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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기행

가을이 왔어요, 오모가리탕 맛 보러 가실래요?

 

 

 

 

가을이 왔어요, 오모가리탕 맛 보러 가실래요?

[가을여행] 전주 한옥마을서 만나는 가을

 

가을이 왔다. 세 차례의 태풍이 지나고서야 가을은 제자리를 찾았다. 문득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여행자의 감정만은 아닐 테다. 그만큼 가을이 점점 깊어간다는 내남할 것 없이 느끼는 감정이다.

 

             경기전의 대숲

 

혼자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왕왕 있지만 단풍이 드는 시월이면 가족과 함께 왠지 추억을 만들어야 될 성싶다. 사랑하는 아내와 혹은 남편,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에 어디 좋은 곳 없을까? 갈 곳은 많은데 딱히 갈 만한 곳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하시는 분들께 아주 흔하지만 특별한 여행지를 소개할까 한다. 바로 전주다.

 

흔히 전주하면 한옥마을과 비빔밥을 먼저 떠올린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이라면 후백제의 견훤이 도읍했다거나 조선 왕조의 관향이고 경기전이 있다는 것,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 전동성당 등을 들먹이기도 한다.

 

사통팔달의 요지, 전주는 찾기가 수월하다. 한옥마을 일대를 둘러볼 요량이면 자가용을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편리하다. 한옥마을만 해도 1박 2일 주말여행지로도 넘치고 넘칠 정도다. 자, 지금부터 가족의 손을 꼭 잡고 전주 한옥마을 일대의 가을을 즐겨보자.

 

이 문이 아니라면 호남은 없다, 풍남문

 

             풍남문은 풍패향 전주의 상징이다.

 

전주에 가면 제일 먼저 찾을 곳이 풍남문이다. 굳이 애써 찾지 않더라도 지나는 길에 흔히 보게 되는 것이 풍남문이다. 예로부터 전주를 일러 흔히 ‘풍패향(豊沛鄕)’이라 했다. 이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고향 ‘풍패’에 빗대어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관향인 전주를 ‘풍패향’이라 부른 것이다. 풍남문은 풍패향 전주의 남문이라는 뜻인 셈이다.

 

전라감영이었던 전주를 둘러싼 성곽이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고 영조 때에 대대적인 개축을 하게 되는데 성의 동서남북에 각각 문을 세우고 이때 남문을 명견루라 하였다. 그러나 명견루는 영조 43년인 1767년에 큰 화재로 불타버렸다. 현재의 문루는 그 이듬해에 당시의 관찰사 홍낙인이 재건한 것으로 풍남문이라는 이름도 이때 붙인 것이다. 홍낙인은 전주가 “왕실이 발원한 곳으로 예부터 풍패라고 일컬어....” 왔다는 이유를 들어 명견루를 풍남문으로 고쳐 불렀다.

 

순종 융희 원년(1907년)에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전주성의 성곽과 성문은 철거되고 불행 중 다행인지 이 풍남문만 남게 되었다. 오랜 부침을 거듭한 전주성과 풍남문은 조선 말기 갑오농민전쟁 때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비록 성문밖에 남지 않았지만 위풍당당한 풍남문에서 전주여행을 시작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성당,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그 아름다움으로 길 가는 이의 발길을 잡는다.

 

풍남문에서 한옥마을로 발길을 돌리면 노란 은행잎 사이로 아름다운 성당이 눈에 들어온다. 전동성당이다. 하늘에 닿을 듯 웅장해 보이지만 둥근 곡선미가 아름답다. 전동성당은 천주교 신자들을 사형했던 풍남문 밖에 지어진 성당이다.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을 비롯하여 그의 외종형 권상연과 유항검 등 호남 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가 참수당한 순교한 자리였다.

 

             전동성당은 그 아름다움으로 길 가는 이의 발길을 잡는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천주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전주에도 선교사가 들어오게 됐다. 1891년에는 전주성당 (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다. 처음에는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가 거의 없었으나 갑오농민전쟁 등의 여러 가지 사건으로 신자가 급증하여 기존의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이 필요하게 됐다.

 

이후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됐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어 1931년에 완공하기까지 23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벽돌은 중국인 인부 100여 명이 직접 구워서 썼고, 주춧돌은 1909년 7월 전주부의 허가를 얻어 남문 밖 성벽의 돌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전동성당은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비잔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현재 전주시 안에 세워진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성당이자, 호남 전체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건물이다. 건축물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영화의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자주 쓰이기도 한다.

