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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비경

1년에 단 한 번 개방되는 지리산 삼성궁 마고성





일년에 단 한 번 개방되는
지리산 삼성궁 마고성


십이신장이 지키는 삼성궁 가는 길

청학폭포를 지나 삼성궁으로 올랐다. 계곡의 얼음은 가장자리만 조금 녹았을 뿐 겨울동안 언 두꺼운 얼음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산 아래의 봄이 아직 이곳에는 이르지 않은 것일까. 계곡에 잠시 머물렀던 시선을 거두어 길을 재촉했다.

제단

바위 틈새로 난 길을 돌아가니 돌문이 나왔고 그 안에 제단이 있었다. 앞선 이를 위한 장소인 만큼 엄숙하다. 화려한 채색이 다소 눈에 거슬렸다. “이거군요. 어제 말씀하던 것이....” 전날 이 암각에 대해 김원주 화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암각의 화려한 채색이 주위가 울긋불긋한 가을에는 제법 어울린다고 여겼는데 앙상한 겨울에는 여간 생뚱맞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늘 보니 유독 그렇게 보였다.

사신지문

삼성궁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열 두 개의 문을 지나야 한다. 호랑이ㆍ토끼ㆍ용ㆍ뱀 등 십이신장이 지키는 문들은 돌들을 층층 쌓아 거대한 바위로 천장을 덮어 굴로 만들었다. 원래 십이신장은 불교의 약사신앙과 관련이 깊다. 열두 방위에 맞추어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으로 도교의 방위신앙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도 한다.


일년에 단 한 번 개방한다는 마고성

마고성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1년에 단 한 번 가을에 천제를 지낼 때만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약 30년 전 삼성궁을 세운 한풀선사가 처음 머물던 곳으로 고구려 소도를 복원한 삼성궁의 중심지로 수행자를 위한 공간이다. 마고성(麻姑城)은 신라의 박제상이 지었다는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상상 속의 지역인데, 안에는 단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마고성, 지금은 단군 영정이 모셔져 있고, 예전 한풀선사가 수행하던 곳이었다.

동행한 김원주 화가가 말하기를 원래 마고성을 비롯한 삼성궁 일대는 화전민이 살던 곳이라고 했다. 화전민이 버리고 떠난 묵은 땅을 한풀선사가 다래넝쿨 등을 걷어내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이곳을 가꾸어 나갔다고 했다.
 
돌지붕이 인상적이다.

마고성

신성시 된 이곳에는 금줄이 둘러쳐 있었다. 그중 여행자의 눈길을 끈 건 돌지붕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돌지붕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강원도 영월 땅에 한 채가 남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비록 최근에 지었을망정 이곳에서 돌지붕을 보니 귀한 마음이 인다.


여행자와 맞닥뜨린 개구리는 난감해하고....

출입이 금지된 마고성에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펼쳐졌다. 개구리 우는 소리가 합창이 되어 온 계곡을 울렸다. 번식기를 맞은 개구리들이 길을 가득 메운 채 교미에 열중이었다. 경칩이 지난 지도 수일밖에 되지 않은 봄을 맞아 개구리가 알을 까는 것이었다.

봄마중 나온 개구리와 개구리알

물웅덩이에는 이미 알이 가득했다. 옛날에는 이맘때쯤 낳은 개구리알이 허리에 좋고 몸을 보한다고 하여 개구리알을 먹기도 했었다.

때 아닌 불청객을 맞은 개구리들은 난감한 듯 더욱 세차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어이쿠,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는 잰걸음으로 마고성을 떠났다. 언덕배기를 올라 금기의 땅을 벗어나니 길은 다시 이어졌다.


징을 쳐야 들어갈 수 있는 삼성궁

고개를 넘자 삼성궁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행자들이 직접 쌓은 긴 돌담과 우뚝 솟은 수십 기의 돌탑들이 인상적이다. 삼성궁은 철저하게 조성자의 의도대로 길이 열려 있다. 다른 길을 가고 싶어도 방문자의 동선을 유도하는 길은 오직 하나. 그래서인지 생경한 풍경도 잠시, 한눈을 팔지 않고 묵묵히 걷다보면 어느새 깊은 정적을 만나게 된다.

삼성궁 전경

화전민들이 살던 터전에 세운 삼성궁, 예전 이곳에 논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기야 계곡물이 이처럼 풍부하니 논농사를 못 지을 법도 없다. 건데 생기는 의문 하나. 계곡물은 원래 차서 벼가 자라기에는 알맞지 않다. 그래서 이곳 화전민들은 큰 못을 파서 찬물을 가두어 물의 온도를 높이는 지혜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의 못이 예전에 쓰였던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옛날 우리네 조상이 이주해온 바이칼을 형상화한 못은 예나 지금이나 생명의 근원임에는 틀림없었다.

징소리가 들려왔다. ‘징~~~’ 문지기를 부르는 징이다. 일반인들이 삼성궁에 들어오려면 산 중턱에 있는 징을 쳐야 한다. 징소리를 듣고 나타난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야 삼성궁에 들어설 수 있다.


아사녀를 꼭 닮은 아사달 찻집 여주인

계곡물을 따라 난 길을 내려가니 외나무다리가 나왔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는데 제법 긴장감마저 생긴다. 차나 한 잔할 요량으로 찻집으로 들어섰다. 찻집이름은 ‘아사달’, 왠지 그윽하다. 날씨가 따뜻한데다 올라오느라 땀을 흘린 터라 시원한 오미자차를 주문했다. 잠시 후에 주인이 차를 내어왔는데 그 색이 무척 붉다. 그냥 붉은 것이 아니라 아주 맑은 붉은 빛이었다. 예감이 좋다. 한 잔 들이키자 시큼한 맛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빨간 대추를 두른 흰 떡을 입안에 넣으니 시큼한 듯 단맛이 참 오묘했다.


“전라도 강진에 가면 다산초당이 있는데요. 초당 앞에는 다산이 평소 차를 끓여 먹던 차바위가 있습니다. 이곳이 꼭 그런 느낌입니다.” 날씨가 좋아 찻집 안에서 차를 마시는 대신 계곡 가 바위에 앉은 소감을 여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윽고 여주인이 나왔다. 점심을 먹었냐고 물었다. 늦은 아점을 했다고 하니 부산하게 움직인다. 몇 번을 사양해도 끝내 빵과 따뜻한 대추차를 내어왔다. 땀도 식어 조금은 쌀랑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는데 여주인은 그 마음마저 읽은 모양이다.

오미자차

바위에 걸터앉은 둘의 대화가 잠시 끊겼다. 계곡이 지척인데도 물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즈음, 멀리서 바람을 타고 징소리가 들려왔다. ‘징~~~’

그러기를 한참 다시 여주인이 나왔다.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더니 이번에는 꽃을 드문드문 넣은 산뽕잎차를 내왔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물소리와 새소리가 귀를 덥히고 꽃 향이 배인 차향이 입안에 그득하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대추차에 이어 여주인이 내온 산뽕잎꽃차

해가 산으로 기울었음을 알고 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가는 산뽕잎차 한 봉지를 여행자에게 선물했다. 이를 본 여주인이 “이 차는 제가 드리는 것입니다.” 하더니 덤으로 차 한 봉지를 더 주었다.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화가의 농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4월이 되면 산뽕잎을 따니 그때 다시 들르라는 말로 여주인은 작별을 대신했다. 손님 대접이 참으로 극진했다. 찻집 이름이 아사달, 여주인이 꼭 아사녀를 닮았다고 여행자는 생각했다.

삼성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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