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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제주 산지천 가운데 있는 신앙석의 비밀?

 

 

 

 

제주시 산지천 가운데에 있는 신앙석의 비밀?

 

아주 우연이었다. 전날 공식적인 세미나가 끝이 나고 며칠 더 묵을 요량으로 제주에 혼자 남았다. 숙소든 렌터카든 아무 것도 예약된 건 없었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와 어둠을 맞이했을 때 처음 숙소를 고민했다. 아니 고민이라기보다는 어디에서 잘까 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제주시에 모텔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모텔이잖아.’ 나름 긍정하며 검색에서 제일 먼저 나온 제주 시내의 한 모텔로 방향을 잡았다.

 

  제주 시내의 어느 모텔에서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앞 식당에서 저녁을 대충 먹고 이내 골아 떨어졌다. 눈을 뜨니 다음날 아침... 지도를 꺼내 여기가 어딘가 보았더니 일도동이었다. 모텔 창으로 ‘흑돼지거리’ 임을 알리는 거대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도동이라면 그 옛날 삼성혈에서 타온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활을 쏘아 각자 살 곳을 정하였다는 일도(一都), 이도(二都), 삼도(三都)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겠다.

 

  북두칠성의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 자리를 알리는 표지석

 

그 오랜 역사를 알려주려는 듯 골목 구석에는 ‘북두칠성 제칠도’ 표지석이 보인다. 1900년 초 홍종시의 <제주고적도>에는 제주 성안의 점선으로 북두칠성 모양의 칠성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삼성혈에서 나온 세 신인이 삼도를 나누어 차지하고 북두성을 본떠서 대를 쌓고 거처하였다고 해서 ‘칠성대’라 했다. 이곳은 그중에서도 제7도(第七圖)에 해당하는 ‘요광성(搖光星)’ 자리다. 예전 탐라왕을 성주(星主)라고도 했는데 북두칠성을 항로지표로 삼아 바다를 누비던 탐라의 중심지로서의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밤이면 불야성인 흑돼지거리

 

반대편으로는 흑돼지거리가 형성돼 있다. 밤에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덮여있더니만 이른 아침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밤새 피워 올랐던 기름 냄새가 아직도 흥건하다.

 

  동문재래시장 가는 길의 점포들

 

동문재래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굳이 동선을 그리지 않더라도 발길은 절로 산지천을 지나 동문시장, 오현단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오현단에서 큰 길을 건너 관덕정과 제주목관아까지 들렀지만 말이다. 이 장소들이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는데 우연히 찾은 숙소로 인해 제주 도심을 아주 알차게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산지천의 광장

 

골목을 벗어나니 제법 넓은 광장이 나오고 산지천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산지천은 복개되었다가 2002년에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새로이 돌아왔다. 예전 하천 하류의 산지포구에서 고기 잡는 모습을 ‘산포조어(山浦釣魚)’라 하여 영주(옛 제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았다.

 

  산지천

 

다리 난간에 사람의 조각이 굳센데 이는 중국피난선을 형상화 한 듯하다. 멀리 재현된 중국 피난선이 보였다. 원형의 80% 크기로 재현된 피난선은 조망과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전 중국 피난선이 산지천에 정박하여 거주하면서 ‘꽈배기’ 등을 판매하면서 중국 음식이 이곳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육지와 왕래가 잦은 산지포구는 한때 제주 상권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남수각에서 용진교까지 660m를 복개하여 상가건물이 형성되어 있었단다.

 

  홍수 등의 재앙을 막기 위해 산지천 가운데에 세운 조천석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한참 걷고 있는데 하천 가운데에 돌하르방 같은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궁금히 여기던 차에 다행히 표지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천석(朝天石)’이었다. 홍수 등의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에 기원하던 일종의 신앙석이다.

 

  조천석

 

옛날 산지천은 태풍이 불어오거나 큰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서 늘 피해를 입던 곳이었다. 성안 사람들은 이곳 바위(경천암에) 조천(朝天)이란 조두석(俎豆石)을 세우고 해마다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를 올렸다고 한다. 1735년 제주에 부임한 목사 김정은 이 바위를 지주암(砥柱岩)이라고 명명했다.

 

  산지천 아래 산지포구의 고기잡이는 '산포조어'라 불리며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혔다.

 

길 가운데에 해병혼탑이 있다. 제주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래저래 부침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건너편에 동문시장이 보였다. 길을 건넜다.

 

  멀리 다리 너머로 중국피난선이 보인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