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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모산재! 절정의 풍경 이걸 두고 말한다

 

 

 

하늘의 땅 절정의 풍경, 모산재를 오르다

 

태초에는 땅과 하늘만이 존재했으리라. 인간이 태어나자 하늘이 땅을 돋우어 산을 만들었다. 끝 간 데 없는 인간의 욕망이 결국 하늘에까지 이르는 바벨탑을 쌓자 하늘은 산을 만들어 인간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인간은 하늘을 동경하며 쉼 없이 산을 오른다.

 

모산재

 

산을 오를 때마다 늘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 하나. 인간의 욕망은 하늘의 의도대로 산을 오르면서 더 작아지고 줄어든다는 것...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산을 내놓은 이유일 지도 모른다.

 

 

하늘의 땅, 모산재를 오르다

 

모산재는 하늘로 오르는 길이다. 하늘의 땅이다. 십수 년 전 어릴 적만 해도 벼랑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끼를 잡으며 올랐었다. 지금은 바벨탑의 그것처럼 인간의 층계를 놓았지만 예전엔 처음 하늘이 내어준 것만 이용하여 산을 올랐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하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하늘에 대한 외경을 가진 자만이 이 산을 올랐었다.

 

 

오늘 모산재를 오르다보니 약간은 두려움이 앞선다.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합천'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이곳이 고향인 여행자로선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이 멋진 경관을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것은 당연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다면 좋은 일이지만 무릇 세상일이라는 게 무리를 두게 마련이다.

 

 

함께한 합천군 관계자는 모산재의 소나무를 손질했다고 했다. 모산재를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다니는 길목의 바위틈에는 족히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풍진과 함께한 멋스런 소나무들이 많다. 기기묘묘한 풍광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이 이곳의 소나무다. 그러다보니 좀 더 모양이 예쁘면 좋겠다는 기대를 누구나 가지게 마련이다. 특히 관광개발을 업으로 하는 이라면 더욱 그런 유혹을 가지게 된다.

 

황포돛대바위

 

손질된 소나무는 다행인지 별 어색함 없이 모양 좋게 서 있었다. 진주에서 전문 조경사를 불러서 손질했다고 했다. 이쯤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실 여행자는 이런 유혹을 두려워한다.

 

 

우리 전통의 산수 개념에서는 나무를 손질하는 법은 없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정원이라고 잘못 부르는 원림문화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나무를 손질하고 가꾸는 ‘조경(造景)’의 개념보다 자연 그대로를 살리고 빌리는 ‘차경(借景)’의 개념을 중시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이나 정자에 대한 관념이 이럴진대 그야말로 자연에 있는 산의 소나무를 손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다만 실내에서는 ‘분재’를 통해 분 가꾸기를 했지만 이는 한정적이었고 문밖을 나서면 곧 자연이었다.

 

갖은 형상을 하고 있는 모산재의 바위들

 

‘영남의 소금강’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능선을 향했다. 예전 철다리 대신 나무계단이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위를 보면 아득하고 아래를 보면 아찔하다. 모두들 자신의 발만 보며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황포돛대바위

 

모산재에서 내려다본 다랭이논

 

돛대바위에 올라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에 서면 땅의 경계가 드러나고 하늘길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숲에서 나무들과 이끼와 풀벌레가 동행했다면 이곳에선 구름과 바람과 햇살이 함께하는 길이다.

 

모산재를 오르는 길은 녹록하지 않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모산재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많다. 공룡, 돌고래, 부처, 얼굴... 각자의 눈으로 제각기 이름 붙여 본다. 이곳을 대표하는 것은 황포돛대바위... 갖은 생김의 바위들은 중간 중간 산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정상에서 본 황포돛대바위

 

여기서부터 능선길이다. 발아래의 푸른 저수지와 황금빛을 머금은 층층 다랭이논이 풍경의 하나를 이루고 서북쪽의 기암절벽이 장하게 뻗어 있는 이곳의 풍광은 가히 금강산이라고 한들 뒤지지 않겠다. ‘영남의 소금강’이라는 수식어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비탈을 얼마간 오르면 그동안의 고된 산행을 보상이라도 하듯 평평한 능선이 나타난다. 이곳에 수십 명이 족히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하나 있다. 수천 년 동안 바람이 쓸고 간 능선의 바위엔 파도의 물결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작년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던 우리는 이 바위를 ‘세심대’라 이름 붙였다.

 

 

왜 천하명당 모산재일까?

