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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머물다

광각으로 담은 지리산 화엄사의 장대함이란....

 

 

광각으로 담은 지리산 화엄사의 장대함이란....

 

지리산 화엄사에 갔다. 벌써 수어 번을 다녀갔음에도 산사를 둘러보기에는 늘 벅차다. 언제나 만원인 화엄사는 일단 경내로 들어서면 그 장엄함에 초입의 분주함을 쉬이 잊게 된다.

 

지난 23일 지인에게 빌린 17-40렌즈로 화엄사를 담았다. 이날 광각렌즈의 매력에 빠진 여행자는 고민 끝에 결국 고가의 16-35렌즈를 어제 사고 말았다.

 

보제루

 

큰절답지 않게 소박한 일주문을 지나면,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로 이어진다. 얼핏 일직선으로 보이는 진입 공간은 사실 조금씩 비켜서 있어 누구라도 산사의 깊숙함에 점점 빠져듬을 느낄 수 있다.

 

보제루에서 내려다본 천왕문 일대

 

만월당 안마당의 석등과 소나무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544)에 연기조사가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진흥왕 당시는 이곳이 백제의 땅이었고, 1979년에 발견된 <신라화엄경사경>에는 연기조사가 경덕왕 때 황룡사 소속 승려로 754년 화엄사를 완성시켰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현재 화엄사에 남아 있는 여러 유물들의 양식을 보면 대부분 8~9세기경에 조성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적묵당에서 본 대웅전(우)과 각황전(좌)

 

 

보제루를 돌아서면 너른 안마당과 높은 석축, 그 위에 장대하게 선 대웅전과 각황전을 볼 수 있다. 화엄사의 중심 건물인 두 건물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대웅전

 

대웅전은 화엄사에서 중심이 되는 법당이고, 건축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각황전에 밀려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각황전

 

앞마당에는 두 기의 오층석탑이 있다. 그런데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을 이루고 있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대웅전과 각황전과 각기 짝을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일금당 쌍탑 형식이 아닌 일금당 일탑 구조인 셈이다.

 

 

대웅전에서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외벽의 X자 이다. 단순히 건축적인 고려는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운주사의 석탑 등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의 기하학 무늬들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용도가 새삼 궁금해진다.

 

이 X자 문양은 뭘까.

 

 

각황전 옆에는 홍매화 한 그루가 있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수하고 계파선사가 심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장륙화라고도 하며, 다른 홍매화에 비해 꽃이 검붉어 흑매화라고도 한다.

 

 

각황전 활주(처마받침기둥)가 크게 휘었다. 오랜 세월 지붕과 처마의 무게를 이고 온 시간의 흔적이다.

 

각황전에서 본 사자탑(좌)과 석등(우)

 

각황전 앞에 서면 산자락에 안긴 화엄사 전각들이 푸근하게 느껴진다. 높이 6.4m의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석등이 각황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네 마리의 사자로 장식된 사자탑이 원통전 앞을 지키고 있다.

 

높이 6.4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석등

 

 

사자탑은 얼핏 사사자삼층석탑을 연상시키는데 그  용도가 사뭇 궁금하다. 노주 혹은 감로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의 정테는 과연 무엇일까?

 

 

효대에 올랐다. 그 유명한 사사자삼층석탑이 있는 효대는 화엄사에서 가장 그윽한 곳이다. 짙은 동백숲과 잘생긴 반송, 오래된 올벚나무가 있어 더욱 운치가 있다. 효대에 오르느 층계는 몸을 숙이고 옆으로 조심조심 걸을을 떼야 할 정도로 폭이 좁아 누구나 경건하게 오르게 된다.

 

사사자삼층석탑과 석등

 

효대라는 이름은 연기조사의 효성을 나타낸 탑이 있는 언덕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사자삼층석탑은 네 마리의 사자와 그 중앙에 합장을 한 채 머리로 탑을 바치고 있는 스님상이 있다. 이 스님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고 하는데,아무리 봐도 비구니의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석탑 앞의 차를 공양하는 인물상이 있는 석등이 인상적이다.

 

효대에 오르면서 내려다보는 각황전은 정말 아름답다

 

여행자가 이 효대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앞에서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각황전의 또 다른 매력 때문이다.  동백숲과 반송이 있는 계단길도 그 자체로 운치가 있지만, 돌아서서 각황전을 보는 그 장대하고 호쾌한 맛은 비길 바가 아니다.

 

 

물매를 가린 채 부드럽게 곡선을 이룬 지붕선의 아름다움은 특히 그러하다. 지나가던 이들이 쌓은 나무 아래의 돌탑에 앉아 각황전을 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각황전은 우리나라에 현존한는 불전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이다. 본디 이름은 장륙전인데, 조선 숙종 때에 4년 만에 완공을 하면서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게 된다. 겉모습은 중층 팔작지붕 다포집이나 내부는 툭 터진 통층으로 되어 있다.

 

각황전 내부, 바깥에서는 2층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통층이다

 

 

국보인 각황전이 유명한 것은 그 건물의 규모와 아름다움, 오래됨에도 있지만, 전각 벽면을 장식했던 돌에다 새긴 화엄석경 때문이다. 의상대사가 전국에 화엄십찰을 세우면서 화엄사에 3층으로 된 장륙전을 건립하고 사방 벽을 화엄경을 새긴 돌판으로 둘렀다는 기록이 <봉성지>에 있다. 물론 의상대사가 모두 새겼다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 이 석경들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현재 그 일부만 남아 있다.

 

보제루(가운데)는 천왕문 쪽에서 보면 2층이고,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집이다.

 

 

큰절 화엄사를 단 몇 시간만에 둘러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매번 이곳을 다녀갈 때마다 늘 새롭다. 다만 번잡한 낮시간을 피해 어스름 질 무렵 보제루에 걸터 앉아 종소리를 듣고 싶은 마음은 늘 고요하다.

 

 

                             추천은 새로운 여행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