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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사람

마산어시장에 웬 돼지골목... 알고 봤더니

 

 

 

바닷가 어시장에 웬 돼지골목... 알고 봤더니

- 250년 오랜 역사를 지닌 마산어시장

 

마산의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바다와 맞붙은 관광호텔이라 전망이 좋았습니다. 바닷가면 으레 짠 갯내음쯤은 풍겨올 줄 알았는데 새벽 바닷바람만 발코니를 스쳐갑니다. 마산... 참 익숙하면서도 낯선 도시입니다. 해양도시이면서도 바다가 없는 도시입니다. 산업화와 발전을 택하는 대신 바다와 낭만을 송두리째 빼앗긴 도시를 보며 왠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집니다.

▲ 마산만의 일출

 

바다 풍경도 그렇습니다. 하얀 백사장과 갯벌은 먼 나라의 이야기고 잿빛 콘크리트 건물과 육중한 철골물이 시야를 채웁니다. 그래서일까요. 바다인데도 전혀 바다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잔잔한 호수 같고 어찌 보면 거대한 댐 공사를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슬픈 도시입니다.

 

▲ 마산만의 일출

 

갈매기 떼가 마침 호텔 앞 바다를 유영하지 않았다면, 파도소리가 제때에 나지 않았다면, 여행자의 망상은 끝이 없었겠습니다. 희뿌옇게 날이 밝아오자 건너편 공장에서도 회색빛 연기를 공중으로 날려 보냈습니다.

 

 

호텔과 바다 사이의 칙칙한 도로를 따라 아주머니 한 분이 바삐 걸음을 옮깁니다. 손수레를 끌고 내딛는 발걸음에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행자의 한낱 푸념은 삶이라는 깊은 생존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풍경 탓을 접고 저 생동감 있는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어야겠습니다.

 

 

해가 떴습니다. 세수를 하고 짐을 챙기고 주섬주섬 옷을 입었습니다. 6시 49분. 문자 한 통.

 

"잘 주무셨나요? 해가 뜨네요^^ 창밖을 보세요~~~ 일어나 씻으시고~ ~ 7시 30분까지 1 레스토랑으로 오세요~~~ 산책 겸해 바다를 걸어 아침 먹으로 가게요~~^^"

 

세상의 어떤 문자보다 기분 좋은 문자였습니다. 잠시 후 7시 17분.

 

"아침 밥집은 걸어서 10분 거리랍니다~~~"

 

 재촉을 하는 재치 있는 문자였습니다. 일행을 통솔하는 김훤주 기자님의 센스입니다.

 

▲ 멀리 마창대교가 보인다

 

해가 뜨기 무섭게 부두는 분주했습니다. 어선에도 통통통 시동이 걸리고 화물선이 쉴 새 없이 부두를 드나듭니다. 멀리 마창대교가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입니다. 어둠 속에 침잠해 있던 바다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 지난 밤의 피로

 

뱃사람만큼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밤 작업에 썼던 고무장갑이 피곤을 매단 채 널려 있습니다. 새벽이슬을 맞고 아침 햇살을 쬐었으니 다시 손 주인을 찾아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해야겠지요.

 

▲ 부두는 분주했다

 

얼음공장에서는 쉴 새 없이 얼음이 쏟아지고 어선이며, 시장이며, 가정이며, 공장으로 갈 얼음을 차에 싣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엄청난 크기의 냉동 구조물이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 탑처럼 쌓아 올린 나무상자

 

생선을 담는 나무상자가 골목 곳곳에서 탑처럼 높이 쌓여 있습니다. 짠 바닷물과 고된 못질, 비린 생선에 절어 오늘도 이곳저곳을 헤매다 어느 상인에게 어느 가게로 배달이 되겠지요. 족히 사람 키의 몇 배 높이로 쌓은 그 대담성에 다시 놀랍니다.

 

▲ 어디론가...

 

작은 용달차에는 홍합이 가득합니다. 이른 새벽에 바지런을 떨어야 차 한 대를 채울 수 있었겠지요. 이젠 다시 길을 달려 하루 동안 이것을 내어다 팔아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을 겁니다.

 

▲ 마산어시장은 250년 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0여 분 걸으니 마산어시장이 나옵니다. 구조물 크기만 봐도 제법 어시장이 크겠구나, 여겨집니다. 시장은 일단 나중에 들러보기로 하고 복집에 들러 아침식사를 먼저 했습니다. 이 일대는 알고 봤더니 전부 복집들이었습니다. 수십 개의 복집 식당이 거리 좌우로 있는 복집거리였습니다.

 

▲ 복집거리

 

마산어시장에는 이런 특정 음식으로 특화된 거리가 많았습니다. 그 유명한 아구찜 거리하며, 진주의 실비, 통영의 다찌와 더불어 경남의 3대 술 문화 음식점으로 일컬어지는 통술거리, 어시장에서 돼지족발을 파는 돼지골목이 그것입니다. 이런 특화된 거리는 어시장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잘만 홍보하면 전국적인 명소가 될 듯합니다.

 

▲ 복매운탕

 

우리가 주문한 음식은 복매운탕이었습니다. 양념 맛이 좀 강한 게 흠이었지만 국물이 얼큰했고 특히 생복을 사용하여 육질이 아주 싱싱하고 졸깃했습니다. 술 먹은 후 해장하기에는 복국이나 복매운탕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사실 복매운탕보다는 복국(지리)이 오히려 복 본연의 맛과 시원한 국물이 더 좋지요. 생선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은 갖은 양념을 넣은 매운탕보다는 최소한의 양념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내는 '지리'를 더 즐기는 편입니다. 게다가 '지리'에 쓰는 재료는 싱싱하지 않으면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에 재료 선별이 까다로운 편이기도 합니다.

