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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마애불

저 부처님은 왜 여기에 있어 가지고...

 

 

 

아이의 허락을 받고 찍어야 했던 보물

- 느티나무 아래 마을을 지키는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

 

무진정에서 함안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대산리다. 행정구역으로 대산리지만 원래 이 마을은 '큰절'이 있었다는 뜻의 '대사리' 또는 '한절골'로 주민들에게 불렸다. 지금도 다리 이름을 대사교라 부르고 있고 마을 느티나무 아래에는 오래된 불상이 서 있어 옛 절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함안 대산리 석불은 모두 4구로 마을 입구에 서 있다. 그중 2구는 그나마 온전한데 나머지 2구는 머리가 없어진 채로 있다. 온전한 2구의 불상은 다른 불상의 좌우 협시보살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손 모양만 다를 뿐 조각수법이 거의 비슷하고 불상을 세운 대좌까지 똑같다. 대좌는 상대․하대의 2단이고 연꽃을 새겼다. 그 아래 팔각의 단에는 각 면마다 귀꽃을 표현했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높은 관을 썼고, 길쭉한 얼굴에 눈․코․입은 평면적이나 표정은 편안해 보인다.

 

 

 

탄탄한 어깨는 둥글고 다소곳하며 주름이 지나치게 형식적이어서 그런지 옷은 두껍고 무거워 보인다. 몇 차례 다녀간 곳이지만 전에 혹시 빠뜨린 게 없나, 하고 이리저리 꼼꼼히 살피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언제 갈 거요? 우리 놀아야 하는데."

 

명랑한 목소리다. 고개를 돌려보니 누이로 보이는 소녀와 놀고 있는 야무져 보이는 사내아이였다.

 

"돌은 와 자꾸 찍는지 모르겠심더. 저 부처님은 왜 여기에 있어 가지고... 맨날 사람들이 왔다가서 우리 노는 걸 방해하는지 몰라. 아저씨, 빨리 가주면 안 돼요?"

 

 

 

금방 찍고 갈 줄 알고 기다리던 아이는, 여행자가 자꾸 불상을 살피자 슬슬 부아가 치민 모양이다. 그래도 돌덩어리로 말하지 않고 부처라 부른 것만 해도 대견하다.

 

"미안하다. 빨리 가마."

 

해도 옆에 바짝 붙는다. 이번에는 아예 노래를 부르며 종종거리며 뒤를 따른다.

"빨리 가세요. 빨리 가세요."

 

이런, 고이~얀 놈 같으니. 허허.

 

 

하기야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도 그럴 듯하다. 마을 사람들의 쉼터인 이곳에 오래전부터 느티나무와 불상이 함께 있었으니, 자연스레 불상은 석장승처럼 마을의 수호신이 된 셈이다. 아이들에게도 불상은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동네 형처럼 아주 친숙한 존재였을 것이다. 간혹 이곳을 다녀가는 외지인들이야 문화재니, 부처님이니 하며 떠받들겠지만 그런 허식이 아이들이나 주민들에게 무슨 소용이랴. 불상은 이미 그들의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니 가족과 진배없는 존재인 걸....

 

 

이번에는 여행자가 생떼를 썼다.

 

"자꾸 그러면 안 가는 수가 있다. 대신 5분만 다오. 그러면 사진 찍고 냉큼 갈 테니...."

 

엄포를 놓자 놀란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잠시 후 낯빛이 돌아오더니 수긍을 했다. 아이에게 잠시의 말미를 얻은 여행자는 다시 불상을 들여다보았다. 두 보살입상 사이로 보이는 좌불상은 머리가 없다.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서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한 왼손 위에 오른손을 놓고 집게손가락을 구부려 엄지에 댄 '상품상생인'을 하고 있는 아미타불이다.

 

 

불상 셋은 모여 있는데 비해 따로 떨어져 서 있는 불상이 있다. 머리와 발이 없지만 훨씬 조각이 자연스럽다.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로 여겨진다.

 

한편 이곳 불상의 지붕이 되어준 느티나무 두 그루에는 따듯한 사연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연을 느티나무 아래 작은 표지석에 새겨 두었다. 절은 스러져도 그 마음은 늘 자비롭다.

 

"여기 유서 깊은 이 절터에 심어졌던 늙은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과 역사 속에 천수를 누리다가 가고 그 자리에 본동 출신 고동원, 조용수 어른께서 어린 느티나무를 심어 이렇게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 고마움을 기리고자 이 돌에 새깁니다. 1993년 4월 3일 성산후인 이창숙 글 짓고 쓰다. 앞으로도 사나운 비바람에 꿋꿋이 잘 자라리라."

 

 

☞ 대산리 석불의 정확한 명칭은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이다. 경남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에 있다. 보물 제71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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