 사내는 이리저리 바삐 몸을 움직였다. 인기척을 내자 그제야 고개를 들더니 무슨 일이냐며 눈짓으로 물었다.

 

 

“엄~악이 좋다고라. ‘음악’을 ‘엄악이라 하는 거 보니 경상도사람이구먼.”

노래하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사내는 연삭기로 나무를 자르면서도 연신 흥얼거렸다.

“여기가 벌교여. 전라도 벌교 말이여. 채동선이가 이짝 사람인디 소리 한가락 못해서야 쓰것능가.”

아주 익숙하게 손을 놀리면서 벌교사람이면 이 정도쯤은 다 부른다는 투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노래를 청하자 하필 오늘 감기가 걸렸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

“정지용의 ‘향수’는 너무 길어. 대신 그 뭐시기냐. 손승교의 ‘옛날은 가고 없어도’를 불러 보죠 뭐.”

“더듬어 걸어온 길 피고 지던 발자국들 / 헤이는 아픔 대신 즐거움도 있었구나 /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벌교의 스타킹 왕봉민 목수의 중후한 노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목공소 안을 쩌렁쩌렁 울리던 그의 노래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제야 목공소 한쪽에 서너 명의 사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엄지를 치켜세우자 그는 언제 노래했느냐는 식으로 다시 연장을 들었다.

“스타킹에 한 번 나가보시죠? 대단한 실력입니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서 가끔 불러요. 근데 목수가 무슨 방송에... 내 일이 천직인데.”

삼화목공소 왕봉민 사장과의 만남은 그렇게 노래로 시작됐다.

 

 

그의 나이를 묻고 나서 여행자는 다시 한 번 놀랐다. 올해 예순다섯. 도저히 외모로는 그가 올해 65세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선생은 올해 몇 살이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작가 양반 나이보다 내가 목수 짓 한 지가 더 오래 되었을 거요. 저기 있는 직원이 나와 같이 일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수다.”

2대에 걸쳐 목공소 일을 해왔다는 그가 이곳에서 목수로 일한 지는 50년이 넘었다고 했다.

 

 

천장 서까래만 봐도 이 집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보성여관이 벌써 한 80년 안 되어가요. 소화 10년인 1935년에 보성여관이 지어졌으니께 우리 집은 소화 16년인 1941년에 지어졌다 말이요.”

그의 기억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

 

 

왕 씨는 교회 성가대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노래를 하도 잘해서 여행자가 이력을 집요하게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벌교 제일교회 소속 성가대 일원이란다. 그제야 손전화기를 꺼내더니 자신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보여 줬다.

 

 

“이렇게 말쑥하게 차려 입고 불렀어야 하는디...”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목공소 한쪽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들이라며 이 사람들도 사진에 담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와의 짧은 시간 동안 여행자는 무한한 긍정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왜 그리 멋있는지, 나이에 비해 외모가 왜 유난히 젊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벌교 오시면 꼭 한 번 더 들러요. 저기 바깥에 있는 것이 뭔 줄 아요. 맞소. 풍로요. 잘 아시네. 원래 내가 그런 걸 잘 만드는디... 한옥 문살 만들 때 오면 정말 기가 막히는데... 그때 꼭 한 번 오소.”

아직 벌교 일대를 둘러볼 것이 많이 남아 있어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그도 여행자도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쉬웠다.

 

목공소를 나섰다. 차가운 공기를 비집고 내린 햇살이 길바닥에 번득거렸다. 쓱싹쓱싹 쿵쿵쿵 탕탕탕, 연장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그의 노랫소리가 다시 태백산맥 거리로 나직이 흘러나왔다.

 

▼ 아래 동영상을 클릭하시면 벌교의 스타킹 왕봉민 목수의 중후한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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