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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제주도

이보다 시원하고 이처럼 아플 순 없다. 정방폭포

 

 

 

이보다 시원하고 이처럼 아플 순 없다. 정방폭포

 

누구나 제주도를 가면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정방폭포이다. 천제연, 천지연, 엉또 폭포 등 내로라하는 제주도의 폭포 대부분이 서귀포 일대에 몰려 있는데, 유독 정방폭포가 이름나 있는 것은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동양 유일의 해안 폭포라는 데 있을 것이다.

 

 

높이 23m, 너비 10여 m의 정방폭포는 예로부터 '정방하폭'이라 하여 영주(제주의 옛 이름) 10경으로 꼽혔다. 숲에서 보는 것보다 여름철 앞바다에 배를 띄워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장관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까만 절벽에서 '쏴~아'하고 떨어지는 폭포수의 소리를 들으면 이보다 더 시원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정방폭포 좌우로는 섶섬과 문섬이 있고 그 너머로 다리가 놓인 새섬이 있다. 마치 바다로 곧장 떨어지는 폭포수의 중심이라도 잡는 듯. 세 섬은 폭포의 징검다리처럼 바다에 점점 떠있다. 폭포 양쪽으로는 주상절리가 잘 발달한 수직 암벽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고 노송이 우거져 있다.

 

문섬이 보인다.

 

 

폭포 앞은 공룡 알만 한 바위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 폭포를 구경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바위에 걸터앉아 폭포를 바라본다. 그도 지칠 법하면 아예 물을 맞을 각오로 폭포를 향해 기세 좋게 뛰어들면 그만이다.

 

 

 

35도를 넘는 푹푹 찌는 날씨임에도 폭포로 내려가는 층계에 서는 순간 공기는 시원해진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시원한 공기는 선선하게 바뀌고 폭포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서늘해져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차가워진 살을 비비게 된다.

 

 

거침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고 있자니 저 절벽 위에 서서 폭포처럼 바다를 향해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때만 해도 이 감정이 얼마나 사치였는가를 알지 못했다.

 

 

 

폭포 옆 바위에는 ‘서불과지徐市過之’, 곧 ‘서불이 이곳을 지나가다.’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해안에서 석각 글씨를 우연히 발견하여 탁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글씨가 새겨진 장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글씨는 상주리 석각과 매우 흡사하며 추사의 탁본을 근거로 2000년대 초에 새긴 것이다. 2011년에 제주도에서는 이 석각 글씨를 찾으려 정방폭포의 암벽 270m 구간에 대한 정밀 3차원 조사를 계획했으나,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서귀포라는 지명도 원래 ‘서불이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서불(서복) 일행이 진시황 때 불로초를 찾아나서 제주와 남해를 거쳐 일본으로 가는 와중에 이와 같은 흔적을 남긴 게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2000년대 초에 추사의 탁본을 근거로 새긴 '서불과지(차)' 석각

 

 

현재 이곳은 중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이를 반영하듯 정방폭포 옆에는 2003년 10월에 개관한 서복전시관이 있다. 중국인들의 서복에 대한 관심은 대단하다. 2010년 12월 중국 청도대학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청도대학 측이 주최한 오찬에서 우연히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는 한 교수가 석각의 존재를 물었고 나는 상주리 석각과 정방폭포의 석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한 교수는 그 사실에 매우 놀라워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때 한 교수가 권했던 술이 ‘랑야타이’ 라는 술이었는데 서불이 진시황제의 명을 받고 삼신산을 찾아 떠났던 산동성의 한 지명 이름을 따서 지은 술 이름이었다. 도수가 70도에 달하는 랑야타이를 마시는 순간 목에 불이 났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2010년 겨울 중국 청도대학을 방문했을 때 건배주였던 랑야타이. 도수가 70도로 서불이 진시황의 명을 받고 삼신산으로 떠난 곳인 산동성 랑야대의 지명을 따 술 이름으로 지었다.

 

서복전시관. 서불의 전설로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정방폭포 옆에 2003년에  전시관을 만들었다.

 

 

한참이나 폭포 주위를 서성거리다 층계를 올랐다. 한 층 한 층 오를수록 공기는 후덥지근해졌고 급기야 땡볕에 다시 그대로 노출되었다. 선계에서 속계로 들어서는 것은 늘 이렇게 못마땅하면서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하는 길이다.

 

 

주차장에 차 한 대가 보였다. ‘강정평화대행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달려 있다. 시원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바다 저 너머 마을에는 이 무더운 여름 최루탄이 터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여행자는 시원함을 만끽하는 대신 무거운 죄책감에 쌓였다. 이보다 더 시원할 수도, 이처럼 더 아플 순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무더위에 시원하게만 느껴졌던 이 폭포에 숨겨진 엄청난 역사의 비극을... 4.3때 이곳은 집단 학살 터였다. 그것도 남제주에서 가장 처절하고 살벌했던 처형장이었다. 잡아온 사람들을 한 줄에 묶어 폭포 앞에 일렬로 세워놓고 제일 앞사람을 총으로 쏘아 주르르 폭포로 떨어뜨려 죽인 그 끔찍한 현장이었다. 어느새 잊고 있었다. 아니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허기야 제주가 아름다운 건 그 슬픔이 워낙 깊기 때문이라는 걸 진즉에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섶섬(좌)과 문섬(우)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