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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타임슬립

보성역, 책 읽는 노신사

 

 

 

 

 

 

보성역, 책 읽는 노신사

 

보성차밭을 갔다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3시 56분 순천행 기차를 타러 보성역 승강장으로 갔습니다. 비온 뒤라 날씨는 그야말로 쾌청했습니다. 볼에 살살 감기는 바람도 선선했습니다. 이따금 긴소매를 입은 사람들도 보일 정도로 가을이 문턱을 넘고 있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 휑한 승강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여행자는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가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시골 역 승강장이 조용한 탓도 있지만 그 모습이 하도 고요하여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추었습니다.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젊은 여인과 책을 읽고 있는 노신사가 묘하게도 어울렸습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풍경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신사가 스마트폰을 하고 젊은 여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면 이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행자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노신사의 책 읽는 모습이 경건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디에 사시는지,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도저히 여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단정한 옷차림에 반듯하게 빗어 내린 머리칼, 과하게 윤이 나지 않고 잘 닦여진 말끔한 구두, 성스러운 무언가를 받들 듯 책을 든 양손마저 정갈했습니다.

 

기차가 느릿하게 들어왔습니다. 노신사도 조용히 책을 접고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