 

‘세심대’에서 보면 모산재의 형제 같은 천황재가 기묘한 형상으로 절경을 이어간다. 이쯤에서 모산재의 유래가 궁금해진다. 일행 중 누군가 모산재의 연유에 대해 물었지만 여행자는 모른다고만 했다. 고향을 어쭙잖게 설명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모산재를 그냥 ‘영암산’ 혹은 ‘영암사(지) 뒷산’이라고 불렀다. 사실 영암사지와 마찬가지로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의 ‘영암산’이라는 이름만으로 이 산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굳이 모산재의 연유를 찾자면 ‘무지개 터’에서 찾을 수 있다. 예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이곳은 무덤을 쓰지 못하게 아예 못을 파놓았다. 늘 물이 고여 있으니 무덤을 쓸 수 없었고 ‘못이 있는 산’이라 하여 ‘못산’ 혹은 ‘모산’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한자로 묘산(妙山)이라고 표기하는데 기기묘묘한 산이라 하여 붙여진 ‘묘산’이 경상도 식의 발음으로 ‘모산’으로 불렸다는 것인데 설득력이 약하다. 여행자가 어릴 적만 해도 가뭄이 심하면 ‘무지개 터’에 누군가 묘를 써서 그렇다며 동네사람들이 마을의 디딜방아를 걸머메고 모산재를 올라 무덤자리를 파내고 그 자리에 방아를 세워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다보니 입에 종종 오르내리는 이름이 ‘모산’이었다. 그러나 실제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은 ‘영암산’인데 어느 순간 모산재로 불리게 되었다. 산인데도 불구하고 재로 불리는 것은 모산재와 천황재 주위로 옛날 고개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붙여진 모양이다.

 

모산재의 암반능선길

 

흔히 육산(흙산)에서 기가 모이는 곳이 바위가 있는 곳이라면 골산(바위산)에서 명당은 부드러운 흙이 있는 곳이다. 그런 면에서 무지개 터가 자리한 곳은 명당으로 볼 수도 있겠다. 허나 온 나라에 가뭄으로 흉작이 드는 자리라면 천자가 나고 부귀영화를 누린다 한들 어찌 명당이라 하겠는가! 그래서일까. 이곳은 바람이 드세고 물이 나 묘를 쓰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다.

 

 

절정의 풍경, 이걸 두고 말한다

 

숲길이다. ‘악’ 소리 지르며 올랐던 바위산인데 이곳엔 부드러운 흙길이다. 솔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기암 풍경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도 잠시 옛 석성 터를 지나면 이내 모산재 정상(767m)에 이른다.

 

 

이곳에서 풍광은 절정에 달한다. 여태까지의 풍경이 서막이라면 정상에서 순결바위까지는 설악의 울산바위처럼 장쾌한 암산의 면모를 보이면서 동시에 지리산 마천 도마마을의 층층 다랭이논을 보여주고 부석사에서 볼 수 있는 첩첩 능선 물결도 보여준다.

 

 

뒤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황매산 철쭉군락지로 이어지는 풋풋한 흙산이지만 앞으로는 천길만길의 낭떠러지이다. 옆으로 난 바윗길을 택해야만 이 산을 내려갈 수 있다. 황포돛대바위는 이곳에서 유려한 산수화의 으뜸 소재가 된다. 가파른 층계를 올라 거대한 돛을 펼치고 하늘을 향해 항해하는 거대한 배의 모습이다.

 

순결바위

 

순결바위까지는 바위능선을 타고 가야 한다. 한 쪽은 까무러칠 정도의 절벽이고 다른 쪽은 비스듬하나 제법 너른 암반이다. 그 끝에 순결바위가 있다.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순결바위는 요즈음으로 치면 욕 많이 먹을 팔자다. 아니 이름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 사생활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가 없으며, 들어간다 해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나올 수 없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때문이다. 그저 한바탕 객기로 웃어넘길 뿐이다.

 

국사당

 

순결바위부터 국사당까지는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곳이 더러 있다. 내리막이라고 해서 녹록하지는 않은 길이다. 국사당은 태조 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올린 곳으로 지방관찰사로 하여금 매년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고 한다. 이후 고을 현감 등이 지내다 최근에는 음력 3월 3일에 감암(감바구)마을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고 한다.

 

국사당

 

 

산 아래 외딴 민가에 호박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할머니는 얼굴만 한 누런 호박과 애기 엉덩이만 한 애호박을 연신 따냈다. 절집 처마 아래 축담에는 까만 눈의 산초가 빨간 외투를 벗고 있었다. 가을이 온 모양이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