 

 

아침을 먹은 후 오전에 창동, 오동동 일대의 골목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다루겠습니다. 골목길 탐방이 끝나고 다시 어시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구찜 거리를 알리는 간판이 눈에 띕니다.

 

▲ 아구찜거리

 

아귀찜은 옛 마산시 오동동에서 갯장어 식당을 하던 일명 '혹부리 할머니'가 어부들이 가져온 아귀에 된장, 고추장, 마늘, 콩나물, 파 등을 섞어 쪄서 만든 것이 시초하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이곳 오동동 사거리에서 어시장을 따라 20여개 업소가 영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구찜 시식은 다음으로 미루고 어시장으로 향했습니다.

 

▲ 주인의 정성이 대단하다

 

어시장은 생각보다 굉장했습니다. 그냥 그저 그런 규모이겠거니 여겼는데 끝 간 데 없이 넓고 다양한 점포들에 놀랐습니다. 게다가 어시장이라는 이름답게 거의 다 해산물을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 규모는 부산의 자갈치보다 몇 배에 달했습니다. 실제 자갈치시장의 면적이 7243m²에 480여 개의 점포가 있는데 비해 마산어시장은 190000m²에 약 2000여 개의 점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중 고정 점포가 1300여 개, 노점이 700여 개라고 합니다. 하루 이용객도 30000~50000명 정도하고 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 민어와 민어조기 등을 말리는 풍경

 

그뿐만 아닙니다. 마산어시장은 그 역사가 자그마치 250여 년에 달합니다. 1760년(영조36)에 이곳에 조창이 설치되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시장이 형성된 것이 시초입니다. 마산창이 설치되고 창원부사가 조창에 관원과 조군을 배치하여 선창 주변에 마을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시장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마산장에는 어민들이 어획한 각종 수산물을 비롯하여 농산물, 옷감, 유기그릇 등이 거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899년 마산포가 개항됨으로써 외국의 공산품까지 들어오면서 마산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습니다.

 

▲ 마산어시장 풍경

 

순조 때 편찬된 <만기요람(萬機要覽)>에 마산포의 객주가 130호나 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당시에도 시장이 상당히 번창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역사를 보면 1809년 창원현 마산포장, 1907년 창원부 마산시장, 1912년 구 마산시장, 1938년 마산어시장에 이릅니다. 처음엔 창동과 남성동 일부에 걸쳐 조창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가 1911~1914년 마산만 매립으로 남성동과 동성동 일대로 확대되었습니다. 그 후 1985~1993년에 또 한 번의 매립으로 오동동, 남성동, 동성동, 신포동 2가 일대까지 시장이 확대되었다고 합니다.

 

▲ 마산어시장은 그 규모가 부산 자갈치시장의 몇 배에 달한다

 

이곳이 어시장인 만큼 횟집골목의 회는 단연 인기입니다. 회를 싸게 준다는 상인들과 횟감을 사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거립니다. 가을이면 전어축제가 이곳에서 열릴 만큼 전어는 마산어시장의 명물이자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진동 산(産) 생선을 맛볼 수 있다는 진동골목, 젓갈골목, 건어물골목 등 각종 해산물을 파는 다양한 골목이 있습니다.

 

 

근데 이곳에서 특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시장 입구에 세워진 아치형의 대형 간판에 '마산 어시장 돼지골목'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어시장에 웬 돼지골목일까? 그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풀렸습니다.

 

▲ 마산어시장 안에 있는 돼지골목

 

시장 골목 좌우로 붉은 고깃덩어리가 길게 늘어선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두 집도 아니고 여러 집에서 가게 앞 좌판에 산더미같이 족발을 쌓아두었습니다. 진풍경이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그 색깔이 유독 눈에 띄는데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것이 여간 맛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이 장관을 보면 누구든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겠습니다.

 

▲ 돼지골목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족발이 산처럼 쌓여 있다

 

점심 식사를 회로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이곳의 족발도 한 번 맛보고 싶더군요. 족발을 파는 아주머니들도 인상이 퍽이나 푸짐합니다. 그 넉넉한 웃음에 저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짓게 됩니다.

 

 

드디어 우리의 종착지 횟집에 도착했습니다. 어시장에 와서 회 한 접시 맛보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횟집마다 거대한 도마가 눈에 띕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도마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어른 두서넛이 안아야 될 정도로 굵직한 통나무 도마입니다. 그마저도 많이 닳았습니다. 횟집의 시간이 이 도마에 모두 담겼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식당에는 이미 식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먹음직스런 각종 회와 특히 제철을 맞은 전어회가 입맛을 돋웁니다. 아쉽게도 여행자는 회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우럭탕으로 대신했습니다. 어쨌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습니다.

 

▲ 우럭지리탕

 

일행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이번엔 시장 구석구석을 살피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이곳을 꼭 다시 들러야겠습니다. 부산의 자갈치시장보다 훨씬 규모도 크고 다양한 해산물을 파는 이곳 어시장이 아직 외지인들에게는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창동예술촌에서도 느꼈지만 홍보 전략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빛내는 빼어난 조연들은 많은데 작품을 대표할 만한 뚜렷한 주연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알리는 홍보보다는 그것을 특징지을 수 있는 대표 이미지(근데 전어는 굳이 마산어시장이 아니더라도 흔하디흔하다) 중점 홍보 전략이 필요할 듯합니다. 두 곳 다 전국적인 명소가 되기 위해선 새로운 홍보 전략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습니다.

 

▲ 전어는 마산어시장의 캐릭터이기도 하다

 

마산에서의 1박 2일은 마산(창원시 마산합포구)이라는 도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작 바다에선 바다를 느낄 수 없었는데 마산어시장에서 여행자는 마산의 바다를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