 

태조 이성계 초상화를 봉안한 전주의 심장, 경기전

 

              경기전의 정전은 규모는 큰 편이 아니지만 전돌 복도가 나 있고 건물이 좌우대칭을 이루어 권위와 엄숙성이 돋보인다.

 

전동성당 맞은편에는 바로 경기전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경기전 일대의 외삼문, 내삼문, 정전이 보인다. 오랜 고목들에 둘러싸여 있는 경기전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엄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주요 건물이 모두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 가장 깊숙한 정전까지 들여다보인다.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왕실건축으로서의 경건함과 권위를 확보하고 있다.

 

    경기전의 태조 어진은고종 9년인 1872년에 기존의 낡은 어진을 불태우고 다시 그린 이모본이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으로 유일하다. 보물 제931호

 

경기전의 본전 안에는 보물 제931호로 지정된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왕조 왕들의 어진은 상당수 제작되었으나 현존하는 유품은 영조, 철종, 익종 그리고 이곳 경기전의 태조 어진 등 네 폭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태조의 경우 15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경주의 집경전, 평양의 영숭전, 그리고 이곳 경기전 등 나라 곳곳에 진전이 마련되어 26점의 어진이 전해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경기전의 어진만 유일하게 남아있다.

 

정전 옆문을 나오면 실록각이 있다. 근래에 복원한 건물이여서 옛 맛은 없지만 조선시대 전기 4대 사고의 하나였던 전주 사고의 역사를 반추하고 서책을 보존하기 알맞은 옛 실록각의 구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실록각 옛 전주사고 터 자리에 다시 복원한 2층 다락집 건물로 서책을 보관하기에 알맞은 구조임을 엿볼 수 있다.

 

             경기전 내의 예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는 원래 완주 태봉산에 있었는데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기전의 남동쪽 담장 부근에 이르면 예종의 태실 및 태실비가 자리하고 있다. 고승들의 부도와 흡사한 태실 및 태실비는 원래 완주 태봉산에 있던 것을 197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태실비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면 대숲이다. 낮인데도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대숲에는 신성한 기운마저 감돈다.

 

가을, 책 읽는 최명희 문학관 어떨까?

 

             최명희 문학관의 육필 원고

 

경기전을 나와서 오른쪽 돌담길을 따라가면 최명희 문학관에 이른다. “나는 나의 일필휘지를 믿지 않는다. 원고지 한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갔다.”는 작가의 말처럼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에까지 심혈을 기울여 한 자 한자 새겨 완성한 소설이 최명희의 대표작 <혼불>이다.

 

1998년 ‘아름다운 세상, 잘 살고 간다.’ 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난 최명희 작가를 기리기 위해 2006년 4월 이곳에 문학관이 들어섰다. 전주 최초의 문학관이라고 한다. 최명희의 작품은 소설 27편과 수필 152편, 콩트 20편, 시 1편 등 모두 199편이다. 이중 단편소설 13편, 장편소설 1편, 미완성장편소설 1편, 엽편소설(초미니소설) 1편, 시 1편, 장편수필 5편, 수필 35편, 콩트 19편을 전시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 <혼불>은 원고지 1만 2천장으로 그 높이가 3m에 이른다. 전시된 원고는 전체 원고의 1/3에 해당한다.

 

<혼불>은 작가 최명희가 건져 올린 아름다운 우리말의 집합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지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이 가을 작가의 혼이 담긴 이곳으로 깊이 침잠해보는 것은 어떨까?

 

가장 한적한...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전주 향교

 

            전주향교는 가을에 가장 그윽하다.

 

전주에 와서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향교다. 수백 년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 수 그루가 그윽한 운치를 자아내는 곳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온통 황금빛으로 변하는 거대한 은행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황갈색의 은행열매가 환상적이었다.

 

             전주향교는 가을에 가장 그윽하다.

 

향교 안 수백 년 된 은행나무 다섯 그루는 제각기 이야기가 있다. 서문 앞 은행나무는 나이가 400년이나 되었고 대성전 우측 은행나무는 원래는 수컷이었는데 암컷으로 변하여 은행이 열게 되어 자웅나무로 불리기도 했다. 이 은행을 따서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일월문 앞 250년 된 은행나무는 은행을 따서 공을 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

 

         ▲ 전주향교는 가을에 가장 그윽하다. 

