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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기행

산도 물도 붉은 늦가을 용추폭포 소경



산도 물도 붉은 늦가을 용추폭포 소경

예부터 누대와 정자가 많은 함양은 '좌 안동 우 함양'이라 불리던 풍류의 고장이다. 함양 땅 안의에는 빼어난 세 곳이 있었으니 이른바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의 '안의삼동'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안의가 함양의 한 행정단위에 속할 뿐이지만 조선조에만 해도 함양과 어깨를 견주는 양반의 고장이었다. 화림동계곡은 농월정, 거연정으로 유명하고, 심진동은 용추폭포가 있는 용추계곡에 있다. 수승대가 있는 원학동은 지금은 거창 땅이지만 원래는 안의에 속해 있었다.


용추계곡 그윽한 곳에 자리한 심원정에 잠시 들렀다가 내처 용추폭포로 향했다. 만추
晩秋. 가을이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을 찾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여름이면 행락객들로 붐비는 이곳을 찾기는 아무래도 불편했던 모양이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치고 있을 때쯤 폭포 앞 옛 절터에 도착하니 발길조차 뜸하다.


신라 소지왕 때 각연대사가 창건했다는 장수사는 사라지고 터만 남았다. 일주문만 덩그러니 있었다. 굵은 기둥에 버팀기둥을 앞뒤로 세워서 다포계 팔작집 모양을 하고 있는 일주문에는 ‘덕유산 장수사 조계문’이라고 쓰여 있어 옛 영화를 짐작할 뿐이었다.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는데 산빛이 아름답다. 붉으면 붉은 대로, 아직 푸르면 푸른 대로, 서둘러 잎을 떨군 앙상한 가지마저 본래의 산빛이다. 얼마간 걸으니 용추사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내고 계곡 물소리가 제법 귀청을 때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곡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폭포가 지척에 있는 모양이다.


형형색색의 나뭇잎들 사이로 폭포가 하얀 물길을 쏟아내고 있었다. 폭포의 풍광은 여름이 으뜸이겠지만 가을 폭포의 정갈함을 맛본 이는 그 매력에 금세 푹 빠지게 된다. 폭포의 물줄기는 이곳에서 소를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꺽지소, 요강소, 매산나소 등을 이루며 용추계곡을 따라 흘러간다.


붉은 산을 배경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니 그 물마저 붉은 게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든다. 마치 화가 난 용이 몸부림치듯 떨어지는 물줄기가 힘차다. 세상의 모든 잡음을 삼키고도 남겠다. 용추라는 이름에 걸맞게 폭포의 위용은 대단했다.


여행자는 문득 18세기의 문인 조구명이 쓴 글귀가 떠올랐다. 조구명은 지리산 용유담에서 길게 뻗은 바위를 보고 ‘용이 머리를 숙인 듯 꼬리를 치켜든 듯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석공을 시켜 ‘바위가 깎이고 냇물이 세차게 흐르니, 용이 노하고 신이 놀란 듯하다
石抉川駛龍怒神驚’라는 여덟 글자를 새겨 넣도록 하였다.


300여 년 전 그는 지리산 용유담의 긴 바위를 보았고, 지금 여행자가 본 것은 심진동의 용추폭포이다. 본 것은 서로 다르나 300여 년 전 문인의 글을 빌려서야 겨우 용추폭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니 옛 사람의 문기에 새삼 부끄러워진다.


폭포에서 나와 용추사를 지나니 계곡에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 휴양림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면 폭포 위를 걷게 된다. 먼지 폴폴 나는 흙길 아래로 너럭바위가 펼쳐지고 이곳에서 잠시 머물던 물줄기가 폭포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폭포 아래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만을 본 이들은 늘 폭포 위가 궁금하기 마련이다. 폭포 위는 밑에서 보는 풍경과는 사뭇 다른 감흥을 일으킨다. 마치 신선의 영역을 침범한 듯 두렵기까지 하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폭포 위 세상은 또 다른 별천지이다.


작은 물줄기가 층층 폭포를 이루고 너럭바위를 타고 내리는가 싶더니 군데군데 소
를 만들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줄기에도 산빛의 붉음이 듬뿍 담겨 있다. 위로 올라서니 다시 아래가 궁금하여 폭포 옆 산길 벼랑을 타고 내려갔다. 암반을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하도 재빨라 그 꼬리를 볼 수 없었다. 순간, 용이 하늘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물속으로 깊이 추락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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