 

현재 이 향교에는 여러 훌륭한 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을 비롯해 동무·서무, 계성사,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인 명륜당 등의 여러 건물이 있다. 대성전은 효종 4년인 1653년에 고쳐 세웠는데, 이후 융희 1년인 1907년에 군수 이중익이 다시 고쳤다. 명륜당은 광무 8년인 1904년에 군수 권직상이 고쳤다. 한편 이곳 전주향교는 영화 ‘YMCA 야구단’ 등 각종 영화 드라마의 촬영지로 이름나 있다.

 

            전주향교 안에는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다섯 그루나 있다.

 

단풍이 부럽지 않다. ‘전주천 억새’

 

향교까지 갔다면 바로 향교 앞 전주천의 억새를 꼭 볼일이다. 최근에 하천 정비로 많이 훼손되었지만 8km에 달하는 전주천을 따라 이어지는 억새의 하얀 숲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다.

 

            가을 전주천의 억새는 단풍 못지않게 운치 있다.

 

바람 부는 날, 전주천에 오면 “쏴아~... 쏴아~...”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억새는 바람이라는 친구를 만나야 흥이 난다. 해만 바라보던 억새가 바람을 만나니 처음에는 덩실덩실 어깨춤으로 흥을 내다 나중에는 제 흥에 겨워 온몸을 던져 춤을 춘다. 햇살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 억새들이 일제히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고 있는 억새의 모습은 눈부시다.

 

             가을 전주천의 억새는 단풍 못지않게 운치 있다.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오목대

 

경기전에서 남동쪽으로 500미터 정도 떨어진 나지막한 언덕 위에 오목대가 있다. 예전에는 이목대가 있는 승암산과 이어져 있었다고 하나 전라선 부설 공사로 맥이 끊겼다. 대신 지금은 오목교라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때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던 중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때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돌아가던 중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은 고종이 직접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라는 비문을 새겨 놓은 비가 있고 누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오목교를 건너면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이목대가 있다.

 

              오목대에 오르면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마을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층 빌딩과 한옥,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시가지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비슷비슷한 형태의 지붕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조각군을 이룬 듯하다.

 

전주여행, 그 끝은 없다

 

                            ▲ 전주비빔밥축제 장면(2011년)

 

풍남문에서 시작한 여행은 전동성당, 경기전, 최명희문학관, 전주향교, 전주천 억새를 거쳐 오목대에서 끝이 났다. 중요 문화재와 각종 문화시설이 산재한 한옥마을은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한옥마을을 가장 가까이 느끼려면 전통가옥이 밀집된 골목을 따라 느 긋하게 걷는 것이 좋다.

 

그뿐만 아니다. 한옥마을에선 한지체험, 생활도자체험, 부채 만들기 체험, 목판서화체험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으니 미리 계획을 세워 방문하는 게 좋다. 한지박물관에서는 무료로 한지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10월 18일~21일에는 전주비빔밥축제, 10월 18일~22일에는 전주국제발효식품엑스포가 열리니 이때에 맞추어 전주를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전주비빔밥과 함께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음식으로 꽤나 알려져 있다.

 

전주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맛이다. 유명한 전주비빔밥부터 콩나물국밥, 한정식, 백반 등 맛의 고장답게 음식 또한 다양하다. 특히 전주천에서 먹을 수 있는 ‘오모가리탕’은 일품이다. 뚝배기를 뜻하는 전주 사투리인 오모가리에 메기, 쏘가리, 피라미, 동자개(빠가사리), 잡고기 등을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 매운탕이 오모가리탕이다. 전주에 가면 꼭 맛볼 일이다.

 

술 한 잔 하려면 막걸리다. 이왕이면 그냥 벌컥 마시기보다는 한옥마을에 있는 전통술박물관에 들러 술의 역사를 먼저 익힐 일이다. 전주에는 막걸리만 시키면 안주가 공짜로 나오는 막걸리집이 많다. 흔히 ‘막걸리타운’으로 불리는데 인후동, 우아동, 경원동, 서신동, 평화동, 효자동 등 막걸리타운을 전주 시내 곳곳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 여행자가 가장 자주 찾던 곳은 ‘삼천동막걸리타운’이었다.

 

              전주비빔밥과 함께 콩나물국밥은 전주의 음식으로 꽤나 알려져 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한옥마을을 돌아보고 여력이 있다면 풍남문 옆 남부시장을 들러볼 일이다. 전주성의 오랜 역사를 지켜보았고 갑오농민전쟁 때 농민군이 입성했던 현장이기도 하다. 장터 허름한 옛 식당에서 콩나물국밥이나 순대국밥을 먹으면 전주의 오롯한 맛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 풍남문 옆 남부시장에는 오랜 식당들이 많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